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손을 봐야 하는 것일까.'
싼 월세를 찾아 이곳에 들어선 도도는 처음엔 막막한 기분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내 자신이 예술대학을 나온 것을 깨달았다. 그게 마치 남자들이 '내가 군대도 다녀왔는데'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감정인 걸까. 아마 그런 것 같다. 도도는 힘을 쓰거나 가구를 배치할 일이 생기면 "내가 예대 나와서 혼자 다 합니다"라고 말하곤 하는 사람이다. 연장을 든 사람에게 모진 소리를 참아서 그렇지. '이봐요, 당신 극작과 나왔잖아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도도는 예대에서 극작과를 전공했다. 그게 앉아서 글만 쓰면 되는 일은 아니었다고. 무대미술과와 협력해 연극 세트도 꾸며야 하고, 때론 소품도 직접 만들어야 했다고 한다. 그런 경험이 있어서인지, 마치 자신이 설 연극 무대를 꾸미는 것처럼 자신만의 작업실을 하나씩 꾸미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흰 벽에 얼룩을 제거하는 일이었다. 젯소(gesso)를 몇통이나 썼다고 한다. 젯소란 페인트 칠을 하기 전에 얼룩이나 색을 없애주는 기본 재료다. 이를 군데군데 뿌려주고 페인트를 칠할 수 있도록 마감했다.
페인트칠에는 꼬박 하루가 다 걸렸다. 친환경 페인트를 약 15만 원 어치, 큰 깡통으로 3개 분량을 들고 2층까지 나른 뒤 지체없이 롤러를 들었다. 끝을 페인트에 푹 담근 뒤 구석구석 발랐다고. 녹초가 된 하루가 다 지난 뒤 마르기까지 며칠이 더 걸렸다.
그사이 이케아 뽕을 맞은 도도는 가구를 사러갔다. 운전을 할 줄 아는 언니를 설득해 이케아에 들러 수납장 두 개와 탁자, 의자 5개, 선반, 수납장, 카펫 등을 구입했다. 2층 작업실로 이를 옮긴 뒤 뚝딱뚝딱 조립했다.
봉봉 : 그게 전부예요?
도도 : 아니, 이케아 뽕을 맞아서 조명도 엄청 많이 샀다구요.
그럼 그렇지. 귀여운 수준의 과소비를 한 도도는 조명 배치를 무척이나 즐겁게 했다고 한다. 페인트가 말라가는 사이 블라인드와 커텐으로 보기 싫은 방범창도 가렸다. 가구 배치를 마음에 들 때까지 하면서 작업실 인테리어에 걸린 시간은 총 2주였다. 찬찬히 뜯어보면 그 작업 하나하나가 녹초가 되는 일이었다. 그녀는 자신만의 작업실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으로 어떻게든 일을 진행했다.
이후 그녀는 이곳에 색연필과 물감을 잔뜩 가져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글쓰기 모임을 구상했다. 문학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 함께 글을 쓸 사람을 찾는다고 올린 것도 인테리어가 막 마무리된 시점이었다.
문학합평 동아리를 꾸리자는 글을 보고 연락해오는 사람은 서너명이었지만 직접 찾아온 사람은 딱 한 명이었다고. 어쩐지 도라에몽을 닮은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올 때만 해도 그가 동업자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고 한다. 물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함께 글을 쓰기로 한 남자는 반년 뒤 서점을 만들자며 인테리어를 좀 더 바꿔보자고 제안하기에 이른다.
봉봉 : "우리 함께 서점을 해볼래요? 이미 인테리어도 다 돼 있어서 수월할 텐데요"
도도 : "(아직 인테리어의 매운 맛을 못 봤군. 지금 인테리어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구.) 좋아요. 한 번 해보실까요."
그리고 또 다시 서점 인테리어의 험난한 여정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