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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로시나 May 19. 2024

회사에서 살아남기(2)

당했다. 문제를 해결하고 싶지 않은 그들에게.

몇년 전이다. 

회사에서 평가 시즌을 앞두고 여직원들의 불만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직원의 경우 출산에 따른 육아휴직을 하게 될 경우 평가는 당연하게 밀리거니와 그에 따라 그 전에 어떤 성과를 쌓아왔는지와 상관없이 승진에서도 몇년 뒤로 밀리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나도 평소 부당하다 생각해왔던지라 하루는 무슨 사명감이었는지 노조에 가서 이와 관련된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돌아온 노조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그 문제를 고민해왔고 이와 관련하여 영업부서의 의견을 들었더니 오히려 여직원들이 반대를 하더란다. 참고로 그 영업부서가 여직원들이 가장 많이 포진한 부서였다. 그리고 그들의 대부분이 육아휴직을 이미 다녀온 바 있었다. 


그 당시의 나는 그 얘기를 듣고 황당하고 어이없었지만 이미 다녀온 입장에서는 억울해서 그런건가? 참 속좁다 하며 더 싸워보지 못하고 그 시간을 흘려보냈다. 종종 흘러가는 이야기로 여직원들의 불만을 들어왔었지만 나 또한 같은 여자들도 반대를 하더란다, 그리고 이를 고려할 수 밖에 없다는 고리타분한 대화를 이어나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또 흘렀다. 


최근에 친하게 지내던 후배가 육아휴직에서 복직했다. 누가봐도 똑부러지고 일도 잘하는 그런 후배였다. 하지만 고민이 있다며 이런 저런 얘기를 털어놓았다. 특히, 본인은 아이를 낳고 돌아왔을 뿐인데 그간 평가가 육아휴직으로 안좋았던 까닭에 승진도 뒤로 밀릴 수 밖에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열정을 가지고 일을 하기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그리고 나는 여느때와 같이 이미 그 시대를 지나온 사람들과 그 상황을 겪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역차별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라며 다독이고자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내가 그 이야기를 전달하는 동안 뭔가 이상하단 생각이 든 것이다. 


잠깐. 그때 영업부서의 여선배들이 반대를 했다고? 그런데 그런 이슈는 공론화 된 적이 없던것 같았는데? 그렇다면 그들 몇몇을 모아놓고 의견을 비공식적으로 구했다는 것인데, 그건 공식적인 의견과 여론이 될 수 없지 않은가? 


순간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문제는 아직 남성 중심적인 이 조직에서 분란만 일으킬 뿐 그들에게 도움이 안되는 이슈였던게 아니였을까? 그렇기 때문에 잠재울만한 어떤 논리가 필요하던 중 일부가 이미 그 시기를 지나온 자들의 푸념을 한 것이 반대여론으로 둔갑하여 고민할 기회조차 사장시켜 버린 것이 아닌가. 왜 나는 그말을 듣고 그냥 그러려니, 그럴 수도 있겠거니 인정하고 순응해버린 것일까?


물론 나도 반드시 육아휴직을 다녀온 사람들에게 관대해야 한다는 주의는 아니다. 평가 역시 그 해 일을 하지 않은 직원들에게 일을 한 직원들을 차치하고 보장해야 줘야 한다는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일을 잘 했든 못했든을 차치하고 우선 일을 한 사람이 더 잘받아야 되는 것은 맞는 일이다. 다만, 출산으로 인해 그 동안 쌓아온 성과 등이 무력화 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결국 싸워보지도 않았다. 그들의 말한 것에 대해 의심조차 하지 않았으며, 그것은 나의 처지와는 이미 동떨어진 일이었어서 그런지 그 결과를 무력하게 받아들였다. 나 역시 이기적으로 그 문제에 접근했던 것이다. 반성한다. 또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가장 쉬운 프레임에 갇혀 해결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후배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순간 그 말을 덜컥 믿고 순진하게 이해하는 척 한 나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결국 약자로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더욱 치밀해져야 하며, 오롯이 그들의 편에 서야한다는 것을 배우며 그렇게 살아남기 위한 스킬을 하나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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