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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심 May 21. 2021

상처를 대하는 태도

이금이, 유진과 유진

김유진. 결혼하고 얼마 후, 아직 아기가 생긴 것도 아닌데 무작정 아이 이름을 생각했다.

딸일지 아들일지도 모를 미래의 우리 아이의 이름을 ‘유진’이라고 하고 싶었다.

“유진 씨, 유진언니, 유진 오빠, 유진 선생님, 유진 대리님….”

이렇게 저렇게 이름을 불러봐도 다 잘 어울린다. 영어 이름으로 ‘Eujin’ 도 있어서 더욱 좋았다. 하지만 아기는 계획대로 생기는 게 아니었고, 우리 딸을 만나게 될 때까지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친한 직장 후배는 그 사이에 결혼을 했고 딸을 낳아 이름을 ‘김유진’이라고 지었다. ‘유진’은 내게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이름이다.


이금이 작가의 《유진과 유진》을 읽었다. 이름이 같은 두 유진의 이야기인데, 이름 때문인지 다른 소설보다 두 인물에게 감정이입이 되었다. 중학생이 된 이유진은 반에서 자신과 이름이 같은 또 다른 이유진을 만난다. 그녀를 보자마자 유치원 때 같은 반이었던 그 유진임을 알고 유치원 때처럼 자신을 큰 유진, 그 아이는 작은 유진이라고 불러달라고 담임에게 이야기한다.


같은 유치원에 다녔던 두 유진은 유치원 원장에게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이다. 큰 유진은 엄마에게 “네 잘못이 아니다”, “사랑해”라는 말을 들었다. 평생 들을 말을 그때 들었고, 다른 형제보다 가장 사랑받았던 시기였다. 큰 유진은 그때를 슬프고 무서웠지만 달콤했었던 기억이다.


작은 유진은 큰 유진을 만나기 전까지 그때를 기억하지 못한다. 큰 유진을 통해 작은 유진의 기억의 조각들이 되살아난다. 자신을 붙잡고 울면서 잊어야 한다고 얘기했던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과거의 퍼즐을 하나씩 맞추기 시작한다.


 《유진과 유진》은 ‘상처’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어릴 적에 자주 넘어져서 무릎이 많이 깨졌다. 빨간약도 자주 바른 기억, 무릎 상처 위에 생긴 딱쟁이를 억지로 뜯다가 피가 난 적도 있다. 중학교 때부터 무릎에 흉터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그 흔적이 신경 쓰였다.


상처는 흔적을 남긴다. 잊고 지내다가 어느 순간 툭하고 나타나고 때로는 크게 아프다. 삶을 살아가면서 가능하면 상처나 고통 없이 순탄하게 살면 좋겠지만 그런 삶이 있을까. 내가 태어난 것은 나의 의지가 아니지만, 내가 어떻게 살 것인지는 자기 자신이 정하는 것이다. 살면서 받는 상처나 고통 같은 걸 자기 삶의 훈장으로 만들지 누덕누덕 기운 자국으로 만들지는 자기한테 달린 것 같다(p.200).


상처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있다. 어떤 상처는 다시는 끄집어내고 싶지 않아 봉인해 버린다.  어떤 상처는 좋은 추억으로 덧칠했을 수도 있고,  다른 상처는 고통스럽지만 마주하고 이따금씩  상처를 떠올리며 나아갈 수도 있다.


최근에 이금이 작가의 소설을 몇 권 읽었다. 그중에서 나는  《유진과 유진》 책이 가장 좋았다. 작가가 청소년 소설로 쓴 첫 작품인데, 좋은 문장들이 많고 인물의 심리묘사가 잘되어있다.


청소년 소설을 읽을 때마다 어른이 읽으면 더 좋겠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른이 되었다고 성숙해진 건 아니다. 여전히 마음속에 상처 받은 어린 영혼이 있다. 청소년 소설을 읽으면서 내 마음속에 어린 ‘나’를 만난다.  부모님에게 상처 받고, 친구관계를 고민하고, 공부 때문에 힘들었을 ‘나’.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를 마주하며 상처 받은 마음을 보듬어 주고, 잘 자랐다고 말해준다.


“이카로스가 다시 몸을 일으키는 것이 보였다. 그는 다시 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상처를 모아 지은 날개임을 알고 있는 나는 그가 날아오르기를 온 마음으로 기도했다. 다시 또 떨어질지라도 그는 높이높이 날아오를 것이다.”(p.287-288).


누구에게나 상처는 있다. 때로는 지치고 힘들어 나아가지 못하고, 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날아올라 자신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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