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지는 사람들, 그리고 남는 것들
“지워졌어요.”
한 댓글이 은채의 시선을 붙잡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오늘 아침에 영상이 사라졌어요.”
단순한 삭제가 아니었다.
백업도, 주소도, 데이터도 없었다.
시스템은 마치 존재 자체를 없애듯, 영상을 ‘지웠다’.
은채는 관리자 계정으로 들어갔다.
은채 채널에는 이상 징후가 번지고 있었다.
일부 영상의 썸네일이 사라지고,
조회수는 급락했으며,
댓글은 ‘규정 위반’ 문구와 함께 차례로 사라졌다.
그녀는 직감했다.
누군가 지금, 흔적을 지우고 있다.
그날 밤 실시간 방송에서 목소리를 낸 사람들,
‘은채’라고 고백한 이들의 댓글,
Judge9를 향한 질문들까지 —
하나씩,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은채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정우’라는 이름을 검색했다.
계정은 비활성화되어 있었다.
“사라졌네… 너마저.”
잠시 후, 은채 채널 공지창에 관리자 메시지가 떴다.
“이 채널은 커뮤니티 가이드라인
위반 혐의로 심사 중입니다.
일부 기능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은채는 피식 웃었다.
“이젠, 네가 ‘규정’이야?
아니면 그 규정이 널 위한 거야?”
하지만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명확했다.
이 시스템은 ‘말하는 자’를 허락하지 않는다.
단지, 말하게 만든 다음 지운다.
그녀는 생각했다.
지워지기 전에, 더 많은 걸 남겨야겠다.
하윤을 바라봤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
언젠가 “엄마는 왜 그런 방송을 했어?”라고
물을지도 모를 눈동자.
그 물음 앞에,
지워지지 않는 대답 하나는 남겨야 했다.
은채는 카메라를 켰다.
이번엔 영상이 아닌, 자막으로 시작했다.
[이 영상은 지워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이 기록을 시작합니다.]
카메라가 천천히 그녀의 얼굴을 비췄다.
“지워지는 사람들, 그들은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다만, 시스템 안에 없을 뿐이죠.”
“지워졌다는 건,
누군가 그들을 두려워했다는 증거예요.”
은채는 시선을 들었다.
카메라 너머, 그날 댓글을 남긴
수백 명의 ‘은채들’을 향해 말했다.
“지워지지 마세요.
당신이 살아 있다는 걸, 서로에게 증명해 주세요.”
그녀는 업로드 버튼을 눌렀다.
조회수는 느렸고,
댓글은 막혔고, 공유도 제한되었다.
그러나 그 영상은, 그 밤의 일부가 되었다.
아침은 조용했다.
어젯밤 올린 영상의 조회수는 183.
댓글 0, 공유 1.
댓글창에는 ‘관리자 승인 대기 중’이라는
말만 남아 있었다.
이젠 명백했다.
플랫폼은 스스로를 지키는 시스템이었다.
진실보다 통제를 우선하는,
‘기록을 편집하는 자’.
하지만 은채는 담담했다.
이제야 완전히, 자신으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처음 브이로그를 찍던 날,
화장을 하고 밝은 척하던 그때와는 달랐다.
이제는 꾸미지 않아도 말했다.
좋아요가 없어도, 조회수가 없어도,
“말할 자격이 있다”고 느꼈다.
하윤은 아직 잠들어 있었다.
은채는 아이의 볼을 쓰다듬었다.
“넌 아무것도 몰라도 돼.
엄마는 그저 너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
책상 위엔 수북한 대본 노트가 있었다.
조회수에 맞춰 바꿨던 멘트들,
브랜드가 요구했던 문장들,
그 사이사이에 은채의 진심은 조용히 묻혀 있었다.
그녀는 노트를 펼쳐,
맨 마지막 줄에 짧게 썼다.
“나는 내가 본 것을 말했다.”
이제야 은채라는 이름도,
<채로운 하루>라는 채널도
조용히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때 휴대폰 알림이 울렸다.
Judge10.
“마지막 장, 잘 봤어요.
우린 언제나 또 다른 은채를 찾을 겁니다.
그러니 당신은 편히 쉬세요.
이건 끝이 아니라, 다음 순서일 뿐이니까요.”
그 말은 경고 같기도, 위로 같기도 했다.
하지만 은채는 미소 지었다.
“그래, 그게 너희 방식이지.
하지만 난 다르게 끝낼 거야.”
그녀는 노트북을 닫았다.
이젠, 영상도 필요 없었다.
하윤이 눈을 떴다.
“엄마, 오늘은 뭐 해?”
은채는 아이를 안으며 말했다.
“오늘은 기록하지 않고 살아볼래.”
거실 창문을 열자, 햇살이 흘러들었다.
기록되지 않아도 괜찮은 하루였다.
누군가 보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날.
그렇게, 은채의 마지막 영상은
조회수보다 기억으로 남았다.
“기록되지 않아도,
우리는 살아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