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살면서부터는 설날이나 추석이 오면 다른 이유로 설레기 시작한다. 다름 아닌, 한국마트에 직접 가는 일. 이게 뭐 대수냐 싶다만은, 어쩐 일인지 정말 소중한 연례행사가 되어 버렸다.
사실 무던한 사람들은 설이건 추석이건 해외 나와 있다고 유난 떨며 아쉬워하지 않을 터다. 전화기 넘어 전하는 안부와 그날의 소박한 한 상으로도 설날은 지나간다. 또 굳이 설날을 찾지 않아도 모든 장소에는 그곳만의 행복이 있기 마련이다. 한국이 아니면 아닌 대로 사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나의 문제는 ‘습관’이다. 이게 보통 습관이 아닌 것이, 우리집이 장남의 장손에 큰 집이었던 것이다.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자면, 나는 우리집이 큰 집이었던 것도, 엄마와 할머니가 매년 그 엄청난 음식을 장만하는 것도, 가부장적인 그 분위기도(차례를 지내는 중 엄마와 할머니가 너무 불쌍해서 혼자 방에 들어가 숨죽여 울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빠가 몰래 들어와 꼭 안아주던 기억도), 명절의 그 모든 것을 아주 질색했었다. 딱, 한 가지만 빼고.
손님들이 다 가고 우리 가족끼리 먹는 명절 밥상은 엄마와 할머니에게 미안할 만큼, 넘치게 좋았다. 황송하게도 그 모든 꼬맹이 시절과 청소년기는 매년 몇 번의 풍족하고 다복한 명절 밥상을 먹는 것을 단 한 번도 거르지 않았고, 대학생이 되고 직장생활을 하며 나가 살아도, 때 되면 집으로 돌아가 명절 밥상을 누렸다. 게다가 우리 할머니는 정월대보름에, 동짓날마저도 꼭 챙기셨다.
대보름에는 눈뜨자마자 부럼을 깨물어야 한다며 땅콩을 입에 물리셨고, 귀밝이술이라고 꼭 오이냉국이나 청주를 한 모금 마시게 했다. 오곡밥에 나물 싫어하는 어린 마음에도 그날만큼은 그 음식들이 특별한 것을 알았다. 할머니가 제일 좋아했던 달큰한 약밥의 맛도 그때 알았다.
동짓날 팥죽은 또 어찌나 맛있던지! 팥죽에 넣을 새알을 주로 만들었던 할머니가 언젠가는, 이번에는 팥칼국수를 만들어 먹어볼까, 하며 밀가루 반죽을 시작했다. 고운 밀가루가 어느새 쫀득하고 얇은 반죽이 되어, 할머니의 칼끝에서 톡톡 가지런히 면이 되어 나온다. 동짓날 밤인가 하는 날에는, 잠을 자면 눈썹과 머리카락이 하얗게 센다는 할머니 말을 덥석 믿고 졸음을 쫓다 쫓다 결국 잠이 들고는,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번쩍 떠 거울을 자세히 들여다 봤더랬다. 할머니, 눈썹이 좀 하얗게 된 것 같아요, 울상지었던 기억. 그러면 우리 할머니는 내 눈썹을 아주 자세히 들여다보고는, 아이고, 괜찮혀잉.
우리집에서 공식적으로 명절 취급을 안 하고 일상처럼 보내는 대보름과 동짓날은 이렇듯 할머니의 놓지 못했던 습관을 타고 나에게 와 또 다른 모양의 따뜻한 추억이 되었다.
미국에서 차려본 명절음식들.
그래서 공식적인 가족 명절 설날과 추석은 말할 것도 없게 된 것이다. 털어도 털어도 다 털지 못할 많은 이야기들, 추억들. 그리고 빼놓으면 섭섭한 눈물과 격정의 가족 드라마. 그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명절을 그냥 보내면 왠지 아쉬운, 아쉽다기보다 공허함에 가까운, 그런 종류의 습관이 되었다.
그렇다고 습관 뭐, 그냥 넘긴다고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고, 한두 번쯤 그냥 넘겨도 봤지만, 역시나 명절 음식 두어가지 내 입맛에 맞게 장만하여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지내보는 것이 훨씬 행복하다. 어찌 되었든 행복하면 될 일이다. 미국인 남편에게 이거 봐라, 한국 음식이 이렇게 예쁘다, 자랑하는 것도 즐겁다.
한국마트에서 잔뜩 구매한 제품들.
그래서 명절날이 돌아오면 한국마트에 가는 게 그렇게 설렌다.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무엇보다 한국마트에 가는 것이 꼭 한국에 가는 것처럼 설렌다. 명절 맞이 식재료를 구경하고, 한국인 직원들과 한국말로 신나게 떠들기도 한다. 나답지 않게 괜히 이 질문 저 질문을 던져본다.
한글로 되어 있는 네임테그를 보는 것도 좋다. 원산지를 꼼꼼하게 표시해 놓은 한국식 정직함 반갑다. 평소 잘 볼일 없는 4개들이 한국 라면과 직접 가면 확실히 저렴한 된장, 고추장을 큰 사이즈로 구매한다. 어묵과 만두는 반드시 사야 되는 필수 쇼핑 목록이다. 돌아가는 길이 무거울 걸 알면서도 포기할 수는 없다.
부위별로 얇게 포장된 소고기는 미국 마트에 비해 고기값이 너무 비싸지만, 하얗게 핀 마블링에 손이 먼저 간다. 미국 마트는 고기 부위를 판매하는 방식이 달라서 한국식으로 포장된 고기는 거의 볼 수 없다. 팬에 살짝 익혀 소금이랑 후추 간만 해서 고추냉이에 살짝 찍어 먹으면 얼마나 맛나다고.
미국에서 한국 빵이 제일 맛있다고 하면 참 물색없다 하겠지만, 내 입맛엔 실제로 그러하니 어쩔 수 없다. 단팥빵, 슈크림빵, 소보로빵을 미국에서 어떻게 찾냔 말이다. 당면으로 꽉 채워진 고로케를 봤다면 당장 사야 할 판이다. 던킨도넛 그 도넛 말고 찹쌀 도넛이 더 도넛이다. 피자를 그렇게 먹어도 피자빵은 다르고, 소시지를 그렇게 먹어도 소시지빵은 또 다른 것을 어쩌랴. 샐러드만 보다 샐쭉한 마음은 사라다빵으로 채운다. 카스테라 가루 소복하게 올라간 고구마케이크와 장식 하나 없이 말간 생크림 케이크는 사지 않더라도 한참을 서서 구경한다.
한국마트의 푸드코트.
이쯤 되면 한국 음식을 먹지 않고서는 못 배긴다. 한국마트 한편에는 자그마한 푸드코트가 있다. 한국마트에는 한국 사람과 아시아인들이 물론 많지만, 못지않게 미국 사람들도 많이 찾는다. 사는 물건을 보면 안다. 호기심에 한두 번 찾는 사람들이라기보다 알고 찾고, 알고 먹는 사람들이다. 주문한 음식을 봐도 한두 번 먹어본 솜씨가 아니다. 익숙하게 김밥을 주문해 포장해 가고, 새빨간 육개장을 물 한 모금 없이 단숨에 해치운다. 그 옆에 앉은 나는 머쓱하게도 정수기를 몇 번이나 찾는다. 미국에 살면서 아무래도 매운 음식 먹을 기회가 적다 보니, 내 매운맛 필터도 녹이 슬고 말았다. 작년에 한국에서 한참 핫한 마라샹궈 한 번 먹었다가 그 식당 떠나가라 기침을 해댔었다. 하수 보듯 귀엽단 눈길들에 자존심이 상했었다. 매운맛 승부에는 진짜 진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땀을 쭉 빼고 한 그릇을 비우면, 한국 마트 탐방이 막을 내린다. 돌아오는 발걸음은 룰루랄라 스탭을 밟고, 이미 그날 저녁 한식 메뉴를 꼼꼼하게 구상한다. 냉장고를 채울 한식 재료에 한동안은 냉장고를 열 때마다 흐뭇할 것이다. 한국 라면도 든든하게 찬장 한 자리를 차지했으니 두려울 것이 없다.
조만간 한국 마트가 있는 곳으로 이사를 할 계획이다. 이토록 축제 같은 곳을 매일 곁에 두어도 괜찮은 것인지, 정말 이게 나에게 일어나도 될 일인가 싶을 정도로,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