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로시나 May 12. 2024

회사에서 살아남기(1)

회사일과 집안일을 잘하기를 왜 그들이 바라나.

몇년 전이다. 회사의 남선배가 회식자리에서 거나하게 한잔 마시고, 나에게 말했다.

 

"김차장! 난 김차장이 우리 회사 여직원들을 이끌어가야 한다고 생각해! 그러니 버겁더라도 조금만 더 힘을내!"


"제가 이끌어야 한다고요? 이유는요?


"김차장이 여직원으로서 일과 가정의 균형을 가장 잘 맞춰가며 회사생활을 하고 있는거 같아. 일도 잘해내고 있고, 가정에도 충실하고.. 여직원들이 결혼하고 나면 아무래도 힘들잖아. 그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어야지!"


나를 격려해주기 위한 말이겠거니 하고 가벼이 물은 질문에 대한 선배의 답에 나는 뭐에 한대 맞은것처럼 정신이 번뜩 들었다.


사실 그즈음 나는 회사일에 쫓겨 아이들 케어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매일 회사에서는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혹시라도 "이래서 아줌마들은 안돼.."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저녁 회식자리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가서도 남직원들에게 지지 않기 위해 모든 정신줄을 부여잡고 술도 벌컥벌컥 마셔댔다. 그리고 나서 집에와서는 어떤가. 자는 아이들 얼굴이나 한번 만져주고, 신랑한테 미안하다며 사과하고, 술은 취해 취기가 올라오지만 그마저도 티가 나면 싫은 소리 들을라 멀쩡한척 그렇게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다. 사실 나의 삶은 그 선배가 말한 것 처럼 일과 가정의 양립이 아닌, 회사에 훨씬 더 치우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것에 문제가 있다 느낄 무렵 나에게 던진 그 선배의 한마디는 왜려 격려보다는 나를 각성시켰다. 


그 선배에게 묻고 싶었다. 

"선배님의 와이프가 회사에서 저같이 생활하고 집안일은 형편없이 한다면 그것도 잘한다고 칭찬하실 수 있겠어요?"


나의 배우자는 제법 다른 남자들에 비해 젠틀하고 다정하다. 그래서 그나마 내가 회사에서 늦거나 회식하는 것도 너그러이 봐주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회사 직원들의 얘기를 하다보면 가부장적인 모습을 나타내 나와 언쟁을 하곤 한다. 예를 들면 부서에 모 여직원이 육아와 관련된 제도를 너무 잘 활용해 오히려 다른 직원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는 투정을 하면서도, 내가 바빠 가정에 소훌해질 어느즈음엔 너는 왜 그런 제도를 활용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비단 이런 생각은 우리집에서만 나타는 것일까. 


물론 너무 비약적인 이야기일 수 있다. 나 역시 한편으로 같은 동료로서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여자라는 이유로, 또는 엄마라는 이유로 많은 배려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외벌이거나 혹은 맞벌이라도 육아에 거의 가담하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그들이 나에게 그런 얘기를 할때면 한대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다. 


차라리 그냥 후배로서 열심히 사는게 보기좋았다고 말해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미 여성과 남성의 비율이 동등한 조직 내에서 굳이 여성들에게 본을 보여야 하는 모습을 규정하고 있는 모습이라니...

다른 남직원들을 평가할때 누가 저사람들은 회사일도 열심히 하고 집안도 잘돌본다고 평가할까. 그들은 일로서만 평가를 하면서, 여직원은 그마저도 둘다를 잘해보여야 인정을 받는다니. 

 

동등한 조직원으로서의 존중을 먼저 요구하고 싶을 따름이다. 

남의 집안일 따윈 신경 끄시고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3. 이제 나도 엄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