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문진 Dec 12. 2021

내가 없는 사랑도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사랑이 뭘까>

"테루짱, 그거 정말 사랑 맞아?" 내가 테루코에게 단언하며 물어볼 수 있는 이유는 과거의 어느 시절의 나도 테루코였기 때문이다. 내 모든 걸 바치는 것만이 사랑이라고 착각했던 나, 그 모습에 심취한 나는 스스로를 이 시대에 보기 힘든 순정파라고 여겼었다.(었다는 과거형으로 말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내 상태가 불안하고 힘든 시기에 찰나의 다정함 따위로 빠지는 사랑은 위험하다. 긴 터널 속에 있는 것과 같은데 터널에 있을 때는 잘 모른다. 그곳을 빠져나오고서야 내가 있던 곳이 빛이 없는 어둠 속이었구나를 알게 된다.


테루코는 진짜 마모루를 사랑했다고 볼 수 있을까?


어느 날 갔던 친구의 친구의 파티에서 아무도 아는 이 없이 외로운 곳에서 혼자 밥을 먹다 우연히 같은 처지의 마모루가 말을 걸었던 그 순간을, 혹은 마모루의 가늘고 긴 손가락만을 사랑했던 건 아닐까? 가끔은 작은 착각의 순간을 오랜 시간 사랑이라 생각하고 사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사랑이 뭘까?


각자의 정의는 다 다르겠지만 나름대로 쌓아온 나의 데이터베이스로 한 가지 확실한 게 말할 수 있는 건 숨길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이를 바라보는 눈빛일 수도, 상대방을 향한 다정한 말일 수도, 그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일 수도, 또는 늘 주고 싶은 마음을 선물 등의 물질로 주는 것 등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된다. 테루코에게는 이런저런 반응도 크지 않았던 마모루 역시 본인이 좋아한다고 말한 스미레 앞에선 늘 웃는 얼굴이며 마모루의 눈은 스미레만 바라본다. 테루코 역시 그런 마모루를 바라보며 알게 된다.


사랑에는 다섯 가지 언어가 있다고 한다. 함께하는 시간, 봉사, 칭찬하는 말, 선물, 그리고 스킨십. 테루코의 사랑의 언어는 아마 함께하는 시간과 봉사이지 않았을까. 본인은 그걸로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사람이기 때문에 마모루에게도 그런 정성을 쏟았을 거다. 배려라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이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집에 도착하고 나서도 마모루의 전화에 단번에 달려가는 것, 아픈 마모루에게 손수 밥을 지어주는 것, 더 나아가 욕실 청소까지 하는 것. 한밤중에 맥주가 다 떨어져서 본인이 자처해서 사러 나가겠다고 하는 것. 상대방이 그러지 말라고 하는데도 마다하지 않고 굳이 나선다. 테루코가 마모루의 집에서 지내던 시기에 마모루의 빨래를 하고, 마모루만의 규칙이 있을법한 서랍을 알아서 다 정리까지 한다. (마모루의 표정에서 알 수 있듯 마모루는 그걸 원한 게 아니다. 일은 하지 않냐고 테루코에게 묻기까지 한다.)


이렇게 보면 둘은 mbti도 반대 기질의 성향이었을 것 같다. 테루코는 감정형인 F형 인간. 둘이 동물원에서 코끼리를 보는 장면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마모루는 그저 흘리듯 한 말들이지만 테루코는 그 말을 통해 마모루의 미래에 본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그게 프러포즈가 아닌가 하며 상상하고 눈물까지 흘린다. (사실 난 여기서 테루코가 문득 확실하지 않은 둘의 관계에서 외로움을 느껴 우는 줄 알았는데 아니 어어서 정말 깜짝 놀랐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그 상상에는 자기만의 타당한 이유가 있는 테루코. 마모루는 T형 인간이 확실하다. (테루코가 갑자기 울 때도 멀뚱히 서서 왜 우냐고만 묻고 달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 마모루의 입장에서는 테루코의 대화가 뜬금없고, 대체 왜 그런 결론에 이르렀는지 이해 못 할 때가 많았을 거다. 그러면 테루코는 꼭 그런 걸 말로 해야 아냐고 마모루에게 따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N형 인간이 T형 인간에게 말할 때는 정말 이런 것까지 말해야 해? 하는 걸 처음부터 끝까지 차근차근 이야기해줘야 대화의 오해가 줄어든다) 실제로 마모루는 테루코에게 너의 앞서 나가는 그런 생각이 싫다고 얘기한다. 혼자 앞서 나가고 예상하고 결론까지 다 지어버리는 테루코. 본인의 일도 생활도 없이 오직 마모루에게 전력 질주하는 테루코는 어쩌다 그런 사랑을 하게 됐을까? 그게 테루코 본인의 결핍의 일부가 마모루에게 투영된 거라 생각한다. 본인을 향한 사랑의 결핍을 마모루에게 모조리 쏟아부은 건 아니었을까.


서로 다른 게 죄는 아니다. 인간을 16개의 특정 유형으로 나눌 수는 있지만 같은 유형일지라도 개개인은 모두 다르다. 애초에 이런 기질 테스트도 나와 상대방의 다름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너무 다르다고 해서 사랑할 수 없는 사이인 것도 아니다. 다만, 그런 사이에서는 서로를 이해하려면 많은 에너지와 시행착오가 드는 건 사실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결핍과 각자의 모난 부분을 가지고 있다. 타인에게 들키고 싶어 하지 않을 뿐이지.


연애는 한순간에 가족, 친구보다 더 가까워지고 또다시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기도 하는 신기하고 재밌는 과정이다. 연애가 괴로운 이유는 끊임없이 못난 나를 직면하는데 이만큼 직관적인 일도 없기 때문이다. 나를 알아야 상대도 알아갈 수 있다고 이제는 생각한다. 나를 잘 모르고 상대에게만 뛰어드는 사랑은 상대방이 짊어져야 할 책임의 파이가 너무 커진다. 내가 없는 사랑은 자주 무너지고 스스로를 파괴시킨다. 이걸 과연 건강한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테루코가 마모루를 맹목적으로 사랑한다고 생각하던 에너지의 일부가 약간이라도 본인에게 향했다면, 그랬다면 30대의 테루코는 어떤 사랑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사랑이란 이런 모든 과정을 함께 끌어안고 같은 방향을 향해 서로의 거리를 좁혀가는 건 아닐까.




내용과 상관없는 궁금증: 얼마 전에 본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에서도 두 사람이 좁은 욕조에 앉아 머리를 감겨주는 장면이 나왔다. 저게 정말 로맨스일까. 너무 몰입이 되지 않아.


본문에서는 벗어난 감상 하나: 그나마 나카하라가 가장 정신을 빨리 차린(?) 사람인 것 같다. ‘여러 가지로 한계가 왔거든요. 솔직히 너무 괴로워요. 정말 많이 좋아하거든요. 포기만이라도 뜻대로 하게 해 주세요.’라고 테루코에게 말하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포기도 선택이고 용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