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버텨내기 위해 생각의 근육을 이완하다
[생각 숨 3호]
비가 내리는 헛헛한 밤, 나와 당신을 위로하며
김성아(생각스튜디오숨 그리고 요가스튜디오숨 대표)
비가 내리는 수요일이자 3월 20일. 혹시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시나요?
바로 유엔이 정한 '세계행복의 날'입니다!
저도 지인에게 한 통의 문자를 받고서야 알게 됐어요.
그리고 내일은 춘분!
양과 음이 반반, 낮과 밤이 반반, 더위와 추위가 반반인 날이래요.
그리고 봄갈이를 시작하며 한 해 농사를 준비하는 춘경이기도 하다네요.
겨울의 봄 시샘이 끝날 것 같더니 비가 그치고 나면
다시 쌀쌀한 날이 이어진다고 해요. 감기 조심! 아시죠?
음... 오늘은 헛헛한 밤이니까요.
이런 날 보기 좋은(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선택해 추천하는 것이겠죠?)
일본 애니메이션 한 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2017년 개봉한 이토 나오유키 감독의 '너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어'입니다.
히노사카 마을에 위치한 카페 아쿠아마린.
지는 노을이 무척이나 아름다운,
반짝반짝 태양이 눈부시게 내리쬐는 맑은 이 마을에
어느날 명랑한 나기사의 목소리로 코토다마(언령) 라지오(라디오)가 시작됩니다!
카페 아쿠아마린에는 라디오 스튜디오가 있었습니다.
아카네는 아쿠아마린의 DJ이자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음악가였죠.
마을 상점가에만 송출되는 미니 방송국 아쿠아마린은
고단한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마을 사람들의 비타민이었습니다.
갓난쟁이 딸 시온을 위해 부르는 자장가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까지 위로했죠.
그런데 아카네가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지고 가게 주인이 죽자
아쿠아마린은 폐가처럼 변해 버렸습니다. 당연히 라디오 방송도 멈추게 됐죠.
어느덧 훌쩍 커버린 아카네의 딸 시온은
엄마가 깨어나기를 바라며 오직 엄마만을 위한 라디오 방송을 시작합니다.
우연히 아쿠아마린에 들렀다 시온을 만나 나기사는
시온에게 자신과 함께 라디오 방송을 해보자고 제안합니다.
활발한 나기사, 늘 어둡고 부정적인 시온.
두 사람이 만나 시온의 엄마 아카네를 깨우기 위한 라디오 방송을 시작합니다.
그 방송의 이름이
'코토다마 라지오!' '언령 라디오'죠.
해안가에 접한 너무나 아름다운 히노사카 마을.
나기사는 언령을 보는 독특한 능력을 지닌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입니다.
할머니는 어릴적 나기사에게
'말에는 혼이 깃들어 있다'며 언령의 존재를 어린 손녀에게 알려줍니다.
'소원을 빌때는 제대로 목소리를 내어 볼 것.'
'타인에 대한 험담은 자신에게 돌아오니 절대 입 밖으로 내지 말 것.'
할머니의 말에 담긴 진심.
나기사의 순수한 영혼은 할머니 말 속에 담긴 혼, 언령을 정말 보게 됩니다.
꺠어나지 않는 엄마를 보며 어느새 희망을 잃어버린 시온은 말의 힘을 믿지 않습니다.
라디오를 하면서도 '정말 엄마에게 이 목소리가, 이 음악이 닿을까?
엄마가 일어날 수 있을까?' 의심하죠.
반면 나기사는 언령의 존재를 알기에 말의 힘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진심은 반드시 그 사람에게 닿는다.' '말은 반드시 현실이 된다.'
나기사는 시온에게 가장 친한 친구들을 소개하며 닫힌 시온의 마음부터 열기 위해 노력하죠.
어느덧 네 사람으로 불어난 라디오 방송.
주먹구구로 이어지던 코토다마 라지오에 속속 응원군들이 찾아옵니다!
시작 음악을 만들고, 타임테이블을 짜보고, 저작권료도 생각하게 되죠.
상점가 곳곳에 홍보도 하고
전문가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망가진 수신기도 고쳐
정말 어엿한 미니 방송국을 꾸리게 되는 아쿠아마린.
하지만 순조롭게 라디오 방송을 이어가던 여고생들의 발랄한 도전에 먹구름이 드리웁니다.
아쿠아마린을 허물고 편의점을 짓는 공사가 시작된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아카네 역시 시온의 할머니가 있는 요양원으로 떠나게 돼버린 거죠.
헛헛한 밤.
왜 제가 굳이 '너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어'란 영화를 여러분에게 추천했을까요?
이 영화는 말 속에 담긴 사람의 진심, 언령의 형상화를 통해
한 인간이 지닌 마음이 얼마나 존귀하고 굉장한 것인지를 새삼 일깨워줍니다.
거기에다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 청춘들의 일상이 더해지죠.
미래, 친구로 갈등하는 소소한 우리들의 모습이 겹쳐집니다.
깨어나지 않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말의 힘을 믿지 않게 된 시온,
늘 자신보다 뛰어난 유우에게 질투를 느껴 나쁜 말도 서슴지 않는 카에데까지.
현실의 벽에 짓눌린, 경쟁에 찌들린 우리의 모습이 그려진 건 저뿐인가요.
언령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 말을 만들어낸 마음의 힘도 믿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실제로 말을 하면서도 자신조차 그 말을 믿지 않죠.
영화는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며 갈등이 극에 달합니다.
시온은 '언령이 있을 리 없다'고 소리칩니다.
언령이 있다면 도대체 왜 엄마가 깨어나지 않냐면 나기사에게 따지죠.
아쿠아마린은 허물어지고 아카네와 시온의 가족은 히노사카 마을을 떠납니다.
영화의 마지막.
떠나는 아카네 가족에게
나기사는 마지막 라디오 방송을 준비합니다.
아쿠아마린이 허물어져 방송할 곳이 사라지자 야외 방송을 준비하죠.
야외 방송 소식을 전해듣자
마을 사람들도 떠나는 아카네에게 배웅 인사를 하기 위해 모여듭니다.
"아카네씨, 모두 아카네씨 목소리를 다시 듣고 싶대요."
나기사는 마지막 방송을 위해 노고한 마을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제작한 노래를 들려줍니다.
"나 자신만이 바라보는 시선만으로 / 실은 어디선가 포기하고 있었어
모두 해내지 못해선 안 된다고 믿어서 / 그래서 미아가 되었어
자 봐 네 옆을 봐 우리들이 곁에 있어 / 모두와 함께라면 / 분명 닿을거야
말이 마음이 날개가 되어주네
혼자가 아니라는 것의 강인함을 지금 / 느끼고 싶어 기원은 반드시 현실이 돼
그래 서로 본심을 터놓고 얘기하면 / 정말 좋아한다는 걸 /
알 수 있으니까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아 / 겹쳐지는 이 노랫소리가 /
혼자가 아니기에 보였어 지금 / 확인해보자 기원은 반드시 현실이 돼"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사람들의 진심.
언령은 아카네에게 닿고 아카네는 깨어나게 됩니다.
영화의 시작 언령을 볼 수 있었던 사람은 나기사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이제 마을 사람 모두가 언령을 볼 수 있게 됩니다.
다시! 왜 이 영화를 비가 내리는 멜랑꼴리한 밤 여러분께 추천했을까요.
첫째, 밝고 쾌활하고 명랑한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나기사의 목소리와 성격처럼.
마을의 하늘, 노을, 거리, 사람들의 얼굴,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들.
모든 것들에 희망이 묻어 있습니다.
둘째, 왜 밝고 쾌활하고 명랑할까. 크레딧이 올라가며 흘러나오는 마지막 노래가 특히 발랄한데
그 가사를 전해드리며 영화 '너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어' 추천사를 총총 마치고자 합니다.
"여기까지라면서 정하지 말아줘 / 가능성투성이인 지금 / 뭐든 해보자 / 넘어서 보자 / 신기한 세계 / 함께 실현해보자
각자의 손에 생겨난 희망의 조각 / 저 푸른 하늘에 장식하며 / 맹세했던 말은 /
혼자서 상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크나큰 / 꿈이 될 거야 / 버팀목이 될 거야 / 기다려 줘 / 우리들의 미래
웅크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 말을 걸어 봐 / 은근슬쩍
여기서부터라며 시작하면 / 아무리 분한 밤도 / 휙하며 넘어갈 수 있어 / 넘어서 보자"
가능성투성이인 지금, 은근슬쩍 말을 걸어보기, 휙하며 넘어가기.
실제로 그 단어가 쓰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번역하신 분의 센스에 감탄하며!
이제 조금씩 비바람이 잦아드네요.
봄이 다가오는데 꽃샘추위가 여전히 기승인 것처럼
우리네 일상도 아직 한겨울일 때가 많죠.
가능성투성이인 지금의 자신입니다.
그러니 먼저 자신에게 은근슬쩍 말을 걸어보고, 여유가 된다면 곁의 누군가에게 살짝 말을 건네보아요.
쉽진 않겠지만 닥쳐오는 어려움을
휙하며 넘길 정도로 강해져 보는 거예요.
다음 어려움에는 끄떡없을 정도로.
말을 믿어보기로 해요. 그 말을 하는 굉장한 자신도 함께 믿어보기로 해요.
구름에 가려져 있어도 태양은 태양이니까.
모든 어둠을 날려버릴 우리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