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빙
난 어릴 적에 우주나 혹은 별이 되어보고 싶었다.
넓은 밤하늘이 되거나 그 속을 유영하는 별이 되어보고 싶었다.
아빠는 어린 나를 데리고 자주 갯바위에 밤낚시를 하러 갔었다.
아빠가 바다를 보며 밤새 무언가를 낚아 올릴 때
나는 하늘에서 무언가 낚아채고 싶었다.
그때 별과 나의 거리에는 한계가 설정되지 않아서
나는 자주 하늘로 손을 뻗어볼 수 있었다. 우리 아빠 낚싯대 던지듯 휘휘.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의 아빠는 낚싯대 같았다.
매일 위태롭게 휘어지며 낚아 올린 것들로 나를 키워냈다.
여튼 깊은 밤 갯바위 위에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보면
바람만큼 움직이는 구름들이 어린 내 눈에 얼마나 출렁이는 파도 같은지,
바라보다 보면 눈 안이 바다 되어 철썩철썩거렸다.
그럴 때면 천천히 나는 내 몸 밖으로 빠져나와
내 눈 속에 뛰어들어 하늘을 천-천-히 유영했다.
그러나 어른들은 내가 "저는 우주나 별이 되고 싶어요!"라고 말할 때면
"우주 비행사나 천문학자가 되고 싶구나, 그건 좋은 꿈이야."라고만 대답해주었다.
돌아보니 아이의 한계는 그렇게 설정된다.
먼저 제한되어본 사람들의 당연한 의견에 어린이는 확장되지 못하고 줄어든다.
며칠 전 나는 그 사실이 갑작스레 억울해
깊은 밤 동네 체육공원의 가장 높은 미끄럼틀 위에 누워 밤하늘을 유영해 보았다.
한참 하늘을 바라다보면 하늘도 물끄러미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오래 바라본 사람들이 서로 마음을 열듯
하늘도 자신의 흑해를 열어주고는 자기 위로 나를 천천히 밀어 올려준다.
그곳의 나는 미세히 빛나는 배.
밝다고 말하긴 좀 그래도 꺼졌다고 말할 수는 없는 그 정도의.
서른둘에도 아직 이곳을 유영해 볼 수 있다니.
나는 아직도 꿈꿀 수 있구나.
아직 완전히 제한되지는 않은.
나이에 비해 조금 덜 절망한.
나는 미세히 빛나는 배.
사람이 떠있는 밤, 오늘은 바다에도 별자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