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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쟁이요기 Oct 14. 2018

못 해도 괜찮아. 흔들림과 요가

요가, 나를 들여다보는 여행

[월간숨 2호]


요가, 나를 들여다보는 여행


-목적. 못해도 괜찮아.


김성아(요가스튜디오 숨 대표)


여을 잘 보내셨나요?  

아침과 저녁엔 선선한 가을. 낮엔 무더운 여름.

저는 이 여을이 정말 좋았습니다. 유난히 예쁜 하늘을 자주 볼 수 있었거든요.  

노을 지는, 붉은 가을 하늘도 아름다웠지만 새파랗고 새하얀 여름의 하늘도 멋졌습니다.

여을이 가고, 가을이 예고도 없이 쓱 저희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갑작스런 기온 변화에 잔뜩 움츠린 몸만큼이나 마음도 차가워지기 쉬운 때입니다.

지금야말로 요가 나들이가 제격인 것 아시나요?

꼼지락 꼼지락 발가락에 힘을 주는 사이, 호흡하며 손을 뻗고, 몸을 들여다보는 사이, 어느새 땀이 송골송골 맺힙니다. 따땃한 바닥에 드러누워 숨을 고르는 사바아사나(송장 자세, 휴식 자세)에 다다르면 어느새 추위에 긴장됐던 몸과 마음이 편안하게 이완되죠.

자! 추워지는 가을을 이기는 등따신 요가! 오늘도 요가 여행 떠날 준비 되셨나요?  


요가 여행의 두 번째, 이 글은 쓰여지는데 꽤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개요와 구성안은 일찌감치 참고자료와 함께 만들었습니다. 주제는 ‘변화의 시작’이었죠.

“요가는 가쁘고 얕은 호흡의 이완을 만들고 긴장돼 굳었던 몸의 이완을 만들며 마음까지 이완하는 수련이다. 몸과 마음의 유연한 변화는 반드시 삶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요가는 결국 삶의 변화를 만드는 시작인 것이다.” 몇 달 전 쓴 구성안의 핵심내용입니다. 그런데 막상 쓰려고 하니 진도가 나가지 않았습니다. 마감 기한을 기어코 넘기고 나서, 써야한다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던 어느 날.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는 제게 P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못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며칠 전 수련을 하다 목을 심하게 다쳤습니다. 지금도 완전히 목이 젖혀지지 않습니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병원을 다니고 있는데 겸사겸사 목도 같이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사야나 아사나라는 동작입니다.

어깨와 팔꿈치가 일직선으로 정렬돼야 목과 어깨 근육이 편안하게 이완됩니다. 그러려면 척추(흉추부터 요추까지)가 더 강한 곡선을 만들어야 하죠. 아직 많이 부족한 게 보이시죠?

요즘 수련을 하면 ‘이 아사나는 몇 주 후 이 정도까지는 해야한다’는 목표를 정하게 됐습니다. 그러다보니 수련이 생각만큼 안 될 때는 스트레스를 받는 거죠. 사야나 아사나를 수련하는 그날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잠시 호흡이 흐트러지며 앞으로 고꾸라져 벽에 처박혔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본래 구성안에 따르면, 이 글의 지금쯤엔 인도 철학의 요가 수트라, 불교 철학의 법화경, 인용 문구가 나오고 있어야 합니다. 왜 요가가 삶의 변화를 만드는 시작인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싶었거든요. 말로만 들어도 머리가 아프시죠?  

어떻게 하면 요가를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가 어느 순간 어떻게 하면 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라는 고민으로 바뀌게 되었나 봅니다. 반드시 달성해야 할 하나의 목표가 돼버린 거죠. 자연스레 목과 어깨가 잔뜩 긴장됐겠죠. 긴장을 하면 사람은 호흡을 하기보다 멈추게 됩니다. 호흡이 되지 않으니 긴장된 근육은 풀어지지 않고 뭉치게 돼죠.

사야나 아사나를 할 때도, 이 글을 쓰려 할 때도 제가 딱 그랬나 봅니다. 욕심이 늘어난 만큼 자료는 쌓이는데 남아 있는 글은 없는 조급함. 시간은 흘러가는데 몸의 변화가 없는 조급함. 그때 P의 조언이 저를 호흡하게 했습니다.

“그래. 나 글을 잘 쓰지 못하잖아.” “나 요가 잘 못하잖아.” “나 요가 잘 모르잖아.”

부족하니 한걸음을 더 내딛는 것. 그것이 저의 삶의 지향점이었다는 것을, 그것이 저의 글쓰기의, 저의 요가의 지향점이었다는 것을 까먹고 있었던 겁니다.

바로 목표보다 중요한 목적.

"도대체 왜 요가를 하는 거지?" " 도대체 왜 글을 쓰는 거지?"

이 소중한 질문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저는 늘 남들보다 잘 하는 게 없었습니다. 뭐든 딱 중간 정도. 사회 생활을 하며 살아남기 위해 저만의 장점을 찾아야 했는데 그때 보석처럼 반짝이는 제 장점이 보였습니다. 우직해 느리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계속하는 성실함과 집념.

비록 화려하지 않아도 나답게 흐르는 것. 끊임없이 걸어가는 것. 가끔 너무 빨리 달려가다 지쳐 아주 오래 쉬는 경우도 있고, 너무 높은 장애물에 주저 앉은 적도 많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앞으로 가는 것. P의 조언은 제 삶의 목적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못해도 괜찮아.” “잘 하기 위해서, 잘 보이기 위해서 글을 쓰고 요가를 하는 건 아니잖아.”

“나답게 쓰고 나답게 요가하자. 그리고 나답게 요가를 이야기하자. 내가 겪고 내가 느낀 것을 솔직하게.”

 

우타나 아사나입니다.

우타나는 숙고하고 강렬함이라는 뜻을 지닌 접두어 우트와 쭉 뻗치다, 늘이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탄이 합쳐진 단어입니다. 척추를 가장 강하게 뻗은 자세죠. (《요가 디피카》 B.K.S 아헹가)

요가 동작의 가장 기본이지만 그래서 가장 어려운 아사나입니다.

척추를 강하게 뻗으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요? 흔히 상체의 유연함, 강함을 떠올립니다. 그래서 우타나 아사나를 처음 수련하는 분들은 목과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상체를 눌러 어떻게든 이마를 무릎에 갖다 붙이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선 자세에서 천천히 상체를 굽히면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고통은 척추가 아니라 다리입니다. 척추를 강하게 뻗기 위해서는 다리 근육 역시 강하게 뻗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죠.


요가의 아사나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 근육들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내가 쓰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쓸모 없는 근육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죠.

우리 역시 그런 존재가 아닐까요? 당장은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자신만의 목적과 지향을 갖고 살아가고 있으니 그것만으로 존귀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요?

“그러니 못해도 괜찮아”하고 말해주는 건 어떨까요? 저처럼 잔뜩 쌓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스트레스를 받으며 괴로워하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바카 아사나입니다.

바카는 두루미를 뜻합니다. 이 바카 아사나에서 눈에 보이는 근육은 무엇일까요? 바로 어깨와 손목입니다. 그런데 이 바카 아사나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 배의 중심(우디야나 반다)을 잡지 못하면 어깨와 손목만으로는 자신의 몸을 들어올릴 수가 없습니다.


“수련이란 이러한 동요를 가라앉히기 위해 확고부동하게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수행의 실천은 계속되는 집중을 통해 확고해진다)

요가 수트라 1장 13절

《요가 수트라》 B.K.S 아헹가 / 《요가 수트라》 박지명, 이서경

에카 파다 우르드바 다누라 아사나입니다.

에카는 하나, 파다는 다리, 우르드바는 위, 다누는 활을 뜻합니다.

다리를 위로 뻗은 게 과녁을 겨누는 활처럼 보이지 않나요?

척추의 유연성이 가장 돋보이지만 아사나를 수련해보면 중요하지 않을 것 같은 다리, 손목과 어깨 근육 이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요가 수련은 확고부동하게 노력하는 것이라고, 또 계속되는 집중으로 확고해진다고 합니다. 확고부동하다는 건 끄떡없다. 흔들림 없다라는 뜻이죠.  


짙푸른 녹색이 발갛게 물들게 될 가을이 왔습니다.

계절이 변해도 우리는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저는 아마 또 쉼 없이 흔들릴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요가와 글 그리고 사람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해보려 합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길을 걸어가고 있나요?  

목표가 흔들림 없는 건가요? 아니면 목적이 흔들림 없는 건가요?

목표에 집중하고 있나요? 목적에 집중하고 있나요?

물론 둘 다에 집중한다면 당신은 정말 굉장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혹 저처럼 어딘가 다치거나 슬럼프가 온다면, 그리고 과도한 긴장으로 몸이 굳는다면 한번쯤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당신다운 삶의 목적과 지향점을.  

그리고 이렇게 토닥토닥! 궁디팡팡!을 해주면 어떨까요?

“못해도 괜찮아.” “넌 그 자체로 소중한 사람이니까.”

나에게도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에게도.

우선은 가족부터! 저는 그래야겠습니다.

참! 길은 같이 걸어가실 거죠? 쉬어도 괜찮으니! 넘어져도 괜찮으니!

같이 걸어 갑시다! 서로서로 응원해주며. 포기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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