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한 살 아이유의 인터뷰
어느덧 서른한 살이 된 아이유가 과거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묻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너는 사실 너를 되게 좋아해."를 건넸다.
같은 인터뷰에서, 아이유는 자신의 생각과 깨달음을 소재로 많은 가사를 쓰는 일에 대하여, 어렸을 때는 마음 안에 있는 것들을 꺼내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다면, 조금 더 자란 후에는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일이 치열한 가요계에서 나름의 승부수였다고 고백했다.
(아이유의 인터뷰는 여기로.)
아이유가 자신의 생각들을 솔직하게 드러내기 시작한 흐름을 선명히 기억한다. 20대 초반에는 '스물셋'이란 노래에서 이랬다 저랬다, 자의식이 아슬아슬 넘쳐나는 이십 대 초반의 마음을 노래했고, 20대 중반에는 '팔레트'란 노래에서 이젠 자신을 조금 알 것 같다는 편안하고 단단해진 자아를 노래했다. 이십 대 후반으로 넘어가며, '이름에게, ' '겨울잠, ' '아이와 나의 바다' 등 숱한 노래에서 연대와 위로를 노래했다. 때때로 그녀의 가사들은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녀가 영악하다고 이야기했다. (누군가에게 똑똑하다면 누군가에겐 영악하고, 어떤 이에게 편안하다면 어떤 이에게는 지루한 것이 이치이거늘.)
인생이 계속해서 성장해 가는 여정이라면, 우리는 삶의 어느 순간에도 완전할 수 없겠지.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에는 삶이 완전했다고 회고하게 될까?
십 년 전의 나의 생각들이 부끄럽고,
일을 처음 시작했던 오 년 전의 나의 생각들이 서툴고,
불과 일 년 전, 아니 저번 주에 했던 생각들도 남 들려주기 쑥스럽다.
나만 아는 나의 생각들, 그 속에 비틀려있는 믿음들, 결코 예쁘지 않은 머릿속 메모들.
생각들이 예쁘지 않아 보일수록 내가 미워 보인다. 나를 이루는 생각들을 여러 사람들 앞에 보이기가 어려워진다. 알 사람은 아는 나의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것도 나름의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 된다.
나를 충분히 사랑한다고 생각하다가도,
나의 생각들이, 나의 삶이 부끄럽다가,
이런 나에 대한 넘실거리는 생각들이 비대해 보여 다시금 부끄러워진다.
20대 초반에는, 이런 부끄러움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어린 어른이 거쳐가는 단계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20대 후반의 오늘날 보기에, 이건 과도기가 아니라 나란 사람의 정체성(!)이었던 것이다. 내면을 계속해서 읽어보고, 부끄러웠다가, 또 안쓰러웠다가, 또 행복하기를 바랐다가, 또 미워했다가. 나선형의 반복.
그런 나에게 나도 말해본다.
너는 사실 너를 되게 좋아해.
그만큼 내가 나와 친해지고 싶은 거겠지.
그만큼 여전히 내가 궁금한 거겠지.
여전히 내가 더 나은 사람이기를 바라는 거겠지.
인생의 어느 순간에도 완전하지 않겠지만,
그런 완전하지 않은 모습들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봐 주어야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한 발 먼저 믿어주듯이, 내가 나를 한 발 먼저 믿어주고 응원해 주어야지.
서툴어 보이는 지금의 생각들도 더 꺼내도 괜찮다고 말해주어야지.
30대 중반의 나는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 그때, 삼일절에 홍차 가게에 앉아 적잖은 부끄러움으로 적어 내려 간 이 글을 다시 찾아와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