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헐적 간병인으로서
아픈 사람들과 그 가족을 생각하며
현재 아프거나, 아팠거나, 아픈 사람을 돌보는 사람이거나, 아팠던 사람을 떠나보낸 사람들의 글에서는 오랜동안 멈추게 된다. 모두가 다른 형편과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만, "밝음"이 많지 않은 대신 "고통에서 건져올려지는 슬픈 아름다움" 때문인 것 같다.
아픔과는 무관하게 살았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기는 한데, 이렇게 저렇게 아픔을 겪게 되고, 나이가 들어가다 보니, 지금까지 겪은 것은 시작에 불과할뿐이라는 걸 차츰 깨닫게 된다. 네가지 구분에서는 그래도 아픈 사람을 돌보는 사람이 그중 나은편 아닌가싶기는 하다. 돌보는 사람이 나을 희망이 있고, 자신은 아프진 않으니 이리저리 움직일 수 있으며, 아픈 사람과 동행하면서 그들에게 위로를 준다는 마음의 보람(?)까지 있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런 일반적인 관점이 무슨 소용이랴.
나는 요즘 아픈 사람을 곁에서 보는 사람에 속한다. "간헐적 간병인"이 되면서 그 길이 쉽게 끝나는 길이 아님을 느끼고 있다.
엄마는 "고통없는 그곳에 가고싶다"고 요즘은 자주 입밖에 내신다. 나는 "그런 말 하지말라"고 말하지 않은지 한참 됐다. 하나님의 뜻을 알수 없기에, 가끔은 기도하면서 엄마의 때를 묻곤 한다. 응급실에 들어갔다 조금 좋아져서 나오지만, 그럴때마다 신체는 서서히 무너지는 것을 본다. 엄마는 10여년전에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다. 수술을 권장하는 의사앞에서 "살만큼 살았는데, 수술받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셨었다. 80대 중반이었고, 나도 엄마의 그런 결정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노인이 되면 암의 진행속도는 빠르지 않고, 갑상선암에 대한 설왕설래가 있던 때여서, 나도 많이 찾아보고 은근히 엄마의 생각에 동조했었다. 수술후 회복에 대한 우려가 있기도 했다. "엄마의 결정"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의사는 고개를 주억거렸지만, 못내 안타까운 표정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엄마가 응급실에 가는 여러가지 이유중에 "가쁜 숨"이 크다. 목에서는 이상한 "새" 소리가 나기도 한다. 진료로 밝혀낸 것에 따르면 엄마의 심장이 약하다고 한다. 심부전증이 있다는 이야기다. 그후로 갑상선에 관한 모든 검사 자체를 하지않았기 때문에 암덩어리가 얼마나 커졌는지 알수 없는데, 나는 엄마의 목에서 숨찰때 나오는 "새" 소리가 갑상선 때문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갑상선암은 엄마에게 있으나, 우리가 무시해버리니 없는 병이 되긴 했다.
또 한가지는 등뒤쪽 허리가 아파서 끙끙대신다. 심할 때는 소파나,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도 힘들어하신다. 파스를 붙이고, 때마다 타이네롤을 먹으면서 버티고 있다. 엄마가 먹는 약은 수없이 많고, 그중에서도 타이네롤이 없으면 통증을 관리할 수가 없다.
지난번에 갔을 때는 열흘만이라고 말하셨다. 한번 가면 3일에서 4일 정도 엄마와 지내다 온다. 예전에는 시간있을 때 가서 하루 저녁 자든지, 잠시 얼굴 보고 다시 올라왔는데, 이제는 며칠 묵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처음에는 엄마가 참으로 말씀을 많이 하셨다. 그동안 많이 외로우셨던 것이다. 이번에 갔을 때는 아프시기도 했지만, 말씀의 양이 많이 줄었다. 그래서 이제 엄마와 동거인 비슷한 느낌을 느끼기도 했다.
숨차고 허리 아픈 것 외에 밤에 잠을 못자는 것이 엄마의 고질병중에 하나이다. 너무 잠이 얕게 들어서, 언제나 깰 준비가 되신 상태로 보였다. 새벽 3시에 내가 잠시 깼는데, 그때까지 잠들지 못하시다가 자보겠다며 침대로 오셨다. 나는 함께 이야기라도 할까, 생각했는데 다음날 떠나야 하는 나를 걱정하면서 빨리 자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생각끝에 "수면음악"을 틀어줄까, 하면서 음악을 켰다. 아주 낮은 소리로. 나는 그 수면음악을 긴 시간 들어도 잠이 안와서, 나중에 살짝 껐는데, 그 다음날 엄마는 음악켠다는 소리를 듣는 동시에 주무셨다고 하셨다. 아마도 엄마 머리속에서는 기계음으로 처리되어, 흥미없는 그것을 듣느니, 잠을 자자 이렇게 작동했나싶다.
엄마가 좋아할만한 프로그램을 노트북을 찾아서 틀면, 언제나 엄마의 주목을 끌진 못했다. 목사님의 설교도, 미스트롯같은 화려한 무대도 말이다. 엄마의 친구인 텔레비전은 엄마가 낯익어서 소리가 들어오는가싶다. 노인이 되면, 함께 놀수있는 컴퓨터 기술이 필수적인 것이 엄마를 보며 느낀다. 그래도 동영상 통화라도 할수 있으니, 그걸로 만족해야 하지만, 혼자있는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 문명의 기기를 익혔다면 훨씬 수월하게 지내셨을것 같다.
엄마가 집을 못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잠이 안올때 나홀로 있는집에서 텔레비전도 보고 할수 있지만, 모든 가족이 자는 곳에서 혼자 일어나있는 상상을 하면 아무데도 못간다고 말씀하신다. 이제는 한인양로원 신청을 해놓고 기다리고 있다. 그때까지 딸들이 돌아가면서 엄마집을 방문해서 돌봐드리는 중이다.
나중에 후회할까봐 몇번 우리집에 오실 생각이 없냐, 여쭙긴 해봤다. 그러나 엄마에게 가장 편안한 엄마의 집임을 나도 잘알고 있다. 토론토 시에서 제공받는 돌봄서비스는 정말 대단하다. 매일 전화로 안부를 물어주고(엄마는 오케이, 땡큐는 잘하신다), 일주일에 두번씩 목욕을 시켜주러 오고, 매일 와서 잘있나 확인하고, 쓰레기를 치워준다. 그리고 이주일에 한번 청소와 빨래를 해준다.
이외에도 엄마를 위한다고 엄마의 편안한 환경을 떠나 딸네집으로 오면, 다른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어려움을 견디셔야 할수도 있다. 엄마를 돕는다고 했던 일이, 불편해도 솔직한 말을 하지 못하는 그런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홀로 있는 어머니가 안스러워 자식들이 데려갔지만, 고향집이 그리워 다시 내려와 살고 있는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엄마의 의견을 최대 존중하기로 했다.
큰언니는 병원에서 1달간이나 있다가 퇴원해서 최근 3번째 항암치료를 마쳤다. "음식이 원수처럼 보인다"던 언니가 변했다. 우리 온 가족이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는중이다. 만들어간 음식들을 보고, 아주 좋아하면서 잘먹고 있다. 엄마가 담가놓았던 오이지를 무쳐서 갔다주었는데, 그것처럼 맛난 것은 없다며, 그야말로 냉장고속에 감춰놓고 딸과 남편에게도 안주면서 몰래 먹고있다고 했다. 며칠전에는 키치너 사촌오빠가 준 불고기가 너무나 맛있다며, 마치 "천상에서 내려온 음식"인것처럼 표현했다. 몇년간 먹지못해, 병이 되고, 살이 빠졌던 언니가 음식에 관심을 보였다는 그 사실에 우리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입원한 기간 동안 언니의 일거수 일투족에 신경을 쓰며 온 가족이 합심하여 기도하면서 경과를 지켜보았는데, 조금씩 희망이 보이는 것같다. 혈변을 봐서, 수혈을 몇번이나 해야했고, 방사선을 하고 할때는 그야말로 회복할 수 있는지 정말 매일이 살얼음판이었다. 어제는 불고기를 재어준 사촌오빠네 한국식품점을 형부와 찾아갔다는 게 아닌가? 감사하다는 말과, 담석제거 수술을 앞둔 오빠에게 힘을 주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큰언니는 그런 사람이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게 훨씬 편한 사람" 말이다. 그런 사람이 여러 사람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려니,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기운을 조금 차리자마자, 1시간 30분 운전해서 키치너를 다녀왔으니 말 다했다. 조카는 "약한 엄마가 마음대로 해서 속상하다. 다시 아파지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그때는 알아서 하라"고 협박을 했다고 말한다.
조카가 제 엄마를 살렸다고 우리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그러니 그애가 뒤로 나자빠지면 큰일난다. 큰언니의 일탈은 어제로 끝나야 한다. 그래도 긴 시간 병원과 집에서만 있었고, 무언가 나눠줘야 속이 편한 언니는 어제의 외출에서 심적인 힘을 많이 얻지않았나싶다. 조카 달래는 것은 내몫이다.
지난주 토론토에 내려가는날, 차타러 가는데, 마침 얼음이 두껍게 얼어있었다. 내가 간병하러 떠날때마다 차를 점검해주고, 짐을 실어주는 남편은 자신의 손을 잡으라고 내밀었다. 내가 "그러다 우리 같이 넘어지는 것 아냐?" 하면서 손을 잡는 순간, 그 말이 끝나자마자 미끄러져서 왼쪽 넙적다리를 부딪치며 크게 넘어졌다. 얼음과 함께 물도 있어서, 다시 집으로 들어가 옷을 다 갈아입어야 했다. 그날 남편이 파스를 붙여주며 갈수 있겠느냐고 했는데, 몸이 욱신거리긴 했어도 다시 주저앉을 정도는 아니었다. 엄마집에서도 잘때 몸을 돌아누울때 자동적으로 신음소리가 나왔다. 그런데 이게 욱신거리는 것이 나아지는 것과 동시에 그 부위가 가렵기 시작했다. 남편도 엄마도 파스를 붙이라고 내게 권했는데, 처음에는 그것이 파스 부작용인가 했다. 멍들었던 부위는 손바닥 크기를 넘어서는데, 그 색이 조금씩 엷어져가면서 참을 수없는 가려움을 동반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타박상이 나으면서 그럴수 있다고 한다. 어쨋든 이 가려움은 한국에 있는 오빠를 생각나게 했다. 온몸이 가려워 검사중이라는데, 어떤 진단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한국에 있는 언니는 부동맥으로 시술을 받다가 혼났다고 연락오기도 했다. 또한 사촌동생도 뇌출혈로 쓰러져 4개월 입원하고 현재 재활치료중이라는 소식도 듣는다. 아무리 건강을 챙기고 관리한다고 해도, 병은 어느순간 누구를 덮칠지 모른다.
오히려 병을 통해서 우리 서로의 거리가 훨씬 가까와진 것을 느끼는 요즘이다. "병을 자랑하라"는 말은 그 병에 대한 다른 조언들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로 많이 사용되지만, 병을 알리므로 해서 그런 의학적 조언뿐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의 진정한 관심과 염려를 받으며, 삶의 의지를 다져나가게 되는 것 같다.
내 병을 절대 알리지 말라, 는 것처럼 숨막히는 비밀은 없다. 사이드로 그걸 알게 되어도 진정으로 걱정해줄 수도 없다. 암을 숨어서 앓고 싶은 사람을 주변에서 봤는데, 그녀가 떠나기까지 제대로 된 위로의 말을 해줄 수 없었던 기억이 있다. 그녀에 대한 연민은 가다가도 받아줄 사람이 없어서 내게 다시 돌아오곤 했다.
큰언니때 느낀 것이지만, 주변의 지나친 관심은 가족들에게 부담이 되기도 한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서 가족들이 소식은 전하면서도, 환자가 힘들어하지 않도록 조절할 필요는 있다. 그러고보니, 쉽지 않다.
또한 알리고 싶지 않은 "병"도 있는법이다. 특별히 "마음"에 관한 병은 더욱더 그렇다. 나도 오랫동안 그런 병자를 곁에 두어왔기 때문에 환자가족의 마음을 조금은 알것 같다.
첫 문장으로 돌아가서, 그런 아픔들을 잔잔히 글로 풀어써내는 분들에게 경의를 표하게 된다. 그들은 크나큰 위로를 바라는 마음으로 적는 것이 아닐것이다. 오히려 그런 고통중에 있는 사람들이 글을 읽고 힘을 얻기를 바라면서 쓴다. 물론 부수적으로 혈연이 아닌 사람들에게서 오는 무언, 유언의 위로에서 앞으로 살아나갈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나는 언제나 진솔한 그런 글을 쓸수 있을까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