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난누구 Nov 27. 2017

실리콘밸리에서 집 사기 #2

집에 대한 추억

미국으로 온 지 1년 4개월이 흘렀다.

한국과 다르게 집집마다 생김새와 구조가 너무 달라서 

집 구경할 맛이 정말 쏙쏙~ 난다.

직장도 전공도 건축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서 

지금처럼 집을 구하러 다니지 않았다면,

아마 평생 집에 대해 무관심했을 것 같다.

그저 집이라고 하면, 

'추위와 더위로부터 가족을 보호'하는 정도!?

로 여기며 살았을 것 같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내가 유치원 때 살았던 집,


학교 관사에 딸린 사택이었는데

문풍지를 철마다 발랐다.

아침저녁으로 서리가 내리가 내리기 시작하면

어머니를 도와 문풍지를 발랐다.

문이라고 해봤자 

방 하나에 딸린 부엌이 전부여서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방과 밖을 구분하는 유일한 문인데

뭔가 부족해 보였다.

들짐승이라도 달려들면 

쉽게 부서져 버릴 듯 가냘팠다.




겨울철 연탄불은 

꺼지면 난감했다

그래서 매일 밤 잠들기 전,

반쯤 타들어간 잘 익은 연탄의

위치를 바꿔줬는데,

그건 불꽃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새 연탄을 위에 놓고 그 아래에 이미 타고 있는 탄을 넣는다.

그러면 불이 아래에서 위로 옮겨간다.

이때 연탄의 구멍이 위에서 볼 때 서로 하나가 되도록

위치를 조정하는 게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열기가 올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구멍을 맞추려고 요리조리돌리다가 

갑자기 구멍이 하나가 되는 순간, 

아랫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와 뻘건 불빛으로

순간 눈 앞이 먹물 맞은 것처럼 먹먹해진다.



이렇게 연탄을 갈고 나면

그제야 잠잘 준비가 끝난다.

적어도 새벽까지 온기는 지속될 것이다.

꺼지지 않는 연탄불처럼

아랫목에는 언제나

이불이 한 채 깔려있다.

이불 안에는 뭐든 다 들어가 있다.

얼어붙은 밥도 그 안에만 들어가면 스르르 녹아 

김이 모락모락 나고,

동상 걸린 손과 발도 그 안에만 들어가면

뽀얗게 생기를 되찾았다.



시골의 겨울밤,

내가 살던 집은 웃풍이 지독했다. 

코를 이불 밖으로 내밀면 코가 시리고

코를 이불속으로 숨기면 숨쉬기가 퍽퍽하고

분명 연탄은 갈았는데...

매서운 추위를 견뎌내기에

어머니와 손본 문풍지도

아랫목을 지키던 연탄불도 추위를 탄 것 같았다.



내 아이들이 유치원 때 살았던 집,


세월은 흘렀지만,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에게 집은

더위와 추위로부터 가족들을 지켜주지도 못했다.

다세대 주택의 4층에는 주인집이 살았고

나머지 세입자들은 한 층을 4개로 쪼개서

다닥다닥 살았다.

10평 정도 됐는데,

햇살도 안 들고 

창틀도 이가 서로 안 맞았다.

엄지 손가락 두 개가 들어갈 정도의 틈이 벌어져서

마을버스가 지나가면

그 소리와 떨림이 창문 틈 사이로 고스란히 전달됐다.

그래도 위안을 삼은 건,

따로 창문을 열지 않아도 공기 순환된다는 점!


아침에 서리가 내리면

차가운 밤공기가 불청객처럼 찾아왔다.

문 틈 사이로 들어왔다.

너무 추워서,

문방구에 가서 책 커버 용 비닐 포장지를 넉넉히 샀다.

그것들을 하나씩 이어 붙여서

창틀에 꽉 차게 재단을 하고

아예 창문을 통으로 덮어 버렸다.

따뜻했다.

더 이상 겨울의 냉기도, 

바로 옆 차도의 소음도 들어오지 못했다.

이제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겠다 싶어 행복했다.


그러 던 어느 날,

도시가스 검침원이 안전 점검 방문을 했는데,

방에 들어서자마자 가스 검침기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겨울 내 방 안의 공기가 환풍이 되지 않아

공기 질이 너무 안 좋은 걸

가스 검침 기기가 감지해 낸 것이다.





내게 집은 이랬다.

추위와 더위, 외부 환경으로부터

가족을 지켜주지 못하는 집에서 살았다.

더 좋은 집을 구경해 본 적도 없었고

모든 집은 다 그러려니 생각해왔다.


쿠퍼티노 / 리모델링한 평범한 집


그런데 실리콘 벨리의 집들을 보면서

그런 내 상각이 바뀌었다.

공간을 가족에 맞게 바꾸고

입맛에 맞게 꾸미는 게

정말 가치 있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




다음 이야기>

한국과는 조금 다른, 집을 보는 시선






작가의 이전글 실리콘 까마귀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