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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준 Aug 10. 2021

남양유업은 대체 왜 저러는가 (2)

문제아 파스퇴르유업의 등장과 파스퇴르유업을 닮은 전근대적 남양유업

지난 편의 마지막에서 이미 엉망진창이었던 유업계의 경쟁을 선을 넘는 마케팅으로 변질 시킨 것이 파스퇴르유업의 등장 이후라고 했는데 이는 ‘기인이라고 밖에 표현할  없는 파스퇴르유업의 최명재 대표 때문이다.

논란의 인물, 파스퇴르유업의 창립자 최명재 전 회장


최명재 대표는 1927년 김제에서 태어나 서울상대의 전신인 경성전문대를 나와 상업은행에서 첫 커리어를 시작했다. 하지만 은행 봉급으론 먹고 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1960년에 은행에서 나와 택시기사를 하더니 택시기사로 모은 돈으로 답십리의 정비공장을 인수하고, 이 정비공장을 운영하면서 택시 30대를 마련해 택시회사를 설립한다. 그리고 이렇게 모은 돈으로 이란으로 건너가 건설자재를 운송하는 운수업으로 엄청난 돈을 벌고 팔레비왕조 붕괴 직전에 한국으로 돌아온다.


이 돈으로 뭘 할까 고민하던 중에 목장에서 말을 탄 레이건의 모습이 멋있다는 이유로 목장업에 뛰어든다. 당시는 정부에서 목축업을 대대적으로 육성하던 때이니 타이밍도 맞았다. 이렇게 목장을 운영하던 중에 일본에서 [진짜 우유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발견하게 되고 여기서 저온살균 우유를 알게 된다. 그리고 국내에 들어와 59세이던 1986년에 회사를 설립하고 국내 최초로 저온살균 우유 생산을 시작하니 그게 바로 파스퇴르 유업이었다.


파스퇴르 우유의 가격은 기존 우유의 2배였지만 맛있다는 소비자들의 입소문과 ‘저온살균을 한 고급 우유를 먹어야 한다’라는 광고로 알음알음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런 내용으로만 광고를 했으면 괜찮았겠지만 최명재 대표는 목적 달성을 위해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전근대적 기업인에 가까웠다.


파스퇴르유업은 기존 유업계에서 장기보존을 위해 활용했던 고온살균법을 ‘고온으로 우유를 태우기 때문에 구수한 맛은 있지만 영양소가 대거 파괴된 우유’이며 ‘저온살균을 한 파스퇴르 우유가 진짜 우유’라는 광고를 내면서 논란을 시작했다. 이러한 광고 덕분에 고급화가 가능했지만 당연하게도 기존 업계의 반발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공정위에서 허위과장광고로 판정하고 시정명령과 사과광고 게제라는 징계를 내리지만 파스퇴르측은 여기에 불복하고 이의신청을 낸다. 그리고 이의신청이 기각되자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이 마저도 패소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스퇴르유업은 허위과장비방광고의 강도를 더욱 강화해 나갔다. 아예 특정 업체를 타겟팅하여 비방하는 경우도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한•덴마크유가공사의 덴마크우유를 ‘원유를 엄선치 않고 세균이 많은 것을 사들여 처리함으로 건강에 해롭다’라고 비방하는 식으로, 이렇게 경쟁사에 대한 비방도 끊이질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파스퇴르가 진짜 우유 논란을 벌이자 89 소비자보호원에서 ‘저온살균 우유와 고온살균 우유 간의 영양 차이가 없다라는 내용을 발표했는데 이를 보고 파스퇴르측은 소비자보호원을 비방하는 광고를 대대적으로 실었다.  때문에 소비자보호원이 최명재 대표를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과 업무방해혐의로 고소하기도 했다.


파스퇴르 유업이 허위과장비방광고를 계속 이어나가자 이젠 공정위에서 직접 고발조치를 취하기 시작한다. 부당표시와 허위과장광고를 금지하고 사과광고를 싣고록 시정명령을 내렸는데 파스퇴르측이 이를 깔끔하게 씹어버리고 계속 이어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이 나오자 남양유업과 매일유업을 포함한 유가공협회는 파스퇴르의 대법원 패소 사실을 신문광고로  정도로 기뻐했다. 문제는 여전히 파스퇴르는 승복할 마음이 없었고  때문에 공정위에서 검찰에 5번이나 고발할 정도였다는 것이다.


이런 파스퇴르와 가장 치열하게 싸운 곳이 바로 업계 1위였던 남양이었다. 파스퇴르는 갓 분유업계에 진출한 상태였기에 남양을 노릴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파스퇴르는 ‘남양유업이 동물 사료용, 공업용 분유 만드는 기계로 어린이 분유를 만들고 있다’라는 내용의 광고를 낸다. 당연히 남양측은 광고금지 가처분 신청을 걸었고 수락된다. 그러자 파스퇴르는 자사의 분유는 ‘근육살에 왕뼈가 되는 어린이 분유지만 다른회사 제품은 두부살에 바늘뼈가 되는 분유’라는 내용의 광고를 실었으며 또 한번은 ‘남양은 카제인나트륨을 만드는 과정에서 양잿물을 사용하고 있다’라는 광고로 비방을 이어갔다. 이러한 파스퇴르와 남양의 비방전쟁은 이후 남양의 승소와 거기에 불복한 파스퇴르간의 6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남양유업의 승리로 마무리 된다


파스퇴르가 이런 식으로 시장을 교란한 것은 이런 노이즈, 네거티브 마케팅이 시장 후발주자인 파스퇴르의 이름을 알리는데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매일 떠들썩하게 논란을 만들어대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런가?’하는 생각에 파스퇴르 제품을 구매하게 되고 파스퇴르란 브랜드를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파스퇴르가 상습적인 위반으로 발생하는 벌금과 배상금을 감수하면서까지 계속 허위과장비방광고를 이어 나간건 그걸 감수하고도 얻는 이익이 컸기 때문이다.


그 정점이 1995년에 벌어졌던 고름우유 파동이었다. 한 방송사에서 유방염을 앓는 젖소 우유에 대한 보도를 하자 그 직후 파스퇴르가 ‘우리는 고름 우유를 팔지 않습니다’라는 광고를 내면서 시작했다. 광고 내용은 파스퇴르는 고름우유를 팔지 않는다는 것이지만 이걸 뒤집으면 경쟁사는 고름우유가 있다는 뉘앙스로 읽힐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유가공협회에서 ‘파스퇴르가 고름우유임이 밝혀졌다’라는 내용의 광고를 내며 응수하게 된 것이다.


결국 공정위는 양쪽 광고 모두 허위비방광고로 판결하고 허위광고 중지 및 법위반 사실을 신문에 광고로 싣도록 결정했다. 물론 파스퇴르의 행적을 생각하면 이번 판결이라고 달라질 리가 없었기에 파스퇴르는 한국유가공협회가 공정위의 시정명령으로 낸 법위반사실 공표광고를 자사의 광고로 활용하여 마치 고름우유 전쟁에서 파스퇴르가 승리한 것처럼 교묘하게 활용을 했다.


하지만 이러한 고름우유 논란은 선을 넘어도 너무 많이 넘은 행동이었고 이 논란으로 인해 소비자들의 우유 소비가 위축되어 유업계 전체에 위기감을 부르게 된다. 1989년의 우지파동으로 80년대까지 대기업이었던 삼양식품이 재기불능에 빠지고 라면업계가 불황에 빠진 것을 보았기에 유업계 전체가 위기의식을 느꼈던 것이다. 이로 인해 파스퇴르측도 그제서야 전보다 비방을 줄였지만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외환위기가 터지고 파스퇴르유업은 부도를 맞고 만다.


최명재 대표 개인은 나쁜 수단까지 가리지 않는 지독한 사업가이면서도 이렇게 지독하게 번 돈을 민사고에 다 털어넣는 복잡다단한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어쨋거나 그 지독한 사업가의 면모가 원래도 엉망이었던 유업계의 경쟁을 더욱 흙탕으로 빠뜨린 점은 무시할 수가 없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 지독한 파스퇴르와 가장 크게 전면전을 치르던 사람이 바로 남양유업의 홍원식 대표란 점 또한 빼놓을 수가 없겠다.

현재 논란의 중심, 남양유업 홍원식 회장


1990년, 장남이었던 홍원식 현 남양유업 회장이 남양유업의 대표이사에 취임한다. 하지만 실제 경영 참여 자체는 그 이전부터라고 보는게 일반적이다. 홍원식 회장이 경영을 맡은 이후로 남양유업은 최전성기를 맞이한다. 91년 불가리스 출시를 시작으로 94년 아인슈타인 우유, 96년엔 프렌치카페를 출시하는 등. 남양이 저출산으로 하락세를 맞이하던 분유업을 벗어나 종합 유업기업으로 발돋움하는 대표 상품들이 홍원식 대표때 출시되었다.


하지만 파스퇴르 유업 때문에 덜 논란이 되긴 했어도 남양유업 또한 여러 논란을 과거보다 더 많이 일으켰다는 점은 부정할 수가 없다. 우선 89년에 슬라이스 치즈 로젠하임을 출시하면서 기존 업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보존제를 유해물질로 몰아가는 일명 ‘방부제 논란’을 일으켰고, 지난 1편에서 언급했듯이 93년엔 삼촌의 회사였던 남양산업의 이유식을 마치 유사품으로 취급하는 광고를 냈다가 징계를 받기도 했다.


또 94년엔 매일유업에서 맘마밀을 출시하자 남양유업에선 ‘스탭로열에는 농약으로 오염된 밀가루를 쓰지 않습니다’라는 광고를 냈는데 이 때문에 매일측으로부터 공정위에 제소를 당한다. 물론 남양 또한 ‘청정지역의 햅쌀을 사용한다’라는 맘마밀의 광고 문구를 걸어 공정위에 제소한다. 이 사건으로 인해 남양이 한국제분협회로부터 밀가루에 대한 오해를 퍼트린다며 제소당한 것은 덤이다. 결국 이 문제를 보다 못한 공정위가 남양과 매일을 고발조치하고 2억원이라는 당시 최대 규모의 과징금을 때리게 된다.


97년에는 남양유업이 ‘1등급 원유만 사용합니다’라는 광고로 일명 ‘1등급 논란’을 불러 일으킨다. 당시 파스퇴르가 일으킨 ‘고름우유 파동’으로 인해 흰우유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상황에서 1등급 원유 마케팅은 소비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내놓은 묘수긴 하나, 마치 다른 우유들은 1등급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한다는 점에서 네거티브 마케팅에 해당했다.


파스퇴르가 부도를 맞고 롯데에 인수되어 사라지자 파스퇴르에 한동안 가려져 있었던 남양유업의 수단을 가리지 않는 모습이 점점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는 90년대 후반 이후 매일유업을 비롯한 다른 경쟁사들의 공격성이 줄어들었기에 더욱 부각된 부분이다.


남양은 2002년에는 이유식 광고에서 경쟁사를 부당비당하는 광고로 공정위의 시정명령을 받더니 2005년엔 일명 ‘불가리아 판매금지 사건’을 일으켜 논란이 된다. 불가리스로 남양유업이 장악하고 있던 발효유 시장에 뛰어들기 위해 2005년에 매일유업이 불가리아라는 제품으로 도전을 하자 ‘상표 혼동을 일으킨다’라는 사유로 법원에 부정경쟁 행위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사건이다. 그리고 이 판결에서 법원이 남양유업의 손을 들어줌으로 매일유업의 불가리아가 판매금지 처분을 맞게 된 사건이다. 이 때문에 매일유업은 고심 끝에 발효유의 이름을 장수나라로 바꿨다가 이도 안되자 도마슈노란 브랜드로 나중에 다시 이름을 바꿔 내게 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문제 없는 것처럼 보이자만 사실 매일유업의 불가리아는 불가리아 국영기업인 LB 불가리쿰과 계약을 맺고 유산균 공급을 받아 만든 제품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LB 불가리쿰과 유산균 공급 계약을 맺고  유산균으로 제조한 상품에 불가리아라는 상표를 붙일  있는 라이선스 계약인 것이다.  때문에 매일유업의 불가리아란 브랜드는 불가리스의 카피캣이 아니라 정당한 계약의 산물이었다. 오히려  법정 공방에서 남양유업의 불가리스가 불가리아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 드러나서 더욱 논란이 되었다. 결국 매일유업은 정당한 계약의 결과물로 브랜드를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상표분쟁으로 인해  상표를 이용하지도 못하고 도마슈노라는 이름으로 바꿔 판매해야 했던 것이다.


여기에 남양유업식 네거티브 마케팅의 정점이  사건이 벌어진다. 바로 ‘프렌치카페 카제인나트륨 논란이다. 남양이 커피믹스 시장에 진출하면서 프렌치카페에 ‘합성첨가물인 카제인나트륨을 넣지 않았다라는 불안/공포 마케팅을  것이다. 카제인이 정제된 우유단백질이고 이를 물에  녹기 위해 나트륨과 결합한 것이 카제인나트륨이란걸 남양유업이 모를 리가 없다.


애초에 카제인나트륨 유해성 논란을 일으켰던 곳이 파스퇴르유업이었고 이 때문에 남양유업은 독일정부의 공식문서까지 공개해가며 유해성을 일축했다. 게다가 93년에 남양은 자사의 이유식인 스텝로열에 칼슘흡수 촉진을 위해 ‘카제인포스포펩타이드’를 넣었다고 광고까지 했었다. 하지만 남양은 합성첨가물이란 단어와 카제인나트륨이란 어려워보이는 단어를 사용함으로 마치 이 첨가물이 몸에 나쁠 것 같다는 느낌을 준 것이다.


이처럼 홍원식 회장의 남양유업은 최명재 대표의 파스퇴르유업과 여러모로 닮은 바가 많았다. 좋은 상품개발능력을 밑바탕으로 목적을 위해선 수단 가리지 않는 저돌성과 매우 공격적이다 못해 위험하기까지 한 광고와 마케팅까지. 차이점이 있다면 파스퇴르는 좀 더 노골적이었다면 남양유업은 좀 더 교묘했다는 정도다. 90년대에 가장 치열하게 싸운 두 기업이 여러 모로 서로 닮은 꼴이라는 점은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더 나아가 영업현장에서의 잡음도 노출되기 시작했는데 2005년에는 남양유업 대리점에서 주문량을 넘어서는 물량이 납품되거나 주문하지도 않은 물건이 오는 ‘밀어내기’가 발생하여 법정 공방으로 가는 일이 벌어졌다. 이 사건은 4년 후에 배상판결로 마무리 되었고 이때까지만 해도 이 사건에 크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없었다.


하지만 2013년에는 이러한 잡음들이 누적되어 결국 남양유업 대리점 갑질 사건으로 터지게 된 것이었다. 이때는 과거와 달리 많은 소비자들이 이 사건에 관심을 가졌고 뒤늦게 남양유업측이 사과를 하긴 했지만 사과의 타이밍이 늦었을 뿐만 아니라 형식적인 사과라고 생각했기에 불매운동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올해 초에 불가리스가 코로나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보도자료를 발표하면서 방점을 찍게 된다.


홍원식 회장은 난잡하기 이를데 없었던 80년대 유업계를 경험하고 파스퇴르와 직접적으로 충돌하며 경영을 이끌어왔던 사람이다. 그리고 그가 이끌었던 남양유업은 파스퇴르와 비슷한 구석이 많았고 허위광고와 네거티브 마케팅이 너무나도 익숙했던 기업이었다.


기업이 성장하고 자리잡는 초기에는 무자비한 경영자의 존재가 경쟁을 유리하게 만들며 기업을 빠르게 키워나가는데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경향성은 [하드씽] 등의 책들을 통해서도 많이 언급된 부분이다. 사실 파스퇴르를 이끌던 최명재 대표 또한 이러한 방식으로 사업을 키우고 영위해온 사람이다. 그가 한 사업들은 많지만 모두 10년이 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더욱 납득이 갈 것이다. 하지만 남양유업은 스타트업이 아니라 너무나도 거대한 기업이고 게다가 업계 1위 기업이었다. 과거의 경영방식을 용납하기엔 시대가 너무나도 많이 변한 것을 간과했다.


최명재 대표가 전근대적 기업가였던 것처럼 홍원식 회장 또한 이러한 의미에서 전근대적 기업가로 볼 수 있다. 최근에 남양유업이 경영권 이전을 결정하는 임시주총을 일방적으로 연기하는 사태를 저질렀던 것도 이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전례도 없고 상식을 벗어난 행동이라 생각했지만 애초에 룰을 신경쓰지 않는 기업가에겐 그게 별 의미가 안되는 것이다.


남양유업의 상품개발 능력은 여전한 것으로 보이고 이는 남양유업이 가진 강점 중의 하나다. 하지만 이 회사의 문제는 전근대적 오너와 그 오너로 인해 형성된 조직문화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유지되는 한 현대인의 기준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결정들은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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