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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y Oct 20. 2023

모노 클리프, 그리고 가는 길

혼자서 놀기

무어라 이름을 붙일까? "출사"라는 명분이 있었다. 가을의 향기가 물씬했고,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생각, 나홀로 한다는 것, 그것을 실행에 옮기자 하면서 하루여행을 계획했다. 갈곳은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곳, 아침에 읽은 기사에서 소개된  그곳이었다.



준비물은 사진기와 전화기, 그리고 물과 약간의 간식 간단했다. 모노 클리프 주립공원(Mono Cliff provincial Park)으로 가는 길은 청명했다. 잠시잠시 차를 세우고 길과 하늘을 촬영했다. 다른 일이 있어서 갈때는 보이지 않던 풍경이다. 여행자의 눈이 떠지면, 새로운 것들이 보인다. 하늘의 구름 한점도 예사롭지 않다. 시골에 살다보니, 시골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도시의 다운타운을 생각하면 숨통이 조여오는 것같은데, 드넓은 들판은 언제나 나의 편이다.


모노 클리프 공원은 오렌지빌(Orangevill) 가까이에 있었다. 공원쪽으로 방향을 선회하자, 아스팔트같은 다져진 하얀흑길이 나온다. 그 기사에서 제공한 주소를 찍고 달려갔는데, 공원이 아니고 어떤 집앞이다. 제대로 읽지않고 링크된 주소를 복사해서 넣은 나의 실책이다. 다시 공원 주소를 넣으니, 20분 정도를 더 가야한다. 가는 길은 정말로 인가가 없는 나지막한 산들에 둘러싸인 곳이다. 연극공연의 커튼이 열리기 전처럼 풍경이 얼마나 대단할지 가슴이 두근두근한다. 도착한 시간이 2시가 조금 넘어있었다. 당연히 표를 끊고 들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입구에는 직원이 한명도 없다. 주차장 들어가는 곳 앞에 한대의 차가 세워져 있고, 전화기를 들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보인다. 나도 그뒤에 차를 대고, 설명을 읽으니, 전화를 하거나 Q코드를 스캔하라고 되어있다. 온라인으로 예약을 하고 왔어야 하나보다.


아직도 "기분내키는 대로" 하는 구세대인 나는 이런 장벽을 만나면, 힘이 빠진다. 2시간을 달려왔는데, 그냥 돌아갈 수는 없다. 전화를 했다. 예약을 할 수는 있는데,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2시간 가능한 자리가 있다고 한다. 그렇게 하라고 했다. 전화예약할 때, 그 청년(?)이 내 발음을 못알아 들었다. 특별히 R과 L 발음을. 나의 라스트 네임이 Lee라고 몇번을 말해도 Ree냐고 되묻는 거다. L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하면서 Leg, Long 등 애써서 설명해도 아마도 그 자체를 못알아 듣는 것 같다. 뒤로 넘어갈 지경이다. 어쨌든 모든 정보를 주긴 했다. 돈도 지불하고. 신용카드 이름도 주어야 했는데, 돈이 빠져나간 것을 보면, 제대로 입력한 것 아닐까 생각했다. 이메일로 티켓을 보내준다고 했다.



다시 되돌아나와서 주변을 드라이브했다. 나같은 사람이 많은지, 길가에 주차하지 말라는 사인판이 많았다. 좁은 시골길, 차 한대가 주차할 수 있는 환경이 없다니.. 조금 더 깊이 들어가니, 몇대의 차가 주차되어 있고, 옆에 좁은 트레일이 보인다. 동네 사람들이 다니는 트레일인 것 같다. "안전은 책임못집니다(take your own lisk)" 사인이 트레일앞에 붙어있다. 새가슴인 나는 조금 들어가다가 되짚어 나왔다. 주립공원이나 그런 곳이 아니라, 무슨 일이 있을 때 도움을 청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차에서 청승맞게 싸들고온 간식을 먹었다. 



공원 주변을 드라이브하다 보니, 큰길이 나온다. 가스도 주유하고 시간을 기다리는데, 도착해야할 티켓이 이메일로 오지 않는다. 아무래도 그 청년이 이메일 주소도 제대로 받아적지 못한 것 같다. 전화하기가 싫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서 다시 걸었다. 이번에는 노숙한(?) 여인이 전화를 받았다. 이러저러한데 아직 티켓이 오지 않아서 전화했다고 하니, 그 여인이 확인을 해주었다. 이메일 주소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L이 R로 되어 있다는 것. 혹시나 컨퍼메이션 번호를 달라고 했다. 그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는지 몰라도. 전화를 끊자마자 이메일로 티켓이 왔다. 내 귀로 듣기에 구분이 안되는 발음은 나도 낼 수 없음을 다시한번 알게 됐다. 

시간을 보내다 4시에 다시 갔다. 차 두대가 입구에 주차되어 있고, 차밖에 나와서 우왕좌왕하는 똑같은 모습을 목도한다. 나는 그들 옆으로 차를 주차하고  밖으로 나갔더니, 한 아주머니가 나보고 중국인이냐고 물어본다. 아니라고 하고, 그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조금 보다가 내가 먼저 하겠다며, 바코드를 찍으니, 주차를 막았던 막대기가 위로 올라간다. 내가 운전해서 들어가는데, 옆에 섰던 아주머니가  내뒤를 따라 들어온다. "땡큐" 하면서. 나는 뒤로 돌아보며, "나 때문에 열린 것입니다. 당신 때문이 아니고.." 이렇게 말해줬지만 이미 그들은 안으로 들어온 다음이다. 


나처럼 티켓을 예매하지 않고 "기분내키는 대로 온 사람들"에 분명하다. 내 덕분에 들어왔지만, 조금 떳떳지 못했을 것이다. 같이 빨리 들어갑시다, 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어쨌든 시작이 상쾌하지 않았다. 내가 나에게 바래본다. 다음에는 그런 사람들을 좀 도와줄 마음을 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내게 남은 시간은 2시간, 나의 길을 막아서고 있는 그들에게 짜증내지 말고 말이다.


모노 클리프 공원은 생각만큼 다양하지 않았다. 로빈슨 클리프를 마음에 품고갔으나, 그건 아니었다. 클리프 끝까지 갔는데, 해가 넘어가는 시간인지라 해를 받는 곳과 그늘이 극명하게 나뉘고, 왜 이 먼곳까지 나왔을까, 좀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둘씩 셋씩 트레일을 도는 사람들이 있어서 안전한 느낌이 들어서 다행이었다. 어떤 곳에선 개줄이 풀린 강아지들이 나를 쫓아오려고 해서 겁을 먹기도 했다. 주인들은 언제나 하는 말, "얘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말을 잘듣습니다"고 했지만, 어릴때 개에 물린 적이 있는 나는 두렵다. 개들의 야성이 살아날까봐서 말이다. 



2시간 좋은 운동을 한셈치면 되겠다고 마음을 달래고 그날의 나들이를 마쳤다. 그런데, 이 글을 쓰는 이유가 있다. 홀로 나간 출사로서는 나쁘지 않았음을 집에 오고나서 알게 됐다. 모노 클리프에서 뿐만이 아니라, 가는 길에 오는 길에 나를 세웠던 그 장소, 그 장면들이 나름 운치있게 나온 것같다. 



영어 발음 테스트 받았고, 중국인 아주머니에게 쏘아붙이고, 나의 준비성에 실망한 날이긴 해도, 파인더에 기록된 그날의 풍경은 내 마음에 울림을 준다. 조금 더 용기를 내어도 되겠다고, 또 사진기를 들고 나가자고 말이다. 모노 클리프, 그리고 보니 "모노 비전"에 담을만한 이름을 지녔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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