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경박단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mien We Feb 26. 2024

8. 고요하기

입을 꿰멘다고 되는게 아니던데요.

저는 제 마음 속에 저말고 저와 상당히 유사한, 아니 어쩌면 실제 누가 나인지 모를 정도로 제 인생 전반에 걸쳐서 끈임없이 생각과 말과 행동을 만들어내느 누군가가 있습니다. 그가 언제부터 제 마음 속에 살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는 제 몸 상태에 관심이 많습니다. 배가 고프구나, 땀이 나는구나, 아 지치는 구나, 담배 한대 피우면 좋아질거야 등등 끈임없이 제 몸의 상황을 진단합니다. 어깨가 아파, 손목이 저려, 지금 단걸 먹어야해 등등 참 말이 많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제가 타인과 협조하여 일을 할 때도, 대화를 나눌때도 끈임없이 떠들어 댑니다. '야. 지금 저 사람은 널 무시하는거야', '병신같이 왜 또 져주고 있어?', '저 사람 표정을 봐봐. 오늘도 넌 발리는거야', '널 괴롭힌 저 인간을 가만히 냅둘거야? 시간이 걸려도 끝까지 복수해야지'. 시끄럽습니다. 끈임없이 떠들어 댑니다. 


제 손으로 하여금 핸드폰을 놓치 못하게 하며, 제 눈으로 하여금 영상물에서 떨어지지 못하게 합니다. 입으로 하여금 담배를 물고 숨을 들이키게 합니다. 사소했던 감정 싸움을 씻어내지 못하게 합니다. 불어오는 모든 폭풍과 비바람에 분노하게 합니다. 세상에 정의가 없다고 외치게 합니다. 피곤합니다. 극심하게 피곤합니다. 


마음 속에서 '니가 니가 아니야. 바로 내가 너지'라고 외치는 이 놈의 존재가 있는 것을 한 50년동안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이 놈이 시키는 대로, 해석하는대로 계속 살아왔습니다. 결국 이 놈으로 인해, 저는 비비꼬이고, 감정적이며, 진인사대천명에 반드시 답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 꼰대가 되었습니다. 웃어넘기지 못하고, 자식에게도 존경하기 어려운 부모가 되었습니다. 아내에게도 과연 얼만큼의 믿음을 주었을지 모르겠습니다. 


무수히 많은 책들을 읽었지만, 모두 이 놈이 제 나름대로 해석을 해버립니다. 좋은 말씀을 듣고나면 언제 들었냐는듯이 까먹습니다.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립니다. 이 놈과의 싸움이 싸움인지도 모른채 50년을 보냈습니다. 


제가 이놈의 존재를 깨달은 건 '어느 날 들었던 오디오 북 덕분입니다' 몽키마인드, 술취한 코끼리 등등으로 불리는 이 놈을 또 다른 어떤 책에서는 '내 이름으로 살고있는 마음 속의 그 놈', '심지어는 그 놈이 나라고 착각하고 산다는 것을 지적받은 후에야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다가올 때로 다가온 모진 변화와 폭풍을 겪으면서 처음으로 희미하게 나마 그 놈이 보입니다. 


사실 토네이도에 집 전체가 찢겨나가도 당장 죽지는 않는다는 점이 현실일 때, 이 놈은 월급통장에 들어오는 돈이 조금만 줄어들게 되어도,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가 내 영역을 조금만 침범하는 것 같아도 금방 성을 냅니다. 그리고 하루종일 이 부분에 대해서 떠들어댑니다. 잠시도 쉬지 않는 이 놈의 말과 충동질에 저는 솔직히 지쳤습니다. 


웃긴 건 우리 모두 스스로의 속 안에 그런 놈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이 놈들은 조용할 줄 모릅니다. 그래서 세상사가 시끄럽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결국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뛰어난 사람들은 우리 속의 그 놈의 입을 꿰메는 법을 아는 듯 했습니다만, 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안의 저를 사칭하는 놈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글을 끈임없이 소리로 듣습니다. 그 동안 만큼은 제 안의 그 놈이 목소리를 내지 못합니다. 


매일 매일 반복하면서 제 안의 그 놈의 발언권을 끈임없이 누르려고 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에는 분명히 그 놈도 힘이 빠져서 더 이상 아무 말을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고요하게, 고요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게 저에게는 맞는 방향같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