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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코 찍어먹어 봐야 직성이 풀리지

원점으로 돌아와 다시 시작해내고 있는 금쪽이의 일기

by 문스카이


2025년 5월 21일

서비스 종료하기로 결정한 그날,

여느 날처럼 출근한 우리 팀은 점심식사를 한 후에 청계천 산책을 했다.


서비스 종료하는 것이 정말 맞는 결정인지

그래도 되는 것인지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2023년 6월 퇴사 후 약 1년간의 탐색 기간을 지나 출시한 내 서비스 "해봄"

한국을 여행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뷰티 서비스 예약과 함께 통역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이었다.


유학시절 잠깐 들렀던 한국에서 처음 느끼는 어색함을 경험하며 외국인들의 어려움을 아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고, 누군가를 앉혀놓고 끊임없이 대화 나눌 수 있는 주제였던 뷰티와 관리 그리고 나의 배경인 IT를 접목해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집 거실에서 일기를 쓰고 있던 나에게 불현듯 찾아온 아이디어로 시작된 서비스였다.


나의 해봄은 서비스 종료하는 그 순간까지도 고마운 매출과 유입을 만들어주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나는 매정하게 호흡기를 떼어버렸다.


결심으로 시작한 피봇과 실행은 (당연하게도) 계획대로 되지 않았고,

다시 시작하는 지금 마음과 상황을 정리하면서 긴 일기를 작성해 본다.


GettyImages-479958570.png 고통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고, 보이는 것보다 더 큼

왜 나는 서비스를 종료하기로 했나


성장곡선의 각도

당시 해봄의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체크박스를 체크해야만 했다.


한국 여행을 계획하고 있거나 이미 한국에 계신가요?

여행 중 2-3시간 정도를 내어 뷰티서비스를 받고 싶으신가요?

시간당 최소 10만 원 이상의 서비스를 지불할 의향이 있으신가요?

통역이 필요한 뷰티 서비스 (메이크업 컨설팅 등)를 찾고 계신가요?


물론 이 체크박스를 모두 체크하는 우리의 고객이 가진 페인포인트는 시간당 수십만 원을 지불할 만큼 컸지만, 한국을 여행하는 외국인 그중에서도 이 체크박스를 모두 채울 수 있는 누군가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코로나 직후 다시 여행이 가능해지면서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었고 이 기세에 편승해 우리 서비스도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열기가 조금 식고 다시 돌아보니 그제야 왜 우리에게 수많은 사람들이 시장 크기에 대해서 언급하고 걱정했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돌아오지 않는 고객들

서비스 종료를 결정한 데에는 나의 사심도 담겨있었다. 우리의 고객을 만들어가고 싶은 욕심이 있었는데 이 마음은 서비스의 특성상 채워질 수 없었다.


1. 고객들은 우리 서비스를 기억하지 못했다. 내가 체험했던 그 서비스, 예약했던 그 샵은 기억했지만, 내가 이용했던 그 플랫폼은 기억하지 못했다.


2. 한국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높은 확률로 몇 년 뒤에나 한국 재방문을 고려하게 된다. 한국을 자주 찾는 고객들은 이미 내가 자주 가는 샵과 내가 자주 구매하는 제품들이 정해져 있고 그를 위해서 한국을 방문하므로 우리의 타깃이 아니었다.


우리의 서비스에 만족할수록 우리의 이름보다는 서비스를 제공받은 샵을 기억했으며, 우리를 다시 찾는 고객은 없었다. 리텐션이 없다는 것은 사업의 매출에 영향을 미치는 현실적인 한계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도 성취감과 사업을 해 나가는 것에 대한 보람을 느끼기가 어려웠다.


이 와중에 안정기

서비스가 어느 정도 안정권에 들어서고 나의 업무를 쪼개서 맡아줄 직원들이 입사하자 나의 하루 패턴은 약 4년 전으로 돌아갔다.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매출이 처음에는 뛸 듯이 기뻤으며 더 성장하기 위한 고민에 잠 못 이루던 밤들은 이미 과거가 되어있었고, 편안한 마음으로 출근해 적당히 일하며 퇴근해 저녁을 즐기는 삶의 패턴이 생겼다. 누구보다 이런 생활을 다시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너무 빠르게 안주했고, 그래프가 다시 하락 곡선을 그리게 된 그 시점에도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돌아간다."라는 이유 하나로 더 파고들지 않았고, 더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J의 함정

서비스 종료를 결정하고 난 후에도 실제로 서비스를 종료하고 나서 새로운 서비스에 대한 계획까지 나는 분명한 청사진을 그리고 있었다.


24년 말부터 이 청사진 안에서 계획대로 움직였다. 우리는 간단하게 테스트를 시작했고, 25년 1월 본격적으로 프리토 타이핑을 진행했다. 마케팅 한 번하지 않았는데도 지표는 2배씩 성장했고 이 덕분에 피봇에 대한 확신은 더욱 견고해졌다.


25년 3월 2주 만에 MVP를 출시했고, 4월에는 개발자들이 합류하면서 본격적으로 톱니바퀴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8월 앱서비스 론칭을 완료하고 9월부터 매출이 발생할 것이라는 나의 계획이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9월, 늦어도 10월부터는 매출이 다시 나기 시작할 거예요."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곤 했다.


지금 이 글을 작성하면서도 다시 돌이켜보면, 계획 자체가 잘못되었었다. 착착 진행되었다고 결과가 보장된 것이 아닌데 계획대로 될 리가 없지. 실행해도 결과는 따르지 않을 수 있다는 이 단순한 공식을 또, 또 잊었다.


무뎌진 칼

작은 시장에서 벗어나 더 큰 시장을 겨냥한다는 결심에서 시작했지만, 이는 결국 칼을 무디게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한국을 여행하는 외국인들이 이러한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이건 현지에서도 똑같잖아? 라면서 무려 "글로벌 스킨케어 시장"을 타깃 하겠다고 결정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고민과 페인포인트로 점점 더 넓혀가면서 MVP에 살을 붙이다 보니 서비스는 불필요하게 비대해졌고, 누구도 쓰지 않는 기능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그저 벙벙한 서비스가 되어있었다.


Objects in mirror are closer than they appear.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 서비스가 어떻게 운영될 수 있을지 테스트를 한다고 하면서 한국을 여행하는 관광객들을 대상 을로 테스트를 진행했다.


우리 샵을 방문한 고객들을 대상으로 어플을 통해 우리 서비스를 체험하게 하고 그게 구매로 연결되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는데, "여행 왔으니까"의 버프를 간과하고 이 둘은 단순히 외국인이기 때문에 같은 두 그룹으로 묶은 것이 실수였다.


관광객은 국적과 상관없이 관광객의 카테고리에 포함되고,

글로벌 고객은 국적과 상황 그리고 니즈에 따라 너무나 다른 그룹으로 다시 분류된다.


우리 온라인 서비스를 체험한 후에 귀국 후에 우리를 다시 찾는 고객들을 보면서 방향성을 다시 한번 확인했지만, 이 또한 제공받는 서비스 자체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돈 오프라인 접점 때문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다시 찾은 나의 원점, 그렇지만 이제 조금은 다른

이런 생각의 과정과 깨달음을 얻기까지 가슴을 퍽퍽 내려치고 싶은 답답한 매일매일이 있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우리의 강점과 앞으로의 지속 가능성 그리고 확장성을 고려해 피봇을 다시 시작해보고자 한다. 현재 해봄 스튜디오는 매년 약 5천여 명의 외국인 고객이 방문한다. 오프라인 접점을 부정할 것이 아니라 이들을 고객 그리고 팬으로 전환하기 위한 누르기 과정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한다.


해봄의 고객이 되기 위한 여러 체크 박스 중 가장 먼저 처리할 것을 "한국에 와야 한다."로 잡고 있었으나 눈을 돌려 "뷰티 서비스를 체험하고자 한다."부터 지워보려고 한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 3명 중 2명은 올리브영에서 K뷰티 제품을 소비하고 이는 어림잡아 약 1조 원의 시장이다. (초반 우리가 타깃 했던 뷰티 서비스 시장에 비해 무려 10배가 큰 시장이다!)


한국, 서울 그리고 명동으로 다시 좁혀 이들부터 점령해 나가는 것을 우리의 1차 목표로 수정했다.



가장 중요한 나의 마인드 컨트롤

서비스 종료 3개월 후부터는 진짜 손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처음 겪어보는 종류의 스트레스였다.

큰일이 이뤄지려면 과정도 고통도 길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우 6개월 헤매고도 “이렇게 길어도 되나, 이렇게 안 돼도 되나” 하는 의심과 부정적인 회오리가 나를 집어삼킨다. 좌절로 아침을 시작하고, 이런 하루들이 쌓이면 언젠가 한번 울어내고 그리고 다시 “이걸로 좌절하면 안 되지” 다짐해 본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반복된다.


이런 상황일수록 더더욱 나의 마인드 컨트롤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만의 방법으로 상황을 전환시킬 구석을 찾아내기로 했다.


나는 늘 최악의 상황을 준비해 두면 마음이 편해진다. (다시 J의 함정이 떠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모든 걸 정리해야 할 때의 시나리오를 써놨다. 여기서 공유할 순 없지만, 그 계획을 떠올리면 아이러니하게도 신이 난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을 때”를 상상만 해도 신나는 계획으로 채워두니 지금 내가 마주하는 좌절이 마냥 힘들지만은 않으며 과정 속 실패가 두렵지 않고 다시 한번 부딪힐 마음이 생긴다.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 많은 분들이 왜 굳이 이 추운 겨울로 나오려고 하냐, 온실에 계속 계셨으면 좋겠다 하셨어요. 아마 이걸 보시는 몇몇 분이 으이그 그러니까 내가 뭐랬냐고 하시겠지만...!ㅎㅎㅎ 그때는 잘 안들리더라고요. 처음 해봄이라는 서비스를 시작했을 때에도 만나 뵙는 VC마다 시장이 작다. 리텐션도 안 나오는데 지금 하고 계신 게 최대일 것 같다. 물론 이 말도 안 들렸습니다. 내가 보는 숫자는 달랐고 현장에서 느끼는 것도 달랐으니까요.


사업하는 사람들의 일종의 종특일까요?ㅎㅎㅎ

찍어먹어 봐야 아는 제 성질머리가 분명히 작용하는 것 같긴 합니다.


그럼에도 이 과정을 후회하나? 혹은 그들이 100% 맞았나?라고 생각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시장엔 분명히 가능성이 있지만 저의 개인적인 결정이었어요. 그리고 이 선택과 결정을 한 저에게도 앞으로 더 좋은 상황과 성과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런 힘든 과정에도 불구하고 속은 썩어가면서도 매일매일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제가 기특하고, 내 주변에 모든 사람들이 감사하고 그들과의 관계가 그리고 창업의 과정과 나와의 관계가 애틋합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저와 같은 과정을 겪고 계셔서 공감대를 만들고 싶으시거나, 혹은 이미 이 과정을 지나와서 헤매고 있는 저에게 건네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면 편하게 연락 주세요.


그 어느 때보다도 누군가와의 대화가 절실한 요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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