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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켓 팝송 Aug 22. 2019

곱을락

  

 숨바꼭질. 달리 ‘곱을레기’, ‘곱음제기’라고도 한다.      


 제주도에는 예쁜 지명들이 많다. 가스름, 아홉굿마을, 볼레낭개, 소보리당, 스모루, 지삿개, 폴개 등. 행정구역 이름으로 한자어가 쓰이면서 우리말 지명들이 점점 숨어버리고 있다. 

 4·3 때 잃어버린 마을들은 세월의 저편에서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완전히 곱아버린 그 마을들. 다랑쉬, 무등이왓, 곤을동, 어우늘, 이생이……. 아름다운 제주 마을 이름이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 뒤에는 비극이 웅크리고 있다. 

 고즈넉한 마을은 너무 조용해서 서늘하다. 잃어버린 마을은 여전히 겨울이다. 일부 몇 마을을 빼고는 대부분 재건되지 못했다. 아마도 그 끔찍한 시간 속으로 다시 들어가기 두려워서일 것이다.

 잃어버린 마을들은 1948년 겨울에 멈춰 있다. 꽁꽁 얼어버린 나라가 제주도에 건국되었다. 한라산 중산간을 거닐다 대밭이 있고 돌담만 남아있는 집터들이 보이면 그 마을은 4·3 당시 잃어버린 마을일지도 모른다. 

 대나무는 생활용품을 만드는 주재료이기에 마을이나 집에는 으레 대나무를 심었다. 내가 태어난 부루기 집에도 대나무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내게 대나무활을 만드는 법을 알려줬다. 

  둘째 형과 나는 한 살 터울이었다. 싸우기도 많이 했지만 서로 같이 놀았다. 둘째 형과 나는 활과 화살을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토끼를 잡으러 산에 갔다. 여우언덕 이곳저곳을 살폈지만 토끼는 없었다. 지넹이 잡으러 다니다 뱀을 보고 기겁했던 적이 떠올랐다. 우리는 그냥 소나무에 대고 화살을 쏘아댔다. 

 마을이 사라진 건 공동체가 사라진 것과 같다. 공동체는 사람들이 모여 형성 된다. 1945년 독립을 맞이하고 1947년 3·1절 발포 사건이 일어나기 전 모처럼 온 식구가 한 마당에 모여 앉아 앞날을 말하며 기대에 찼겠지. 하지만 제주의 봄은 오래 가지 못했다.  다랑쉬, 무등이왓, 곤을동, 어우늘, 이생이……. 잃어버린 아이들 이름 같다. 곱을락을 했는데 끝내 찾지 못한 아이들. 그 마을에서 뛰놀던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가수 요조가 부르는 노래 ‘그리운 그 옛날’은 4·3 이전을 그리워하는 노래로 들린다. “온 식구가 한마당에 모여앉고는 분주했던 그날을 축복”할 수 있을 때가 행복한 시절일 텐데……. 가난해도 온 식구가 한 마당에 모여 앉아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이 평화 아니겠는가. 여전히 무서워 나오지 못하고 곱을락하고 있는 아이들의 그림자가 제주 마을에 숨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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