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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은 Oct 12. 2024

베를린 성을 남해바다에 띄우다

남해 독일마을

하늘은 맑고 구름은 뽀송뽀송

바람이 살랑 살랑한 가을 날씨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정겹다.

그의 곁에서 두 다리의 힘으로 걷는다.


몸이 마음을 움직인다.

첫 잔은 몸의 잔이요.

마지막잔은 마음의 잔이다.

삶은 땅과 하늘의 기운을 받아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마다 신의 섭리와 업보가 있고

살면서 행불을 맞지 않는 사람은 없다.


삶은 행복한 일만 생각하고

사랑하는 사람만을 추억하며

불행을 빨리 벗어 나는 정도의 싸움일지도 모른다.

행복은 나를 위한 것이요

그와 함께 하는 날은 나의 날이다. 

지루한 여름이 지나가고

산뜻한 가을이 찾아와

시월이 너무 바쁘다.

오라는 곳은 많지만 몸이 문제다.


남해로 가는 첫차를 타고 일단 내려갔다.

씩씩한 남해의 그가 주차장에

마중을 나와 있었다.

장시간 이동에 나의 체력이 방전되어

사랑하고 싶은 사람인데

격하게 안아주지는 못했다.


파란 하늘과 쪽빛 바다

애매랄드 빛 바다

주황색 지붕들이 이국적이면서도

고향 같은 남해의 섬들

유럽식 지붕과 하얀 벽돌로

이루어진 독일마을은 유럽으로

순간이동한 듯한 느낌을 주었다.  

마을 규모가 생각보다 크고

독일식 먹거리가 많았다.


베를린 성 펜션 사장님은

젊은 시절에 파독 간호사였다.

Guten morgen, Ich Liebe dich

최초 독일마을 조성 이야기와

독일식 아침 조식을 정성스레 만들어 주어

맛나게 먹었다.

담대한 도전

금산 보리암 등반 후

상주 은모래비치 해변을 산책,

설리 스카이워크는

남해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이 설리 스카이워크의 경우

43m로 전국에서 가장 긴 캔틸레버 구조물이다.

스릴 넘치는 ‘스윙 그네’는 ‘발리섬의 그네’를 모티브로 제작했다고 한다.

사실 그네가 바닷가 끝자락에 있어

담력이 있어야 탈 수 있다.

나는 유리바닥을 걷는 것만으로 아찔한 편이다.

CNN이 선정한 한국 여행지 BEST 3에

선정된 다랭이 마을은 층층이 쌓인 논과

어우러지는 시골 풍경이 편안함을 더해준다.


다랭이 마을을 걸어 내려가다 보면

바다 가까이에 엄청나게 큰 남근석이 있다.

인근 카페에서 나를 오랫동안 바라보던

여인이 생각나는 것은 뭘까.


남면 방향으로 드라이버를 하다 보면

여수가 보인다.

바닷가에 이미 예쁜 펜션들이 많이

들어서고 있었다.

남해~여수 해저터널을 올해 착공했고 

지중해식 관광지를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마음은 다시 오고 싶은데

서울에서 물리적으로 너무 멀다.

해저터널이 완성되면

여수로 내려와 남해에 쉽게

닿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때 누군가와 이 해안길을

드라이버 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다.


남해 음식은 멍게 비빔밥과 멸치회, 물회 등

눈과 입이 즐거운 바다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저녁에는 숙소에서 양주 두병 먹고 쓰러졌다.

그대에게 쓰러집니다~ 쓰러집니다.

베를린 성의 아침은 곧바로 바다 전망이라

살짝 열린 커튼 사이로 떠오르는 태양

여명을 직관하다가 베란다 의자에 앉아

남해의 아침, 행복한 멍 때리기를 했다.

오전에 이락사를 거쳐 남해대교 아래 횟집에서

점심을 먹고 육지로 나와 기차를 타고 올라왔다.


나의 몸과 마음은 평행선이다.

마음만 노마드이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는

노마디즘(nomadism)으로 유명하다.

천 개의 고원에서

유목적 사유에 대해

장기와 바둑으로 설명하고 있다.

장기와 달리 바둑은

왕도 신하도, 주체도 객체도,

또 이미 정해져 있는 길도 없는

유목적 사유의 전형을 보여준다.

즉 인터넷처럼

모든 돌이 동일한 주체로서

다양한 연결로와 교통망을 통해 평등하게,

또 계속 새로운 사유를 함께 만들 나가며

여기저기서 즐거움을 창조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중심도, 주체도, 위계도 없는

사유의 전형인 셈이다.

그리고 장기가 기호학의 법칙을 추구한다면

바둑은 다양한 연결선들의 봉쇄와 차단과

연결과 접속으로 짜여지는

거대한 네트적 사유의 창조 자체인 것이다.


현실에서 십자가를 지고 사는 우리는

몸과 마음이 구속되지 않는 노마드,

자유로움을 스스로 찾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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