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깨우는 옆방 알람
고시원 생활을 정리하자면
[살과 병을 얻었다]
처음에는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회사랑 가깝고, 교통비가 안 들잖아!
야근을 해도 걸어서 10분인데...
하지만 손만 뻗으면 모든 게 닿는 공간.
좁디좁은 방은 내 마음조차 작아지게 만들었다.
고시원을 배경으로 방영된 드라마에서 이런 대사가 있다.
"창문 하나에 월세 십만 원 추가
고시원 와서 처음 알았어요
햇빛조차도 공평하게 나눠갖지
못하는구나, 이 세상은..."
드라마 스페셜 '나에게로 와서 별이 되었다' 中
나름 돈을 더 주어 창문 있는 방을 구했지만
1층 고깃집에서 올라오는 고기 냄새로 창문은 환기용도
햇빛을 볼 수 있는 용도 뭣도 아니었다.
손을 뻗어 침대, 책상, 화장실, 미니 냉장고까지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었지만 하루하루 지내다 보니
이곳이 감옥처럼 느껴졌다.
첫 직장의 포부도, 일에 대한 희망도,
좁은 방에 점점 가두게 되었다.
무엇보다 방음이 안되고, 환풍기로 어딘지 모르게 들어오는
담배냄새가 내가 흡연자였나 착각하게 만들었다.
방음이 안 되는 고시원에서 여자친구와 헤어졌다고 통화하는 사람,
밤마다 기타를 치고 노래 부르는 사람,
세탁을 하고 시간이 되어서도 찾아가지 않는 사람 등등
각자의 사연을 갖고 살아가듯 옆 방에 누가 있는지 알 수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은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에서 외부의 노출을 많이 경계했다.
그럼에도 뜻하지 않은 부딪힘은 예민하게 만들었고,
사회초년생으로서 직장생활 레벨업만 신경 쓰기에도 바빴다.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해서 편히 쉴 수 없다는 것은 그야말로 또 다른 스트레스였다.
하루는 윙윙윙. 강도 높은 진동소리를 느껴 눈을 떴다.
황급히 휴대폰을 봤지만 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쉴 새 없는 진동 소리는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고,
곧 소리의 근원지가 옆 방임을 알 수 있었다.
'출근 시간이 1시간이나 남았는데...'
짜증이 밀려왔고 계속해서 끄지 않는 진동소리에
벽을 쾅쾅 두드렸다.
이내 진동소리가 멈췄다.
그렇게 몇 번을 더 벽을 쳐서 옆방 사람을 깨워줬다.
.
.
.
그러던 어느 날,
사이렌 소리에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뭐야. 무슨 일이지?'
고시원에 화재경보가 요란하게 울었다.
순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몇 초간 많은 생각을 했다.
'불? 불난 건가? 이 옷차림으로 나가? 휴대폰만 들고나가?
여기서 들고나갈 게 뭐지? 진짜 불이 났다고??
연기가 많아서 못 나가면 어떻게? 2층이니까 창문으로...?'
문을 열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다 빼꼼 문을 열어 봤다.
모두들 빼꼼한 상태로 사이렌의 원인을 찾고 있는 눈치였다.
그때 한 남자분께서 상황을 알아보겠다고 했고,
다행히 오작동이라는 해프닝으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나는 앞으로의 고시원 생활에 혼란이 오고 말았다.
언제쯤 이 방을 나갈 수 있는지 막막하고 끝이 보이지 않았다.
일은 모르는 것투성이고, 잘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잘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렇다고 다 놓아버릴 수도 없었다. 이제는 보금자리의 안전까지 위협을 받는다?!
그저 하루하루 버티는 게 내 몫이었다.
월세살이 TIP> 공기도 공평하지 않은 고시원, 공간의 중요성
처음에는 고시원에 들어가도 크게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야근도 많은데 잠만 자면 되는 거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주말마다 고시원에 있기 싫어서 약속을 잡고 최대한 늦게까지 놀다 들어오는 '나'를 마주했다.
적어도 나는 집에서 가만히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움직임이 많았다. 때문에 동선을 최소화할수록 스트레스가 쌓여만 갔다. 그래서 이사를 할 때는 나의 생활 패턴을 고려해 방 구조, 공간의 동선을 상상해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