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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꼭그래 Oct 22. 2019

조국 전장관의 기사를 보며

기사는 기사여야 합니다.

우리는 늘 뭔가를 봅니다. 그런데,눈으로만 보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이나 생각으로도 봅니다. 하지만 눈과 마음과 생각은 보는 대상이 다르기도 합니다. 눈은 감각적 현실을 봅니다. 보여진 현실을 토대로 마음은 자신과의 감정적 관계를 살펴 봅니다. 어떤 감정을 불러 일으킨것은 우리의 뇌로 흘러가 생각하게 됩니다. 과거, 현재, 미래에 관한 지성적 판단을 해보려 합니다. 우리 일상은이 과정들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을 기억하지는 못하겠지만, 몇 가지는 기억하려 합니다. 대체로 우리는 눈으로 본 것을 사실이라고생각하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사실 판단에는 경험과 습관이 만들어낸 편견이 제대로 보는 것을 방해하기도합니다. 로버트 고버의 Trsah(쓰레기)가 그것을 일깨워 주기도 합니다.

로버트 고버, Trash


미술관 이곳 저곳에 놓아 두었던로버트 고버의 작품을 사람들은 누군가 버린 쓰레기로 생각하고,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듯이 멀찍이 떨어져서지나쳐 갔다 합니다. 눈으로 보는 것으로 사실판단을 끝낸 것입니다. 사람들은 봉투 바깥에서 저 검은 안을 짐작한 것입니다. 이 짐작이형성된 곳은 일상생활의 경험들입니다. 그게 아무런 가치가 없어 보이거나 추한 것이 버려져 있다면 자신과 무관한 것임을 몸짓으로 주장하기위해서 멀리 떨어져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 선입견이 만들어지고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선입견이 작동하게 됩니다. 로버트 고버의Trash라는 그것을 일깨워 줍니다. 당연히저 안에는 쓰레기가 담겨 있지 않습니다. 아마존에서도 1.6달러정도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유통시킬 수 없으며 판매도 되지 않는 쓰레기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버트 고버의 작품은 쓰레기가 아니라 의도가 담겨있는 예술작품이라고 말해지는 이유입니다.그럼에도 우리는 마음으로 저 작품과 연결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래서 이런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예술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예술작품이라면 모름지기 아름다워야하니까요. 그렇다고 아름다워야 사실을 전달해 줄까요? 장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유피테르와 테티스의 그림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을 알게 됩니다.

주피테르와 테티스



앵그르가 그려낸 유피테르와 테티스는 생각에만 존재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 존재를 우리가 볼 수 있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그려낸것입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작품은 거짓입니다. 여성이면서목젖이 있군요. 목젖 아래로 연결되는 몸을 아름답게 그려내기 위해서 이상하고도 과장된 목선을 만들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어깨 또한 사라졌습니다. 어깨를우리의 시선에서 물러나게 하니 젖가슴과 허리 그리고 엉덩이가 매끄럽게 연결됩니다. 앵그르는 전체적인 여인의 몸을 주름 하나 없이 비현실적으로 그려냅니다. 

미술가들은 오랫동안 선과 색으로 사물을 조형적으로 구축해 낼 줄 알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당대 최고의 화가 중 한 사람이었던 앵그르가 실수한것처럼 보여지지는 않습니다.  아름다움을 감정과 연결하기 위해서는 때로 사실성은 그리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앵그르는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때로 거짓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생각으로 보이는 것들은 어떨까요. 우리에게 아주 잘 알려진 피카소는 생각으로 보는그림을 그려낸 화가였습니다. 그의 작품 게르니카는 우리의 과거와 미래로우리의 생각을 이동시켜줍니다.

피카소, 게르니카


피카소의 게르니카에는 말과 소가 울부짖으며 사람들은 절규합니다. 아비규환 그 자체입니다. 눈으로 보이는 끔찍함을 언어가 될 수 없는 비명과 절규를 표현했습니다. 게르니카는 현실적인 것으로 조형되어 있지 않습니다. 분리되고, 뒤틀려 있으며 비현실적으로 변형되어 있어서 그저 이전에무엇이었다는 것만을 암시 해줄 뿐입니다. 스페인 내전이라는 비극으로 인해서 모두의 몸뚱이가 갈가리 찢어졌던 스페인의 현실이었더라도 피카소가 기록한 이 광경을 사실성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거짓으로 결정짓지는 않습니다. 

거짓을 그렸을 수도 있겠지만, 피카소가 목격한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신뢰하는 것에서 게르니카를해석하게 됩니다. 피카소만이 이 사실을 전달한 것도 아닙니다. 수많은피해자들의 증언과 사진기자 카파를 비롯해서 세계수 많은 기자들이 스페인 내전을 전했습니다. 피카소뿐만 아니라 기자들 전체가 사실을 전달하려 했다는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 가지 방식으로 세상을 보게 됩니다. 감각적인 현실을 보는 것이기도하며, 마음을 흡족하게 해주는 것을 선택해 보려는감정적인 것이기도 하며, 보기를 주저했던 것을 눈을 통하지 않고 곧바로 생각으로 보게 해주는 지성적인것이기도 합니다. 일상 생활에서는 이 세 가지 방식이 혼재해 있습니다.

스마트폰에 푹 빠져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무엇인가 보려는 의지가 강하기때문입니다. 눈이나 마음, 혹은 생각을 사로잡은 것이겠죠. 그런데 보고자 하는 것은 각자 다릅니다. 자신을들여다 보게 하는 것이거나 자신의 어느 한 곳을 아름답게 볼 수 있게 하는 무엇이거나, 누군가의추함으로 자신의 추함을 감추려 하는 것들로 자신을 만족 시키는 것일 것입니다. 만족할 만한 것을 본다는 것을 바꿔 말하자면, 삶의 환경과 저마다의 성격으로 만들어진 취향이라고도합니다.

취향은 자신의 삶을 꾸며내게 합니다. 이꾸밈은 자신을 누군가에게 최대한 아름답게 보여주기 위해서 입니다. 그것의 성공 정도가 때로는 자신의 삶을 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준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자신이 보는 입장만이 아니라 보여지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죠. 그래서 자신의 취향과 가장가까운 것을 취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것을 받아들여 자신의 삶을 꾸미게 됩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취향인척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취향은 자신이 본 것이면서 보여주기를 원하는 무엇이기도 합니다. 각각의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을 우리는 사회라 합니다.

다시 로버트 고버의 Trash(쓰레기)로 돌아가작품에 자신을 대입해 봅시다. 가장 먼저 신경쓸점은, 검은 비닐봉투가 외투가 되어서는 안 되겠죠. 저도 마찬가지지만, 우린 외피를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것으로 바꿉니다.  그리고 자신의 내용물이 좀 더 고상한 무엇이라고 말해져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 저런 설명과 변명으로 가득 채웁니다. 이제 한결 그럴듯하게 보이는군요. 이제 이 작품은 미술관 아무데나 전시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승리자가 올라서는 시상대와 같은 전시대 위에 놓여져야 하며, 아주투명하고 매끈한 유리나 플라스틱으로 보호되어야 할 무엇이라 생각이 들것입니다.

그런 희망을 안고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변해갔다면모를까 그렇지 못했을 경우에도 자신이 함부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는 신뢰가 모인 곳이 사회라는 곳입니다. 사회는 시상대 위에 올라설 수 있거나그렇지 못할 경우에도 고유성을 가진 한 작품처럼 마땅히 대우 받아야 하는 곳입니다. 사회는 그런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곳입니다.

우리의 취향이 제멋대로라 하더라도 요즘 기사들은 어떻게 보아도 세 작품을 보는 것만 같습니다. 고버의작품처럼 실제의 내용을 전해주지도 못하고 앵그르의 작품처럼 보여주고 싶은 방향으로 말하기도 하며, 독일군과 스페인 협력자들이게르니카를 갈가리 찢어 놓은 것처럼 검찰의 잔혹한 행위에 가담한 협력자로 보여집니다. 우리 사회를 작품이 전시되는 곳으로 말하자면, 기자는 자신의 취향대로 보려는 관람객이나 관객이 원하는 것을 부각해 보여주려는 예술작품 자체여서는 안 됩니다. 더군다나 기자는 작품을 만드는 아티스트가 아니라 해설가인 저널리스트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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