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난누구 Dec 07. 2017

실리콘밸리에서 집 사기 #3

추억과 함께 살기

실리콘밸리는 

경기도 양평 같은 느낌이 든다.

바쁘지 않고, 자연이 가깝고,

뭔가 숨이 트이는 여유가 있다.

높은 건물도 없고,

손님이 오면 보여줄 만한 중심가도 없다.

그냥 심심하다.

겉모습에 비해 

이름이 너무 세련됐다는 느낌마저 든다.


이런 읍내 같은 도시에서

나름 중심이면서

한인 상가들이 밀집되어 있는

 El Camino Real.

그곳에 가면 눈에 띄는 가게가 몇 있다.


장터 순대

금발 이발관

아리랑 노래방


간판도 그렇고,

상호에서도 풍겨 나는 세월의 냄새가 짙다.

차를 타고 지나가다 보면

드라마 세트장에 온듯하다.




<금발 이발관, 나름 현지화에 성공한 이름이다...이곳을 지나칠 때 마다 세트장에 온 것 같아서 눈을 뗄 수 없다>


사진 속, 금발 이발관을 돌아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읍내 버스 정류장이 있음 직하다.

오일장에 물건을 팔러 나온 할머니가

버스가 고장 나는 바람에 

장터 큰길에 자리를 잡지 못하고

버스 정류장까지 밀려 나와 앉아 있을 것만 같다.

새벽이슬 맞고 읍내까지 나온 터라

따스하고 눈부신 아침 햇살에 

자꾸 감기는 무거운 눈꺼풀을 쓸어 올리는

할머니의 손길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앙상한 볼과 어깨의 노곤함이

팔을 타고 흘러내려

부어 있는 손에서 멎는다.

박수라도 힘껏 쳐대면

부기가 떨어져 나갈 것만 같은데,

할머니의 손에는 

그럴 힘이 없어 보인다.

마디마디마다 깊이 패어 있는 골에는

흙인지 먹물인지 모를

쉽게 씻겨지지 않는

세월의 흔적이 퇴적되어 있다.

손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마치 가위눌린 듯,

발걸음이 떼 지지 않는다.


때마침 신호가 바뀐다.

여긴 시골 장터 열리는 읍내가 아니라

El Camino Real 임을 깨닫는다.


꿀잠이 넘쳐흘러 

달콤한 꿈을 꾼듯하다.


El Camino Real 거리, 그냥 평범한 읍네 같다





예전에 

출장을 왔다가 짬이 나서

LA의 코리아 타운을 들렀던 적이 있다.

머릿속에 박힌 

재미교포들에 대한 이미지.

드라마에서는 종종

매너 있고, 교양 있는 부자로 묘사한다.

복잡한 일이 터지면,

일단 가족을 미국으로 보내 놓고 보는...

보내기만 하면

모든 일들이 알아서 술술 풀리는,

그런 곳으로 묘사된다.

이곳도 똑같이 사람 살기 팍팍한 곳인데

왜 덮어놓고 그렇게 묘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이미지가 내겐 각인돼 있었다.


높이 나는 비행기는

떨어질 때 바닥 모르고 떨어지는 법,

그런 높은 기대감과

현실의 폭은 정말 컸다.

가장 먼저 눈에 띈 촌스러운 간판들.

El Camino Real에 있는 그것과 유사한...

아주 어렸을 적

엄마 손 잡고 어딘가를 갔을 때

봄직한...

그런 촌스러운 광고판들이 

현실에 있다는 게 정말 의외였다. 

그냥 실망했다.


예전에 방문했던 때에 비해 훨씬 있어보이는 Korea Town의 모습


바로 이곳이 

재미교포들이 찾는 핫플레이스인가?

LA의 대치동이고 강남인가?

그때는 아는 게 없으니,

그런 단편적인 비교만 할 줄 알았다.


마치, 

동경했던 연예인이

혼자서 식은 밥 퍼먹다가 

똥꼬가 가렵자

운동복 속으로 손을 넣어 벅벅 긁다가

다시 빼내서

손에 묻는 냄새를 맡아보고

이 정도는 참아줄 만하다는 듯

손을 운동복에 슥슥 문대고

다시 먹던 밥을 퍼먹는 모습을

목격한 충격이라고나 할까...


시차도 틀려서 몽롱한데,

여기에 실망감까지 더해지니,

최고로 맛있다는 음식을 먹어도

그게 코로 넘어가는지

귀로 넘어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이게 Korea의 실재 모습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이곳에 살면서 

왜 그런지 깨닫는 중이다.

돈이 없어서도 아니고,

감이 떨어져서도 아니고,

간판 업자가 없어서도 아니라,

그게 가장 멋져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에서 40년째 살고 있는 

한인들을 보면서,

그분들에게 시간은

...

한국을 떠난 그 시대에 머물러 있음을 알게 됐다.

몸은 오늘을 살고 있는데,

한국과 관련된 의식은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좋아하는 노래, 즐겨 입는 옷,  입맛, 말투, 기억 모두

과거에 멈춰있는 셈이다.



하루는 

영상을 만들면서,

배경음악으로 "화개장터"를 사용했다.

그런데 80년대에 오신 분들은 

흥겹게 따라 불렀지만,

그전에 오신 분들은 이 노래를 처음 들어보셨는지,

이 곡은 누구 곡이냐고 물어오셨다.

나보다 훨씬 경험이 많으신 분이

내가 생각할 때 가장 기본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물어오시니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잠깐 멍하게 바라보고 있다가

설명해드렸던 기억이 난다.

...

피부도 머리색도 다르지만

모두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미국 팬들을 볼 때 드는

충돌?! 같은...

그런 느낌...

기대했던 것과

실제가 안 맞을 때 

발생하는 어지럼증 같은 느낌.


오늘도 

그런 어지럼증을 곳곳에서 느끼며

숨 쉬고 있다.

내가 당연시했던 것들이

실리콘밸리에서는 

당연하지 않다. 









작가의 이전글 실리콘 까마귀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