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잘하고 있다"

라고 말씀하셨던 엄마의 입원기

by mindy


엄마는 전화하면 언제나 그러셨다.

"내가 잘하고 있다. 이럴때 내가 잘못되면 모두가 너무 힘들어지지 않겠니? 나는 잘하고 있으니 너희들이나 잘 지내라"라고 말이다.

그러나 홀로 참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아무래도 엄마를 보러가는 발길이 뜸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결국 엄마는 병원신세를 지게 되셨다.




"할머니가 굳이 생명연장을 해야한다면,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셔."

조카가 울먹이며 전화가 왔다. 추수감사절날 전화목소리가 좋지 않으셨는데, 괜찮으시겠지 하고 그날밤 자고 일어났더니, 할머니가 응급실에 있다며, 연락이 왔다.


"의사가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서 물어보는데, 할머니께서 그런 도움을 받지 않겠다고 하셔. 이모들도 알아야 할것 같아서" 하며 말투가 갈라진다. 엄마가 응급실에 들어간 이후로 자매들이 바로 줌(ZOOM)미팅을 하기로 했다. 줌 앱을 설치하고 몇번 사용해본지라, 잘 모르는 자매들에게 설명하고 줌룸을 마련했다.


그날 줌에 모인 6명의 자매들은 모두 한차례씩 울고, 어떻게 해야하나 의견들을 모았다. 토론토에 있는 조카가 엄마를 돌보고 있지만, 바로 내가 내려가기로 했다. 미국에 있는 동생은 비행기표를 알아보겠다고 했다. 엄마가 호흡곤란과 허리통증으로 병원으로 실려 갔고, 쉼쉬기 어려워하는 그 광경을 동영상으로 동생이 보게 되어서, 엄마의 마지막이 온것이 아닌가,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미국과 캐나다는 국경봉쇄중인데, 비행기로는 올수 있다 하였다. 그리고 2주간의 격리가 이어지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면 또다시 2주간 격리를 해야한다. 미국으로 떠난지 1년된 동생은 엄마곁에서 살가운 딸이 되어 여러모로 보살펴주었는데, 엄마가 위중해지자, 바로 건너오겠다고 말해주니 든든해짐과 동시에 위기의식을 느낀다.


그날 3시간을 운전해 응급실로 달려갔다. 조카는 새벽에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가서 내가 올때까지 할머니곁에 있었다. 엄마의 코에는 산소삽입관이 끼어있고, 표정없이 나를 보신다. 코로나 때문에 병원에는 1명 이상 있을 수도 없었다. 내가 들어가면서 조카는 떠나야했다.


엄마의 병명은 "폐렴" "호흡 곤란" "허리통증" 등이었다. 폐 주위에 물이 있어 주사로 약물을 주입, 소변으로 배출한다는 간호사의 설명이다. 진통제등으로 엄마의 통증은 많이 잡혀갔지만, 움직일 수 없으니, 병실이 준비되는 대로 옮기겠다고 했다. 응급실에서도 칸막이된 곳에 보호자 의자 하나와 손닦는 곳, 물컵을 올려놓을 수 있는 작은 사이드 테이블이 있어서 있을만 했다. 간호사도 매번 바뀌고, 의사도 언제 올지 알수 없어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었다.


엄마는 통증이 잦아들자 많은 말씀을 하셨다. 어떻게 병원에 오게 됐는지, 오면서 이렇게 아플 바에는 "하나님 저좀 데려가 주세요" 기도했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말이다. 몸이 안좋을 때 병원에 가자고 하면, 병원에 가는 것을 무엇보다도 싫어하셨다. 죽을만큼 아프면, 죽기 위해서 가야할 곳이 병원이셨던 게다. "아플만큼 아파야 이세상을 떠날 수 있다"는 신념아닌 신념을 가진 엄마는 이번에야말로 그때라고 생각하셨다.


응급실에서 새 병실로 옮겼는데, 마치 반지하에서 살다가 넓은 콘도미니엄으로 이사한 듯 그 병실은 참으로 햇빛이 잘들고, 멀리 노랗게 빨갛게 물드는 가로수와 쉴새없이 흐르는 차량들로 삶의 의지가 활활 타는 것같은 기분좋은 느낌의 방이었다. 특실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같이 넓은 병실안에는 환자를 위한 화장실이 있었고, 온갖 장비가 달린 침대는 응급실 작은 침대와 비교됐다. 코로나로 1인 면회로 제한했고, 그 1인조차 여러 사람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 지정된 1인만 가능하다니, 엄마가 병원에 있는 동안은 내가 지정 면회자가 되어야 했다.


엄마가 있는 병원은 토론토에 있는 노쓰욕 제너랄 병원(North York General Hospital)인데, 엄마 경험상으로는 이번 입원이 가장 근사(?)했다고 하신다. 엄마는 급하면 부를 수 있는 구급호출 팔찌를 차고 있는데, 그것 때문인지 아니면 코로나 때문에 병원 관계자들이 "의무가 아닌 의지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인지 알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영어가 되지 않는 엄마에게 한국말 몇마디를 배워서 격려해주고, 기분좋게 살펴주고 했던 것을 고마와하신다. 이번 입원으로 엄마는 병원이 꽤 괜찮은 곳이며, 양로원에 가는 것을 피할 일은 아니라고 마음에 결정하신 것같다.


DSC04475.JPG 작년 어머니날, 온실 정원에 놀러가서 찍었다


병실 면회는 철저히 통제되고, 전날 몇시에 오겠다는 말을 해놓아야 출입이 허락되었다. 한번은 간호 데스크에 사람이 없어서 엄마담당 간호사가 나의 다음 방문을 컴퓨터에 입력하려 낑낑댔다. 다음날 출입구 데스크 컴퓨터에 명단이 누락되어 엄마 병동 간호데스크에 전화하는등, 확인하느라 접수처에서 한참을 기다려야했다. 간호 데스크에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간단한 문제 하나에도 긴 시간이 걸렸다. "어떤 개인적인 관용"도 허락할 수 없다며, 원칙대로 운영하는 것이 불편했지만 믿을만했다. 입구와 출구를 확실하게 구분해 놓았고, 들어갈 때마다 방역수칙에 대한 질문을 반복해서 통과하면 팔에 팔찌를 해주어 병원내 사람들의 인적사항을 관리하고 있었다. 엄마도 병원에 들어가자마자 코로나 검사를 했는데, 그 결과가 24시간에서 조금 더 걸려서 음성으로 나왔다. 조카는 할머니와 함께 병원에 있었고, 할머니의 검사결과가 나오지 않아서 그 다음날 회사에 갈수 없었노라는 연락이 왔다.


일반병실로 옮긴후로 엄마는 기분이 한결 좋아지셨다. 면회가 하루 2시간으로 제한되었는데도, 간호사들이 엄청 잘해준다며, 그 다음날 가면 표정이 나쁘지 않았다. 가족들은 엄마와 영상통화를 하면서 엄마의 퇴원을 기도했다.


엄마는 "아프지 않은 곳으로 빨리 데려가달라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신 것같다"며 "하늘나라"가고 싶다는 기도였는데, 세상에서도 아프지 않을 수 있다고 알려주신 것같다며 감사해하셨다. 식사도 조금씩 하고, 콧줄 산소호흡기도 제거하면서 호전이 되었지만, 허리는 여전히 많이 아파서 걷기 연습을 시키기 전에는 조금 더 강한 진통제를 주었다. 엄마는 워커에 의지해 입원 나흘째에는 60m를 걷고 그 다음날에는 80m를 걸었다. 주말에 내가 갔을 때 한인의사가 병실에 들렀다. 엄마에게 통역없이 마음껏 말씀하시라 하니, 손녀뻘되는 의사에게 어찌나 어린애스럽게 이야기하는지, 귀엽기까지 했다. 한국어도 잘하는 의사를 만날 수 있어서 감사했다.


병원에서 잘 돌봐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하시면서도 밤새 잠을 한잠도 못주무셨다고도 하셨다. 또한 시간이 안가서, 한참을 참았다 눈을 뜨면 시계는 겨우 5분이 지났더라며 혀를 차신다. 나와 있는 2시간은 그야말로 쏜살같이 지나가는데, 왜 혼자 있는 시간은 그리 더딘지 모르시겠다고.


엄마는 공책에 적어놓은 이야기를 읽어내듯 많은 말씀을 해주셨다. 그간 살아온 날들이 중첩되어 하나하나 펼쳐보이는데 나는 대부분 아는 이야기지만 가끔씩 새로운 내용이 포함되기도 했다. 한번은 내가 곁에 있는지 알고 한참 이야기를 하다보니, 혼자 이야기하는 중이었다고 해서 가슴이 철렁하기도 했지만, 엄마의 정신은 꽤 또렷한 편이다.


엄마에게는 살면서 수많은 감사할 내용이 있으나, "한"으로 남는 것도 많다. 내 진심이 통하지 못한것, 걱정되는 자식들 문제가 가장 컸다. 이미 고인이 된 엄마의 남동생에 대한 처절한 아픔은 어찌 할 수 없는 것중에 하나이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마음에 두고 있고, 해결될 일이 있다면 도와주고 싶기도 하지만, 내가 나서봤자 잘될것 같지 않은 엉킨 실타래같은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아무때 가도 마음편히 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엄마가 병원에 계신 동안 자매들의 줌 미팅이 몇번 더 있었다. 이제는 엄마 혼자 사실 수 없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에 모두가 동의했다. 그동안 당신의 아파트에서 살다가 돌아가시면, 가족들이 엄마의 아파트에 모여 장례를 치르고, 고인을 추모하는 장면을 꿈꾸셨으나 그렇게 되지 않을 공산이 더 커보인다. 엄마도 우리도, "양로원"에 대한 생각은 받아들이기 쉽지않은 일이었고, 혼자 사시는 것이 그리 힘들어보이지 않아 결정을 미뤘는데, 이번 입원경험은 전문가가 있는 기관에 가야 한다는 걸 확인시킨다. 양로원도 가고싶다고 바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관계기관의 허락(?)이 있고, 긴 줄의 끄트머리에 섰다가 오라면 가는 것이니, 이제 첫단추를 꿴셈이다.


엄마의 퇴원이 입원 한주쯤 지나, 급하게 결정되었고, 퇴원날 가보니 "왜 이리 늦게 왔냐"며 엄마의 인상이 좋지 않다. 병원복을 벗고 사복을 입는 것을 가족이 아닌 간호사가 해줘서 마음이 상하신 듯했다. 나는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는데, 내게 짜증스런 눈길을 주셨다. 당신이 하지 못하시는 일, 딸이 해주면 좋았으련만..


퇴원해서 이틀간 엄마와 있었다. 집에 오시니, 당신의 질서대로 살아가고 싶으시다. 당신이 움직이기 쉽지 않으니, 내게 말씀하시는데 가령, 약봉지가 머리맡에 바로 있어야 하지, 5cm만 떨어져있어도 안된다. 텔레비전 리모컨과 전화가 그 옆에 있어야 한다. 엄마 아파트에서 엄마에게 도움을 주는 간호사가 방문하여, Long Term Care(양로원과 같은 의미)가 필요한가 하는 것들을 상담하는데, 그때문에 머리맡에 있던 상을 엄마발치로 밀어놓았다. 그러니 약의 위치가 엄마가 원하는 반대방향으로 되어있으니, 엄마는 내게 약을 똑바로 놓으라고 하셨다. 나는 그녀와 이야기하느라, 그리고 그녀가 가면 다시 반대편으로 끌어올 것이라, 그냥 내버려두었더니 엄마 스스로 그 약위치를 재조정해 놓고 있으셨다. 90% 정도는 말없이 엄마의 요구대로 하지만, "별 쓸데없는 일"로 보이는 일에는 늦게 반응하는데, 결국 엄마의 말씀대로 하는 수밖에 없다. 간호하는 사람은 쓸개를 빼놓아야 하는데, 가끔씩 "엄마 조금 심하시네" 싶기도 하다.


병원에서 춥다시며 담뇨를 두겹으로 접으라고 내게 말씀하셨다. 좁고 길게 접으면 안되고, 넓고 짧게 접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데, 담뇨를 털어접으려는 나를 뚫어지게 보시면서, 가로로 접으라고 말씀하셨다. 말없이 그대로 해도 되지만, "엄마, 그럼 가로로 접어야지, 세로로 접겠어요" 했더니 "그러게, 내가 쓸데없이 잔소리하네" 하셨다. 그래서 "다 아는 일을 말씀해주시는 게 잔소리여요" 했다.


병원에 있을때 목이 넓어 벗고 입기 쉬운 반팔 스웨터를 가져오라 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다른 것을 가져간 적도 있었다. 엄마는 그 옷을 꼭 입으시고 싶으신지 몇번 더 말씀하셨다. 나중에 퇴원해서 보니, 엄마의 자켓안에 그 옷이 걸려있었다. 그 옷을 찾으면서 엄마의 옷장을 다 뒤졌는데, 흐트러진 곳이 한군데가 없었다. 그리고 반팔옷은 하나도 없어서, 엄마는 반팔 티셔츠가 없나? 했는데 나중에 말씀하시길 여름옷은 벌써 다 정리해서 큰 가방에 넣어 보관중이라고.


매번 옷등 살림살이를 정리해서 필요없는 것은 집밖에 내놓고(그러면 필요한 사람들이 가져간다했다), 조금 아까운 것은 보자기에 싸놓았다가 내게 주신다. 우리 가게 뒤편에 "중고샵"이 있으니 그곳에 갖다놓으라면서. 엄마는 지퍼락백이 어디에 있는지, 덜어쓰고 남은 간장, 기름이 어디 있는지, 서랍 몇번째 어느쪽에 엄마의 중요서류가 있는지, 하다못해 서랍 저구석에 있던 빨대도 찾아내게 하셨다. 일어나기 힘들때 누워서 물을 마셔야 하는데 그럴때 꼭 필요한게 빨대였기에, 엄마가 찾아보라는 서랍을 건성으로 보고는 없다고 말하는 내게, 다시 재차 설명해줘서 안쪽 비닐봉지에 싸여 묶여있는 걸 찾아내기도 했다. 남아있는 돈은 얼마인지, 현금은 어디에 있고, 통장에는 어느 정도 돈이 있는지 그런 것들도 이제는 모두 말씀해주신다. 잘자란 나무가 마지막 잎을 떨구는 느낌이 난다. 엄마에게서.


퇴원 이틀째 되면서 엄마가 힘겹게나마 화장실에 다니실 정도가 될때쯤, 2번타자 언니와 바턴터치를 했다. 양로원에 접수를 하고, 자리가 나올때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 지 모르겠다. 가족이 돌아가면서 돌볼만큼 돌보다가, 딸집으로 모셔와야 할수도 있다. 엄마는 엄마의 집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지만, 나중일은 우리에게 맡기시겠다 하셨다. 미국 동생 챤스까지 쓰고 난 다음에, 한두번씩 더 차례대로 엄마 곁을 지키다가 너무 길지 않은 시간내에 의사 간호사가 상주하는 양로원으로 들어가시게 된다면 그것만큼 감사할 일은 없을 것같다. 한인양로원이 하나 있지만, 엄마는 꼭 한인양로원이라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신다. 그때쯤 되면, 주는 음식 먹고, 아프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중요할 거라 말씀하신다.


현재 살고있는 노인아파트에서는 매일 아침, 전화해서 안부를 물어주는 직원이 있고, 일주일에 두번씩 목욕을 해주러 온다. 그리고 2주에 한번씩 청소와 빨래를 도와주고 있다. 토론토 시에서 제공하는 것인데, 엄마가 계신 아파트에 직원들이 상주해 노인들을 돌봐주고 있다. 이번 상담으로 매일 저녁 한번씩 들러 쓰레기를 치워주는 서비스를 해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따뜻한 음식을 배달시켜 먹을 수 있는지 그런 것들도 더 살펴보기로 했다. 어쩌면 한국음식을 해줄 수 있는 돌봐주는 분을 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루 2시간 정도 엄마집에서 말벗도 되어주고 한끼 음식을 챙겨준다면, 엄마가 기력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것 같다. 엊저녁 좋은 후보자가 나타나 함께 의논했다. 이런 여러가지 서비스를 받고 계시니, 한번 더 회복하셔서, 코로나가 극복되는 것도 보시고, 한국과 미국에서 딸들이 엄마보러 놀러오게 되면 좋겠다. 생전에 풀고가실 한이 있다면 그런 것들도 풀고 말이다.


나도 병간호가 아니라, 엄마와 나만을 위한 아름다운 여행같은 시간을 가져보고싶다. 자주 만났어도 충분하지 않다 여겨진다. 이런 날이 오기전에 했어야 하는데. 그당시에는 왜 다른 것들이 더 중요했는지 아쉽기만 하다. 엄마가 회복하셔야 하는 또다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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