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게국지 캐나다 상륙하다
자칭 "게박사"가 알려주는 게국지 레서피
엄마께서 "게국지"와 함께 다시 살아나셨다. 한참 기력을 쓰지 못하셨던 엄마를 세우는데 꽃게가 큰 역할을 했다.
10월 중순이 되면 중국마켓에는 슬금슬금 바다에서 잡혀온 살아있는 게가 왕발을 내두르며 큰 바스켓속에서 서로 팔씨름을 한다. 엄마의 게장담그기가 언제 다시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꽃게를 마켓에서 발견했던 그해부터 엄마의 캐나다살이는 한결 견딜만해졌을 것이다.
사시사철 살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순간 떴다가 소리소문없이 자취를 감추는 게는 "시간싸움"과 같아서 엄마는 이맘때면 게를 사야된다고 노래를 하신다. 엄마가 건강하실 때는 혼자서도 버스타고 배낭메고 게 사냥에 나섰을 것이다.
병원에 있을때 엄마는 몇번 그런 말씀을 하셨다.
이번에 마지막으로 게장 담고, 게국지 담아 애들에게 주려고 했는데, 그일을 못하는구나 싶어서 속이 상하신다는 얘기다. 병원에 계실때는 "엄마의 뜬금없는 소망"에 웃을 수도 울수도 없는 맘이었다.
그런데 퇴원하시고 나서 하루가 다르게 몸이 좋아지셨다. 우리는 엄마가 "자식 보약"을 복용하셔서 그런지, 이번에도 다시 우리곁으로 돌아오고 계심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스멀스멀 엄마의 음모에 우리가 동참하게 되는데, 바로 "게 사냥"을 시작하게 된다. 내가 토론토 있는 동안 큰언니와 시찰(?)을 갔더니 중국마켓에 게가 들어와있었다. 약간은 작아보이는 그것을 속이 찼나 엄마가 가늠하셔야 해서, 열댓마리 사왔다. 게들은 바스켓속에서 안나오려고 서로 엉켜있어서 집게로 잘 집어내야 했다. 그게 사뭇 야생적이다. 시장보던 사람들이 기웃거린다. 내가 보기에 그렇게 실해보이진 않았다. 엄마는 일단 "살아있는 게"를 본 것만으로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사다가 바로 냉동고에 넣어놓고, 나중에 게를 닦으면 된다 하셨다. 이번에 사온 것은 게장을 만들 정도는 되지 못하고 게찌개를 해먹을만한 사이즈다. 막내는 엄마가 필요로 하는 것을 제때 잘 공수해주는 것으로 유명한데, 작년에도 한 바스켓을 사서 엄마가 그것으로 양념게장도 담그고, 애지중지 일년내내 게장을 드셨다.
내가 엄마집을 떠나온 이후로 다른 자매들이 있었는데, 막내가 큰 바스켓째로 게를 사들고 와서 게잔치가 벌어졌음을 카톡을 통해 알려왔다. 양념게장을 담가서 먹고, 게장도 담갔다면서. 파운드당 가격이 오를때, 그때가 게가 좋을 때니, 비싸다고 외면하지 말고 사라는 게 엄마의 주문이다. 대체로 막내와 큰언니가 맡아서 그일을 한다. 올해는 막내가 사는 동네 중국마켓에서 한 바스켓 샀고, 그후에 또 한번 가서 또 한바스켓을 샀다는 소식을 들었다. 엄마네 냉동고에는 간장게장으로 태어날 게들이 들어있다.
미국동생이 있는 동안 토론토로 다시 내려갔다. 엄마가 노래를 부르는 게국지를 담그는 중차대한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 요구대로 동생과 나가 시장을 봐왔다. 그날 저녁 절일 것 절이고 다음날 아침에 담기로 하고 잠을 청했다.
자 이제 엄마의 지휘아래 게국지를 담가보자.
준비물:
배추, 애기배추, 알타리, 호박, 게, 새우, 파, 찹쌀풀, 게장국물, 게껍질등 삶은 국물
양념: 빨간 고추, 청양 고추, 마늘, 생강, 새우젓
만드는 법:
1) 배추, 애기배추, 알타리를 소금에 절인다. 너무 많은 소금을 뿌릴 필요는 없다. 서걱서걱 덜 절였여도 괜찮다. 중간중간 뒤집어주며 골고루 절여준다
2) 양념재료를 넣고, 소금, 고추가루를 조금 더 넣고 잘 갈아놓는다.
3) 호박을 썰어 소금을 솔솔 뿌려놓는다. 나중에 건져서 쓸 것이기 때문에 소금을 많이 넣지 않는다.
4) 냉동되었던 게를 꼼꼼히 닦고, 게를 4분의 1 크기 정도로 잘라놓는다
5) 새우도 자른다(서해안에서 잡히던 날씬한 새우를 넣으셨다고 하셨다. 우리는 냉동 생새우를 사다 넣었다.)
6) 절인 김치거리를 3번 헹구어 물기를 빼놓는다. 적당히 자른다. 파란 무우청과 애기배추등으로 색의 균형을 맞춘다. 예전에는 배추 겉껍데기를 주로 이용했다고 한다.
7) 갈아놓은 양념을 넣고, 찰쌀풀, 게장국물, 게를 끓여 식혀놓은 국물, 파, 호박을 모두 섞는다. 게장국물은 게를 담갔던 그 물로, 액젓처럼 사용한다고 보면 되는데, 양이 액젓보다 훨씬 많이 들어간다. 이번에 배추거리가 작은 배추 8개, 애기배추, 알타리등이 들어갔으니 꽤 많은 양을 담은 편이긴 하나, 계량을 하진 않았으나 적어도 1리터 정도는 들어간 것 같다. 짧짤한 맛으로 먹는다고 보면 된다. 중요한 것중 하나, 꿀 설탕등을 넣지 않았다. 꿀은 절대로 넣으면 안되고, 설탕은 넣으려 하다가 호박도 있고, 게장국물에 들어간 감초도 있으니 넣지않기로 했다. 꿀과 게는 상극이라는 엄마의 말씀이다.
8) 배추거리를 넣어 버무린다
양념을 모두 넣고 섞기 전에 한장 찍었다. 이번 게국지에 관여한 사람은 엄마와 딸들이다. 어떤 사람은 사고, 어떤 사람은 다듬고 어떤 사람은 버무리고. 절인 배추를 씻고 나머지 일은 내가 감당했는데, 내손으로 처음 담은 게국지를 보는 마음이 황홀하다.
만들자마자 바로 먹을 수 있었다. 이 김치는 반드시 끓여먹어야 한다. 그냥 먹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나 아마도 게국지 특유의 맛은 나지 않을듯싶다. 캐나다 흩어진 가족에게 각각 한통씩 보낼 것을 담아놓고, 받아놓았던 뜸물에 넣고 한솥 게국지를 끓였다. 물과 소금으로 간을 맞추면 되는데 게국지는 짭쪼름해야 제맛이 나는 것같다. 나는 약간은 시큼해진 게국지맛에 익숙했는데, 익지않은 게국지도 그런대로 맛을 품고있었다. 엄마는 퇴원하시고 기운을 조금씩 차리기 시작했는데, 게국지를 한사발을 드시고, 만면에 웃음이 한가득이시다. 자식들 가정에 준다고 한통씩 담아놓아서 그런지, 자칭 "게박사" 엄마의 소원이 막 이뤄져서 그런 것일까?
서산 사람들은 생선중에서도 패류를 좋아하는 것 같다. 게, 새우, 조개, 홍합 굴등. 그런 것들을 먹고살아서인지 그 짭쪼름한 바다내음은 바로 고향을 떠올리게 한다. 엄마는 시골에서 먹던 조개 칼국수맛을 그리워하신다. 냉동 조개를 사서 끓여도 그맛이 안난다고 하시는데, 아마도 그시절의 그리운 그맛을 살리기는 어려울 것같다.
엄마가 연세가 들어가면서부터는 무엇인가를 해서 자식에게 주려는 엄마를 "왜 그런 것을 만드느라고 그리 고생이냐"며 지천을 드리기도 했다. 이렇게 생사를 가를 정도로 아프지 않은 상태에서 또 게장과 게국지 타령을 하셨다면, "제발 좀 그만하시라"고 엄마의 바램을 쉽게 무시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고통에 신음하던 그 와중에도, 당신의 자식들에게 지금 이시간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그 게를 끝내 못해주는구나, 하는 상실감을 옆에서 보고나니, 엄마에게 "게"는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자, 사랑을 표현할 최선의 것이었다.
엄마가 먼 나라 캐나다에 와서도 씩씩하게 살아내신 힘의 절반은 고향에서 먹던 음식을 어떤 식으로든 캐나다에서도 만들어먹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라도 자식들에게 한통씩 선물하고 싶어하시던 엄마의 소원이 이뤄진 날이었다.
내 고향의 냄새, 서산의 냄새가 우리집 부엌에서도 난다.
게국지에 들어갈 게를 손질하시는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