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도 그렇게는 안 기어가겠다.”
엄마는 밥솥에 쌀을 안치다 말고선 나를 향해 쏘아 붙였다.
한번은 손글씨 잘 쓰는 게 뭐 그리 대수냐는 친구의 투덜거림을 들은 적이 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손글씨 쓰기는 그저 고상한 척하기 좋은 취미, 또 실용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구시대의 유물 같은 거였다. 카페 구석 소파에 앉아 고개를 끄덕이던 나는 얼음이 반쯤 녹아 묽어진 커피를 단번에 빨아 마셨다. 콰르르륵. 커피는 얼마 남지 않은 얼음을 긁고 올라가며 용트림을 해댔다.
그는 어쩌면 초등학교 저학년 교실에 앉아 받아쓰기하던 시절까지는 글씨가 양호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살면서 글씨체가 좋다든지 예쁘다든지 하는 소리를 단연코 들어본 적이 없다. 부모님께 70점짜리 받아쓰기 시험지도 겨우 내밀었던 아이가, ‘ㅂ’을 쓸 때 왼 쪽의 세로 선을 하나 긋고 나머지를 한 번에 적을지, 혹은 네 번으로 나누어 정직하게 찍어 내릴지를 고민했을 리는 만무했다.
심각한 악필인 아들내미의 글씨체를 고쳐주려는 시도가 집에서도 없지는 않았는데, 그때마다 엄마를 번번이 좌절시킨 건 막냇자식의 똥고집이었다.
“내가 쓴 글씨를 내가 알아볼 수 있음 됐죠.”
이런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는 것도 더는 못 할 짓이라 여기셨을지 모르겠다.
막내의 궁색한 변명이나마 들어보자면, 이제껏 이런 악필을 지니고 살았지만 크게 부끄러웠거나 난처했던 적이 많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굳이 꼽아보자면 중학교 때 노트 필기를 보여달라던 친구가 치사함을 강조하며 혼자 성적 잘 나오려고 일부러 못 알아보게 적냐고 투덜대던 일이나, 대학에서 시험 답안을 장문으로 작성할 때 유독 내 것만 교수님이 못 알아보시면 어쩌나 하며 전전긍긍한 것 정도겠다. 그럴 때면 내 폭넓은 취미 경력을 알고 있는 친구들은 손재주와 손글씨가 같은 손에서 나온 말인데도 어찌 그리 정반대로 놀 수 있는지를 궁금해했다.
마름모꼴 글자 칸에 기대어 졸던 손가락 근육은 예상치 못한 시점에 깨어나야 했는데, 바로 첫 에세이집을 냈을 때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초기 출판 비용을 모은 나로서는 고마운 후원자님들에게 뭐라도 하나 더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출판사에서 택배 대행사를 연결해 준다며 그게 배송비가 더 적게 들어갈 거라고는 했지만, 그렇게 되면 이들에게 친필 사인본을 보내주는 일이 요원한 노릇이었다.
친필 사인이라니. 마트에서 오만 원이 넘어가는 장을 볼 때 몇 번 손가락 움직여 본 게 고작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그날부로 맹연습에 돌입하고 몇 밤 지새우며 갈고닦고나니 사인은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모양새를 갖추었다. 그런데 어째 허한 느낌이 사뭇 드는 것이, 마음에 흡족하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책 표지를 넘기자 드러나는 공허한 여백이, 여기 몇 자라도 적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넌지시 속삭이고 있었다.
금방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손글씨 책이라도 하나 사서 연습해 보라는 엄마의 조언에 알량한 자존심 한 조각을 내세웠던 게 그날만큼 한심해 보였던 적이 없다.
“나중에 네가 공무원이라도 되면 민원 넣으러 온 사람한테 메모지에 몇 자 적어줄 일 있을 텐데…. 글씨 못 쓰는 사람은 영 멋없어 보이더라.”
먼저 세상살이하면서 당신이 품은 지혜는 과연 묵직했다. 늦었다고 어찌 가만히 앉아만 있을까. 노트북을 열고 부랴부랴 ‘손글씨 잘 쓰는 법’을 검색했다. 시간에 쫓기듯 인터넷을 뒤적거리다 겨우 건진 조언은 세 가지가 전부였다.
· 글자의 아랫선보다 윗선을 잘 맞출 것.
· 팔을 안쪽으로 15도 정도 기울일 것.
· 연필 잡은 손에 힘을 과하게 주지 말 것.
하나하나 따라 읽으며 내려가던 눈이 문단 끝에서 번뜩였다. 평소 연필을 잡을 때 손에 힘을 꽉 주고 눌러쓰는 경향이 있었다는 걸 알아차림도 있지만, 오래전 무에타이 체육관 다닐 적 기억이 되살아난 게 또 다른 자극이었다.
잽과 원투만 평생 답습할 줄 알았던 햇병아리에게도 발차기를 배우는 날이 있었다. 넘치는 의욕과 달리 어설픈 회전만 반복하던 나를 보고, 사부님은 축이 되는 발에 힘을 좀 빼보라 했다. 그 조언을 듣고서 발차기를 아주 멋있게… 익히기 전에 체육관은 그만둬 버렸지만, 힘을 좀 빼보라는 말은 대학 면접 이후로 오랜만에 들어본 것이기에 괜스레 살가운 울림이 있었다. 어쩐지 반갑고도 옹골찬 울림이었다.
지나간 시간을 달콤한 디저트에 비유할 수 있다면 내 인생은 오븐에 금방 넣은 호두파이쯤 될까. 그 속은 쓸데없이 힘이 많이 들어간 재료들로 차 있다. 스크래퍼로 힘껏 쪼갠 버터, 뻑뻑한 질감 때문에 팔 힘 가득 실어 편 반죽, 손가락 끝으로 힘주어 부순 호두 조각이 눈에 띈다. 그러다 놓친 재료들은 바닐라 에센스, 설탕, 소금, 기회, 여유, 사랑 그리고 그 밖의 하찮은 것들. 긴장해서 힘 들어간 어깨로는 소소하고 소중한 걸 챙기기가 적잖이 버거웠다.
그렇지만 힘들고 고되게 살게끔 만든 환경, 거기에 정신없이 휩쓸린 나 자신을 원망하고 싶지는 않다. 그 모양과 맛이 어떻든 반죽과 호두와 필링 모두가 오롯이 내 인생이다. 마찬가지로 여유롭게 오븐 앞에서 호두파이가 구워지기를 기다리는 시간 또한 오로지 나의 몫이 아닌가. 여유와 피땀을 한 층씩 겹치게 쌓은 파이를 훗날 꺼내어 한입 크게 베어 물면 제법 바삭한 소리가 날 것이다.
잉크 펜을 쥔 손가락 끝에 천천히 힘을 뺐다. 손에 기댄 펜은 표면이 살짝 녹은 빙판에 오른 피겨 스케이팅 선수처럼 유려히 미끄러졌다. 국가대표급 트리플 러츠는 못 되어도 받는 사람이 글쓴이의 정성을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