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입문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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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대부분의 분야에 과학이라는 말이 뒤따른다. 물리학, 화학, 생물학, 수학, 사회과학, 심리과학, 예술과학, 스포츠과학 등 수많은 현대 학문 분야들은 모두 과학을 기초로 구축되었습니다. 과학의 분야가 많은 만큼 현대 사회의 진보와 발전에 있어 과학이 차지하는 부분은 압도적이다. 하지만 과학만큼 그것이 무엇인지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 분야는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과학이란 이학과 공학을 전공했거나 석사, 박사 학위를 얻은 사람들의 소유물로 인식한다. 나 또한 그랬다. 대학교를 마치고 대학원 과정을 거쳐 박사 학위를 따야만 과학자가 되는 줄 알았다.
“과학이란 무엇인가?”
“과학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이에 대한 분명한 답이 있지만, 그 답을 제대로 말하는 사람은 매우 적다. 매우 이상하지 않은가? 그 배경에 우리가 받았던 과학 교육이 있다. 우리 나라 과학 교육은 과학 이론과 지식의 빠른 습득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과학이라는 철학에 대해서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과학은 하나의 철학, 생각하는 도구이다. 생각하는 동물 호모 사피엔스인 우리는 누구나 과학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누구나 과학을 통해 잘 모르는 것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다.
과학을 한다는 것?
‘과학을 한다’는 행위란 구체적으로 어떠한 의미일까?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과학을 한다는 것이란 새로운 뭔가를 발견하는 특별한 방법 또는 증명된 사실들을 가지고 지식의 체계를 구축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과학을 하는 것이란 크게 두 가지 활동으로 구분된다. 첫째는 새로운 지식을 얻는 활동이며, 둘째는 새로운 지식의 체계를 구축하는 철학적 활동이다.
과학은 어떻게 새로운 지식은 얻는가?
과학이 추구하는 지식은 인과법칙으로 이루어진 지식이다. 인과법칙을 공식으로 표현하자면 ‘A (원인/조건) → B (결과)’로 나타낼 수 있다. 그런데 말이다. 우리 인간은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다. ‘A → B’라는 지식이 진짜 참인지 아니면 거짓인지를 확정지을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은 참일 가능성이 높은 ‘A → B’라는 지식 후보 곧, ‘가설’ 또는 ‘모델링 (=가설)’을 던지고 그것을 실험이나 평가를 통해 검증해야만 한다. 이를 과학 철학자 칼 포퍼는 ‘연역적 가설 탐구’이라고 불렀고 연역적 가설 탐구를 하는 것이 바로 과학을 하는 것이라 말했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가설이란 본래 ‘A이면 B일 것이다.’ 또는 ‘만약 A라면 어떨까? B가 되지 않을까?’와 같은 형태의 잠정적 지식 후보를 의미한다. 즉, 가설은 참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s도 있다. 그런데도 왜 포퍼는 ‘연역적’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했을까? 일반적으로 연역적이라는 개념은 논리적으로 반드시 참인 명제를 다룰 때 사용된다. 그렇다면 가설과 연역이라는 개념이 어울리지 않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과연 무엇이 가설을 더 연역적으로 보이게 만드는가에 대해 궁금해졌다. 그리고 난 ‘과학이란 무엇인가’류의 책들을 파해쳤다. 그 결과 많은 책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선배 과학자들이 후배 과학자들에게 부탁하는 한 가지 당부이기도 하다.
“아무 가설이나 생각 없이 막 던지지 마라!”
“현재 알고 있는 이론과 현재 벌어지는 현상에 대해서 제대로 관찰한 뒤 연역적 가설을 던져라!”
“제대로 관찰해야 무시받지 않는 가치있는 모델링을 세울 수 있다”
선배 과학자들의 한 가지 당부는 바로 ‘관찰’이다. 관찰은 가설을 연역적이게 만들며, 탐구하고자 하는 지식의 질과 수준을 결정할 정도로 중요하다. 현상에 대한 정확한 관찰, 기존 이론/ 지식/ 논문/ 문헌에 대한 정확한 관찰이 선행될 때, 비로소 정말로 연역에 가까운 가설을 던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인슈타인은 1915년 중력에 의해 시공간이 휜다는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했는데 앞쪽에 중력이 큰 무거운 별이 있다면 뒤쪽의 별 빛이 앞쪽 별의 중력에 의해 휘어서 별의 위치가 다르게 보일 것이라는 가설을 던졌다. 당시 어느 누구도 들어본 적이 없는 가설이었다. 하지만 시공간에 대한 정확히 꿰뚫어 보고있는 아인슈타인의 가설에 대해 사람들은 무시하거나 가볍게 보지 않았고 연역적으로 진짜일 거라 믿고 그의 가설을 증명하고자 했다. 그리고 결국 천문학자들은 1919년 개기일식 때 그의 가설을 증명하는데 성공했다.
어떻게 가설/모델링을 검증하는가?
자 그렇다면 우리는 연역적 가설/ 모델링 곧, 새로운 지식 후보가 진짜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인류 역사 내내 인간은 옳은 지식을 확보하고자 치열하게 노력해왔다. 사람들은 그 노력의 과정을 특별히 인식론이라 불러주었는데 놀라운 것은 과학이 인간은 옳은 지식을 얻는 방식이 아닌 틀리지 않은 지식을 얻는 방향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이것을 ‘무지의 혁명’이라고 까지 불렀다.
이 두 가지는 얼핏 비슷하게 들리는 것 같지만 엄연히 다르다. 인류 역사 언제나 절대적으로 옳은 진리인 ‘절대 진리’를 믿는 사람들, 자신이 절대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절대 진리라고 주장하는 온갖 종류의 이론들을 제시했다. 하지만 결국 그 절대 이론들은 사람들의 보통의 사고에 의해 부정되고 살아남지 못하게 되었다. 최종적으로 살아남았던 지식들은 그런 절대 지식의 부류가 아니었다. 그것들은 개연성은 높아 보이지만 언제든 틀릴 수도 있는 완벽하지 않은 지식들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지식들을 반박하는 검증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빡센 검증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살아남은 지식들, 바로 그 지식들이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그리고 우리에게 전해진 지식들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식이란 추측적이고 이론적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세심히 관찰한 ‘무엇’들을 기초로 개연성 높은 ‘추측’ 또는 ‘이론’을 던진다. 바로 그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모델링 또는 가설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모델링은 ‘A—>B’라는 공식으로 간단하게 나타낼 수 있다. 즉, 모델링은 무엇 (A) 하니까 무엇 (B) 할 거라는 개연성 있는 추측으로 표현된다.
하나의 유명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1682년 천문학과 점성술의 경계가 모호했던 시절, 에드먼드라는 사람은 긴꼬리를 하늘에 수놓으며 움직이는 혜성을 처음으로 직접 보았고 완전히 매료되었다. 그는 재앙의 징조라고 알려진 혜성에 대한 모든 역사적 자료들을 파해쳤고 자신이 관측한 혜성의 궤도와 비슷한 천체들을 찾아보았다. 그러자 1607년, 1531년, 1456년에 기록된 혜성의 궤도와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5년 뒤 만유인력에 대해서 기술한 뉴턴의 ‘프린키피아’가 출간되자 만유인력을 활용해서 자신이 관측한 혜성의 궤도를 계산해보았다. 그러자 자신이 관측한 혜성이 75~76년의 공전 주기를 가지는 동일한 현상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고 (A), 따라서 이 천체가 정확히 1759년 3월 지구로 다시 귀환할 것이라고 모델링을 했다 (B). 사람들 중에는 에드먼드의 예측에 ‘헛소리’라고 치부하는 자들이 많았다. 안타깝게도 에드먼드는 자신의 모델링을 확인하지 못하고 1742년 고령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17년이 지나 1759년 3월이 되었다. 그 혜성은 다시 지구로 찾아와 지구의 밤하늘을 아름답게 유영하며 지나갔다. 에드먼드의 모델링이 검증된 순간이었다. 사람들은 그 혜성의 이름을 ‘핼리 혜성’이라고 불러주었다. 그는 바로 에드먼드 핼리였다.
검증되기 전까지는 모델링은 무엇인가?
모델링은 검증되기 전까지는 절대적이지 않은 지식 후보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델링은 자기 자신을 부정할 수 있는 또는 부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검증이란 관문을 거쳐야만 한다. 만약 검증에서 살아남는다면, 모델링은 그래도 아직 절대 지식은 아니지만 절대 지식에 더 가까워진 매우 유용한 ‘지식’으로 재탄생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검증할 수록, 검증 조건이 더욱 더 가혹할 수록, 살아남은 ‘모델링’은 매우 견고하고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흔들리지 않는 지식이 된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을 간단히 요약해보자면, 우리는 모델링을 던지고 모델링을 검증함으로써 틀리지 않는 지식을 얻는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과학이라 부르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우리가 꼭 기억해야할 포인트는 지식이란 ‘검증된 모델링’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단순히 모델링만 제시한다고 그것이 지식이 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나는 디램이라는 반도체의 수율 품질을 개선하는 일을 한다. 필연적으로 수율 품질을 떨어뜨리는 정말 많은 불량들을 상대해야한다. 문제는 기업 간에 치열하게 경쟁하는 반도체 업의 특성상, 불량들을 개선할 시간이 턱없이 짧다는 것이다. 원래는 불량에 대해서 모델링 즉, 무엇 때문에 → 불량이 어떻게 발생했다는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여 불량에 대한 지식을 확보한 뒤 그 지식을 바탕으로 개선을 해야한다. 그런데 바쁘다보니 일단 빠르게 설비 또는 공정을 조치하고, 그 동안 약효가 있다는 좋은 개선안들을 마치 샷건을 쏘듯 마구 적용하여 일단 급한 불을 끄는 식으로 일을 한 적이 많았다. 현업에서는 이런 식의 일하기를 ‘퀵 픽스 (Quick Fix)’라고 부른다. 물론 퀵 픽스가 잘 통해서 빠르게 수율 품질 개선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퀵 픽스는 초기에만 효과가 있다가 결국 불량이 재발했고 그 결과 최종 개선까지 많은 시간 자원이 소모되었다. 나중에 차분히 복기해보니 퀵 픽스에 대해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것은 퀵 픽스로 성과를 냈건 내지 않았건 간에 퀵 픽스를 통해 제가 확보한 지식은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지식이란 값싸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아무리 귀찮아도, 모델링을 검증해야만 비로소 우리는 값진 지식을 손에 넣을 수 있다. 모델링을 검증하지 않으면 그 모델링은 더 이상 힘있는 지식이 아니라 그저 언젠가 잊혀지게 될 썰일 뿐이다.
아이작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