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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쥬니킴 Jan 24. 2024

2014년 10월 이후, 달라진 것들 (4)

Rebirth #9 타투

다리를 다치기 전의 내 모습은 그저 해맑고 순수했다. 

내 가치관이나 취향도 없었고, 내가 좋아하는 것도 없었고, 남들이 좋다 하는 건 다 따라 하는 사람이었다. 

남의 눈치를 보느라 내 의견을 펼치지도 못하던 여리고 순진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다들 '자존감이 높아야 한다' '나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하는데, 도대체 방법을 몰라 답답해하기도 했다. 분명 나의 인생인데,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었다. 


수술 후,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나는 다친 다리를 쳐다보기도 싫어했고, 

무엇보다 현재의 내 상황에 대해 끊임없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며 자괴감에 절어있는 심각한 시기를 보냈다. 

다리를 예전처럼 쓸 수 없다는 사실에 우울증을 꽤나 오래 앓았고, 내 오른쪽 다리에 13cm 가까이 되는 꿰맨 흉터를 보면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다시는 예전의 나로 절대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자괴감, 실망감, 허탈함.

'이런 다리로 무슨..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겠어?' 라며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부정했다. 나 스스로도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흉측하고 울퉁불퉁한 흉터와 차가운 철심. 퉁퉁 붓고 온 다리에 검은 멍 투성이인 만신창이 내 오른쪽 다리. 

너무 낯설고, 믿기지 않고, 내 몸에 이물질이 낀 것 같아 온몸이 간지럽고 소름이 돋고 싫었다. 여전히 나는 '그러게 내가 왜 체육대회 같은 데를 나가서..'라는 말로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주현아. 너 다리 철심, 흉터는 이제 다시 돌이킬 수 없어. 
이제 너랑 한 몸이야. 받아들여야 해. 
네가 예뻐해 주면서 같이 데리고 잘 살아야지.
너 다리인데 네가 예뻐해 줘야지.

안 그럼 누가 예뻐해 주니? 



라는 말을 계속해주셨다. 


사실 고백하자면 우리 엄마도 내가 어릴 적, 불의의 사고로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 되셨다. 

그때는 내가 너무 어렸던 나이라 엄마가 어찌나 힘들었는지 전혀 몰랐다. 엄마가 얼마나 괴롭고 힘든 나날들을 보냈으면 아무렇지 않게 내게 이런 말을 해주시는 걸까 너무 속상해서 눈물이 마르질 않았다. 


엄마. 알겠다고. 그만해. 머리로는 알겠는데. 모르겠다고 방법을!!!!!!!! 

나보고 어떡하라고!!!!!!  


라며 소리를 지르는 게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감정표현이었다.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울다 지쳐 쓰러져 잠들기를 며칠을 반복했고, 엄마는 지치지도 않고 반복해서 위 말을 해주셨다. 

그 말을 계속 들으면 들을수록 어쩌면 정말 엄마의 말처럼 나를 바라보는 내 마음을 다르게 바라본다면, 조금이나마 숨통을 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걸었던 길을 나도 걸어보고 싶어 졌다. 


이미 사고는 일어났고, 내가 그토록 기도하고 간절히 바라서 나는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났고. 

그래. 나는 아직 죽을 때가 아니라는 소리인가 봐. 그렇다면 다시 태어났다고 치자. 

그럼 어떻게 해야 내가 더 잘 살 수 있을까? 

철심을 박아 남들보다 단단해진 나만의 강철다리를 가지고 어떻게 잘 데리고 살아야 할까?


한 발걸음씩 걸으며 신경과 근육을 되살리는 재활을 하고, 철심이 온전히 자리 잡기를 기다리며 누워있는 시간 동안, 나는 내가 어떻게 하면 더 잘 살 수 있을지 생각했다. 정말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하니,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퇴원할 무렵의 나는 180도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저 나를 바라보는 시선 하나만 바꿨을 뿐인데 말이다. 








그렇게 엄마가 말한 대로 지금의 내 상태를 인정하고 온전히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렇다 보니 우울과 불안은 온 데 간 데 없고, '지금 현재의 나'만 남게 되었다. 


죽을 뻔했지만 지금이라도 멀쩡히 살아있는 나. 

다시 태어난 나. 

철심을 박아서 더 단단해진 나.

이제 점점 더 강해질 나. 


그렇게 나는 드디어 내 인생의 주인공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건강한 나'. 

내가 제일 중요해졌다. 남들이 뭐라 하건 내가 제일이었다. 내가 먹고 싶은 걸 먹고, 가고 싶은 곳을 가고, 내가 생각하는 것이 정답이고. 내 인생의 중심에 내가 단단히 두 발로 잘 서있으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석하게도 튼튼했던 내 마음은 언제든 다시 약해지고 무너지기를 반복했지만, 그래도 1가지 변하지 않는 마음은 여전했다. 



Love yourself. 

너 자신을 사랑하라. 



내가 다시 걸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던 최악의 환경 속에서도 다 이겨내고 단단하고 튼튼한, 건강한 나 자신을 위한 마음을 피어낸 나 자신에게 너무 감사했다. 그리고 그 마음을 그대로 기록하고 싶었다.  

내가 언제든 우울해지고 다시 약해질 때마다 이 마음가짐을 기억하고 싶었고, 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은 영원히 잊지 않았으면 했다. 그렇게 나는 내가 직접 쓴 필체로 다친 다리인 내 오른쪽 다리에 타투를 새기게 되었다. 






Love Yourself. 내가 평생을 뼈저리게 찾아 헤맸던 바로 그 문장. 

수술 자국 흉터가 심해 흉터 연고를 바를 때마다 이 타투를 바라보며 한 때 튼튼하고 단단했던 내 마음을 잊지 않고 싶어서, 다친 다리인 오른쪽 다리 아킬레스건 발목에 새겼다. 흉터 연고를 바를 때마다 보이던 위치였기 때문이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가끔 불쑥불쑥 찾아오는 낯선 트라우마로 인해 더 이상 힘들거나 슬퍼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이 타투를 계기로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단단한 힘을 가지게 되었다. 

마치 내 몸에 나를 보호하는 수호신을 새긴 느낌이었다. 이 작은 문장 하나가 나를 평생 지켜줄 것만 같다. 

그리고 정말 이 타투를 바라보며 잊지 않은 덕분일까. 나는 나 자신을 더 아끼고 소중히 대하게 되었다.








그때의 나에게 이겨낼 수 있다고, 남들보다 더 단단하게 살면 된다고 용기를 불어준 엄마에게 감사를 보낸다. 

본인도 불편한 다리로 딸의 긴 간병과 재활 생활을 묵묵히 함께 해주었던 엄마. 나도 몰랐던 사실인데 엄마는 내 앞에서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집에 가서 그렇게 매일 밤낮으로 목놓아 울었다고 한다. 본인이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라 딸도 그 팔자를 물려받아 다리를 크게 다친 것 같다고. 본인 때문이라고. 


이제야 드는 생각은 엄마가 내게 해주었던 말은 어쩌면 엄마가 엄마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 말을 묵묵히 하기까지 엄마도 얼마나 힘든 시간을 견뎌야 했을까. 


병상에 누워 시간을 죽이며 엄마에게 소리 지르던 나와 그때의 엄마를 만날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엄마, 나는 엄마 딸이라서 다리를 다친 게 아니야.  나를 찾으라고, 하늘에서 다시 태어나게 해 주신 거야. 

다리 다친 덕분에 나는 지금 온전히 '건강한 몸과 마음의 나'를 찾을 수 있었는걸?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마. 나만의 강철다리로 내가 나를 잘 데리고 건강하게 잘 살게. 걱정하지마.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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