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켓 팝송 Aug 08. 2019

돌킹이

  

 부채게. 야무지고 주체성이 강한 사람을 부르는 말.     


 똥깅이와 함께 제주도 바닷가에 많았다. 집게다리가 몸에 비해 크다. 주로 바위틈에서 산다. 어렸을 때 남자아이를 부를 때 별명처럼 돌킹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흔했다. 돌킹이로 불리는 사내아이는 모습이 다부지면서 저돌적인 성격일 때 그렇게 부르곤 했다. 그렇다고 아주 영리한 것은 아니고, 힘으로만 밀어붙이려고 할 때 그렇게 불렀다. 스포츠머리, 햇빛에 그을린 피부, 작은 키, 살아있는 눈빛, 우악스럽게 쥐는 주먹. 

 돌대가리와는 조금 다르다. 돌대가리는 무식한 사람을 보고 속되게 놀리는 말이고, 돌킹이와 비슷한 말을 찾는다면 깐돌이가 있긴 하지만, 깐돌이보다는 더 부족한 사람을 칭하는 말인 것 같다. 

 “야, 돌킹이!”

 “무사?”

 부당한 일이 있으면 우리는 돌킹이를 찾았다. 그가 수고스러운 일을 처리해주었다. 고등학교 때 툭하면 단체 기합을 받았는데 그것에 대한 부당함을 말한 친구 역시 돌킹이였다. 

 “선생님. 반 전체가 벌을 서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돌킹이가 손을 번쩍 들고 선생님에게 말했다. 돌킹이의 손은 깃발 같았다. 하지만 그 문제가 해결될 때는 거의 없었다. 우리는 저항한 것 자체에 희열을 느꼈던 것 같다. 돌킹이에게 돌아오는 것은 선생님의 손바닥이었다. 삐얌데기를 맞은 돌킹이는 맞으면서도 눈빛이 살아있었다.

 학교마다 돌킹이가 있었고, 간혹 학교 선생님 중에서 돌킹이가 있었다. 학생들에게 인기가 없었지만 무던히 제 일을 하면서 교장 선생님 앞에서 당당히 말하는 선생님. 옷도 잘 못 입고, 머리도 잘 감지 않아도 뒤에서는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돕기도 하는. 마치 김려령의 청소년소설 『완득이』에 나오는 똥주 선생님 같은.

 돌킹이는 계산하지 않는다. 정의롭게 보이기도 한다. 내숭을 떨거나 뒤로 물러서지 않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며 앞에 나선다. 하지만 요즘은 돌킹이 식대로 살면 손해를 많이 보게 된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같은 동네에 돌킹이가 있었다. 머리는 늘 짧은 스포츠머리였다. 머리가 커서 특공대(특별히 공부도 못하면서 대가리만 큰)라는 별명도 있었지만, 우리는 돌킹이라 불렀다. 녀석은 특공대는 기분 나빠했지만 돌킹이는 그리 기분 나빠 하지 않았다. 

 그 아이는 가난했다. 어느날 돌킹이의 집에 갔더니 쌀을 생으로 먹고 있었다. 그것이 간식이라면서. 그 아이의 형 이름은 하필이면 김일성이었다. 우리는 돌킹이의 형 이름을 부르며 놀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에 더는 참을 수 없었는지 유독 더 약오르게 놀리던 친구 한 명과 싸웠다. 그 친구는 우리 중에서 가장 벨라진 녀석이었다. 불도저 같은 녀석이 벨라진 친구를 때려 눕혔다. 코피를 흘리며 짜부가 된 벨레기똥은 부자였다. 우리는 벨레기똥을 편들었다. 그것에 돌킹이는 심하게 배신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후 녀석은 우리와 놀지 않았고, 중학생 형과 싸워서 이겼다는 소문이 마지막이었다.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버렸다.

 그후 중학교에도 고등학교에도 돌킹이가 한 명쯤은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돌킹이의 명맥이 거의 끊긴 것 같다. 아마도 돌킹이처럼 행동하면 손해를 보게 되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적당히 수를 써야 하는 시대. 그 많던 돌킹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