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랑스런 두 자녀의 아빠이다. 첫째는 미국에서 제왕절개를 통해서 낳았고, 둘째는 우리나라에서 수술하지 않고 브이백 (VBAC, 제왕절개 후 자연분만 시도)으로 낳았다. 사실, 첫째 때도 수술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출산 당일날 아이가 거꾸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어쩔 수 없이 수술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 후 삼년 일개월 뒤, 둘째 아이의 출산날이 왔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첫째를 제왕절개로 낳았는데 왜 굳이 둘째를 자연분만으로 낳으려하느냐 말을 해줬다.
솔직히 사람들 만날 때마다 똑같은 말을 듣게 되면, 아내와 나는 우리가 너무 무모한 도전을 하는 것은 아닌지, 진통은 진통대로 다 느끼다 나중에 수술하게 되어 억울하게 될 것은 아닌지 많은 걱정과 고민을 했다. 브이백을 적극적으로 격려하는 병원 찾기도 어려웠다. 거의 대부분의 산부인과 의사들이 안전하게 제왕절개하라고 우리에게 권유할 정도였다. 하지만 우리가 브이백을 꼭 하려는 이유가 있었다. 그건 아내가 꼭 자연분만을 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건강한 여자라면 자연적으로 아이를 건강하게 출산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또한 자연분만으로 아이를 출산해야 산모가 빠르게 회복할 수도 있기 때문에 아내는 더 자연분만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우리는 자연분만을 시도했다.
둘째가 태어나기 10시간 전, 아내에게 본격적인 진통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초기의 진통은 아내가 충분히 참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출산 7시간 전부터 진통의 세기는 급격히 증가했다. 아내와 나는 전에 같이 연습한 분만 호흡법 (코로 숨을 마시고 입으로 숨을 뱉는 호흡)을 같이 했다. 아직 진통 시간 간격이 너무 짧지는 않았기 때문에 길게 코로 숨을 마셨고 길게 입으로 숨을 뱉었다. 하지만 아내는 진통으로 매우 힘들어했다. 수간호사님은 무통주사를 권유를 했다. 하지만 아내는 거부했다. 혹시나 무통주사를 맞고 자연분만이 잘 안되면 수술하게 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출산 4시간 전부터는 진통의 세기가 훨씬 더 커졌다. 그리고 진통 간격도 이 분 ~ 사 분 정도로 (정확히 시간을 재보지는 못했다) 매우 짧아졌다. 아내는 정말 힘들어했다. 우리는 짧은 분만 호흡을 했다. 짧게 코로 숨을 마시고 입으로 숨을 뱉었다. 진통 중에는 정말로 참기 어려운 진통들이 있었는데 아내는 어쩔 줄 모르고 울면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곤 했다. 아내가 이런 상태에 있을 때에는 스스로 분만 호흡을 하기 힘들어한다는 것을 옆에서 알았다. 이럴 때마다 나는 아내 손을 꽉 붙잡고는 “자 짧게” 외치며 짧은 분만 호흡을 같이 했다. 진통이 잠시 사라질 때, 아픈 허리와 엉덩이를 꾹꾹 눌러주며 마사지를 해줬다. 나는 여자가 출산 진통을 할 때 허리에 고통이 집중되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출산 삼십분 전부터는 도저히 상상 못할 진통이 온 것 같았다. 아내는 울면서 가장 큰 소리를 질렀다. 수간호사님이 머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했고, 다른 간호사님은 분만실을 정비하러 갔고 의사 선생님을 불렀다. 아내는 곧 분만실로 이동했고 나는 분만실 밖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대기했다. 그리고 곧 사랑하는 둘째의 “응애”소리를 들었다.
나는 둘째를 낳는 과정을 통해 나는 함께 호흡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함께 호흡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경험에 동일하게 참여한다는 것이며 상대방이 힘들어 할 때, 그 마음을 공감함과 동시에 어려움을 함께 짊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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