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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짜이 Nov 25. 2022

강아지똥은,

겨우 아홉 살. 또래 아이들보다 체구도 한 참 작고 아직 한글도 어렵고 구구단은 더 어려웠던 아이. 다문화가정 맞벌 부 자녀여서 가장 늦게까지 센터에 남았던. 밥 먹을 때면 늘 많이 주세요, 받아서 모든 아이들이 돌아가고 혼자 남을 때까지 반찬 하나 남김없이 먹고 또 달라던 녀석. 도 거칠고 행동도 거칠고 제 맘에 들지 않으면 한참 더 덩치 큰 아이에게도 손이 먼저 올라가고. 일찌감치 스마트폰 유튜브에 노출되어 아직 몰라도 될 것들을 다 알아버린 아이.


그날은 학교에서 또 무슨 중대한 사고를 쳤는지 종일 교실에도 못 들어가고 상담실에 격리되어 수업을 받았다 했다. 센터에서도 격리 보호하라는 공지가 전달되어 작은 교실에 우리 둘만 남았다. 날이 선 눈빛에 일부러 발을 구르고 내가 하는 모든 말에 딴청을 하는 아이를 데리고 오늘 공부는 글렀다, 무엇을 할까 하다가 강아지똥 그림책이 눈에 띄어 읽어주었다. 권정생 선생님의 책은 누구라도 무장해제시키는 힘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읽어주는 내내 아이는 온몸으로 안 듣고 있는 티를 낸다. 다 읽고서 아이에게 어땠느냐고 묻자 자기는 할 말이 아무것도 없단다. 그럼 한 줄이라도 좋으니 글로 써보라고 종이를 건네주었다. 다른 날 같으면 종이를 박박 찢어버릴 법도 한 아이가 어쩐지 종이를 받아 들고 가만히 나를 보다가, 또 가만히 종이를 들여다본다.

그러기를 얼마 후, 결심이 섰는지 연필을 쥐고 꾹꾹 눌러쓴 두 줄.




강아지똥은 쓸모 있다. 

민들레꽃에게 거름이 되었다.





훌쩍,

코 끝이 시큰해지는 것을 겨우 참았다.





아마도 아이는 종일토록 여기저기서 혼나거나 걱정하는 소리만 듣고 왔을 것이다. 제 편을 들어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한 뼘이나 될까 싶은 그 작고 메마른 어깨로, 어쩌면 온 힘을 다해 썼을 '강아지똥은 쓸모 있다'는 저 문장 되풀이해 읽었다. 처음으로 아이를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동안 선생이랍시고 아이들에게 수없이 '강아지똥'을 읽어주며 너희도 감동받기를 바라던 같잖은 내 가슴팍에 강아지똥이 비로소 따스한, 따스한 거름이 되어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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