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birth #2
사고가 난 날 새벽, 가까스로 서울의 큰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미리 연락을 받은 가족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맞아주었다. 가족들을 보자마자 눈물이 났다. 그렇게 하염없이 가족들의 손을 잡고 고통을 버티고 있었는데, 주치의 선생님이 오기 전까지 대기를 해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현재 시각이 새벽인 데다가, 지금 당장 조치를 취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저는 죽을 것 같은데요..?
말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너무 아파 나도 모르게 계속 나오는 굵고 뜨거운 눈물들을 쏟아내며 빨리 다음날 아침이 되기를 기다렸다. 너무 아파서 잘 수도 없었다. 흙 범벅, 눈물범벅이 되어 꼴이 말이 아니었고, 눈이 퉁퉁 부어 제대로 감기지도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친 다리로 피가 쏠리며 거뭇해지기 시작했다. 그런 다리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지쳐갔다.
하루를 꼬박 새워 아침이 되었고, 바로 주치의를 만날 수 있었다. 병실이 없어서 곧바로 수술할 수 없는 비보와 함께. (이때 나는 정형외과는 병실이 금방 나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과 병실이 잡혀야 수술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람이 죽을 만큼 아픈 사고를 당했는데, 병실이 나기만을 기다려야 한다는 이 사실이 너무 냉정하고 가혹하게 느껴졌다. 다친 것도 모자라 이 부분에서 한 번 더 큰 상처를 받았다.
진통제를 맞으며 병실이 나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진통제가 다 떨어지면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계속해서 진통제를 맞으며 하염없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응급실에서 2일을 더 지새웠고, 2인실 중 병실 1자리가 났다는 소식을 받았다. 드디어 수술을 진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긴 2일이지 않았을까...
정확한 수술시간이 잡히고, 드디어 수술 1시간 전이 되었다.
내 양쪽으로 간호사 선생님들이 내 손톱과 발톱에 칠해진 매니큐어를 지우기 시작했고, 몸에 착용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빼고, 그 당시 입고 있던 흙 범벅으로 가득한 내 옷을 가위로 서걱서걱 잘라냈다. 그렇게 나는 간이침대에 뉘인 채 수술실로 이동됐다. 여러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또 복도를 지났다. 나를 실은 간이침대 바퀴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그토록 기다려온 수술이었데 너무너무 무서웠다. 그때 누워서 지나가는 내 위로 천장의 조명들을 바라보는데 어찌나 빨랐는지 하나의 선처럼 보였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수술실 앞에 도착했다. 어떠한 수술 결과가 나와도 책임지겠다는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하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스스로 수술대 침대 위에 누울 수 없을 정도로 만신창이가 된 나를 양쪽에서 각 3명씩, 총 6명이 나를 수술대 위에 눕혀주었다. 수술에 들어가기에 앞서 전신마취가 진행되었다.
'자 10부터 따라서 세어보세요. 10. 9. 8...'
'10... 9....8...7...6...5...4...3...2...1...0'
너무 멀쩡했다. 다시 세어보기로 했다.
'10... 9....8...7...6...5...4...3...2...1...0'
이상했다. 아무리 숫자를 세도 나는 잠에 들지 않았다.
상태를 지켜보던 주치의 선생님은 '진통제를 너무 많이 맞아서 전신마취제가 안 드는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다.
너무 무서웠다. 마취 없이 이 고통을 이겨내며 수술을 받을 수는 없었다. 공포감에 사로잡혀 온몸이 차가워졌고, 이가 서로 부딪힐 정도로 덜덜 떨며 두려워했다. 내 바로 옆에 있는 여자 의사분께 손 한 번만 잡아달라고 부탁하며 너무 무섭다고 엉엉 울었다. 그 여자 의사분께서는 내 어깨를 토닥여주며 안정시켜 주셨다. 괜찮다고. 다 잘될 거라고.
그럼에도 내 몸에 전신마취가 들지 않았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뜬 눈으로 2-3일을 버티고 있었던 데다가, 진통제 없이는 버틸 수 없어 너무 많은 진통제를 맞은 탓에 마취제가 들지 않는다는 게 전문의의 소견이었다. 이 상태에서 한번 더 전신마취제를 투여한다면, 나는 쇼크사로 사망할 수 있다고 했다.
'뭐..? 내가 죽을 수도 있다고..?'
그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죽음'을 직면했다. 다리를 크게 다쳤기에 평생 다리를 불편하게 살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죽음'을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너무 무서워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고, 온몸은 바들바들 떨렸다.
내가 죽는다니... 나 아직 22살밖에 안 됐는데..
못 해본 게 너무너무 많은데 벌써 죽는다니..
내가 왜 그동안 부모님께 쌀쌀맞게 대했을까.. 사랑하는 내 동생들, 친구들은 어떡해? 이렇게 공부만 하다가 죽는 거야? 나 너무 억울해.. 나 아무것도 못 해봤는데.. 내가 다치고 싶어서 다친 것도 아닌데 나 너무너무 억울해...
라는 생각뿐이었다. 대체 왜 내가 계주를 나간다고 했을까 나 스스로가 너무 원망스러웠다.
주치의 선생님들끼리 논의 끝에 현재의 나는 위험한 상태니, 하반신만 한 번 더 마취를 해보기로 했다. 너무 무서웠지만 너무너무 살고 싶었다. 아직 나는 못 해본 것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별 다를 방법이 없던 나는 허리를 숙여 척추 뼈에 마취제를 맞았다. 그때 바라본 나의 다리는 거뭇하고 퉁퉁 불어 다리의 형상처럼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제 걸을 수도.. 뛸 수도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다가 지쳐 잠에 들었다.
그렇게 나의 수술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