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 쇼코의 미소
대학 신입생 때 술자리를 좋아했다. 술자리는 맛있는 안주와 술 그리고 이야기가 있다. 술이 한잔 두 잔 들어가면 재미있는 이야기는 더 크게 웃을 수 있어서, 슬픈 이야기는 많이 슬퍼할 수 있어서 좋다. 1박 2일로 MT를 가면, 밤이 새도록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가벼운 이야기부터 무거운 이야기까지. 때로는 진실하고 솔직한 자신의 이야기를. 나는 속마음을 잘 얘기하지 못하는 사람이고, 어쩌다 나눈 이야기는 내 민낯을 보여주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때로는 지난밤에 좁혀졌던 거리가 다음날에 원상 복구되어 의아했다. "나는 지난밤에 네가 한 이야기를 알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각자가 서로에게 거리를 두는 듯했다.
최은영의 소설 《쇼코의 미소》는 7개의 단편소설의 모음집이고, 다양한 감정들을 맑고 섬세하게 다루고 있다. 표제작 〈쇼코의 미소〉는 일본의 쇼코와 한국의 소유의 우정 이야기다. 쇼코는 고등학교 때 한국에 견학을 오게 되고, 그때 소유네 가족과 1주일을 보낸다. 그리고 일본으로 돌아가 편지를 보내온다. 한통은 할아버지에게 한통은 소유에게. 쇼코가 쓴 두 통의 편지는 마치 각각의 두 사람이 쓴 것처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할아버지에게 보낸 편지는 받는 이의 마음이 절로 유쾌해지는 내용이다. 편지는 남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감정이 듬뿍 담겨있다. 소유에게 보낸 편지는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서 예의 바른 쇼코가 맞는지 의심스럽다. 쇼코가 소유가 친구가 된 건, 자기 속 마음을 열어 보여도 자기의 삶에 침입할 수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소유 또한 쇼코가 자신의 일상에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은 사람이다. 하지만 소유는 쇼코에게 자신이 자신이 어떤 의미이기를 바랐다.
소유와 쇼코의 관계를 생각하면 최은영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의 제목이 떠오른다. 일상의 반경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내 삶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이지 않을까. 내 곁에 있는 사람은 어떤 의미로는 의지하기도, 어떤 의미로는 벗어나고 싶기도 하다. 내 일상을 모르는 사람은 온전히 내 이야기를 바탕으로 짐작하고 추측한다. 아마도 내가 설명한 그림과 다른 그림을 그릴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을 이해하려는 마음은 진심이고, 그 마음이 전해져 위안을 받는다. 내 일상에 무해한 사람, 우리는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
쇼코는 해변에 서 있으면 이 세상의 변두리에 선 느낌이 든다고 말했었다. 중심에서 밀려나고 사람들에게도 밀려나서, 역시나 대양에서 밀려난 바다의 가장자리를 만나는 기분이라고(p.9)..
일본에 도착하고서야 쇼코가 그리도 싫다고 말했던 일본의 습기라는 게 어떤 것인지 몸으로 이해했다. 공기 중에 섞인 수분은 그 자체로 땀 같았다. 땀구멍으로 땀이 나오는 게 아니라, 공기 중에 녹아 있는 땀이 내 피부에 닿아서 흐르는 것 같았다(P.22).
독서모임에서 《쇼코의 미소》를 읽었다. 나이도, 직업도 사는 곳도 자세히는 모른다. 그냥 짐작만 할 뿐이다. 책을 함께 읽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다 보니 좋아하는 일, 고민되는 일, 자신이 추구하는 삶, 과거의 기억 등 각자의 삶의 궤적을 이해하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함께 읽은 책이 쌓이고, 서로를 이해하는 깊이도 쌓인다. 독서모임을 함께 하는 사람들은 내 일상에 무해한 사람이자, 유익한 사람이다.
* 《쇼코의 미소》에 담겨있는 7개의 단편소설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소설을 읽으면서 다양한 감정들을 탐구했고, 그 감정들이 내 안에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어디서부터 꺼내야 할지 아직 정리가 안되었지만, 기회가 되면 하나씩 소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