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빙
아버지는 부산의 여러 백화점과 마트에 과일을 납품하는 청과물 도매업자였다.
사업규모가 작지는 않아서, 돌아보면 나는 꽤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시절 아버지는 조수석에 나를 태우고 참 자주 일을 다니셨다. 그러니까 내가 10~15살 정도 사이 였을때.
보통 담당자 미팅을 하는 동안은 나를 차에서 기다리게 하고 4~5곡이 지나면 돌아오시곤 했다.
시간이 곡수로 기억나는 이유는 일을 보시는 동안 나는 차 안에 꽂혀있는 아버지의 테잎들을 들었기 때문에.
보통 테잎의 A사이드를 다 들을 때쯤이면 아버지가 돌아오셨고
다음 일터로 가 B사이드를 다 들을 때쯤이면 또 돌아오셨다.
아버지는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지금 생각해봐도 진짜 끝내주는 앨범들만 차에 있었다.
딥퍼플, 비틀즈, 퀸, 이글스, 레드제플린 등등.. 나는 저 시대의 밴드 음악을 들으면
어린 시절의 카시트의 촉감과 방향제향
아직 늙지 않은 아버지의 모습과 기어 위에 올려진 두껍고 커다란 손등의 질감까지
여전히 손에 닿을 듯 촉촉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 두꺼운 손위에 내 작은 손을 올려두고 기어를 변속할 때마다 내가 운전하는 척 장난을 치던 기억도.
보통 오전 미팅이 끝나면 점심을 먹었는데 자주 서울깍두기라는 설렁탕집에 나를 데리고 가셨다.
메뉴는 거의 수육 하나와 국밥 두 개, 나는 아직도 그렇지만 어릴 때는 유난히 더 뜨거운걸 잘 못 먹었다.
뜨겁고 맵고 이런 음식에 참 약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식사를 다하시는 동안 늘 반도 못 먹었고,
그럴 때면 아버지는 별 말없이 조용히 내가 다 먹을 때까지 내 밥그릇만 보며 기다려 주셨는데
나는 어린 마음에 그 시간이 그렇게 무서웠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딱히 재촉을 하거나 혼을 내신 것도 아닌데.
계속 내 그릇을 쳐다보는 아버지의 표정이 왠지 화난 거 같아서 그랬을까?
그 시절의 아버지는 워낙 호랑이 같은 사람이었으니까.
아니면 아버지가 워낙 급하게 부지런히 살던 사람이라 그랬을까?
그래서 그 템포에 나도 맞춰야 한다는 생각도 조금 있었던 것 같다.
여하튼 그렇게 점심을 먹고 나면 나를 집에 내려다 주시고는 나머지 일을 보러 가셨고
나는 그 뒤엔 뭐했나 사실 기억이 잘 안 난다. 대충 20년은 된 이야기니까.
어른이 되고 서울에서 혼자 일을 하며 지내는 동안 가끔 아버지 생각이 나면
서울깍두기에 가서 혼자 설렁탕을 먹었다.
어릴 때 추억이 남아있어서 그런지 그냥 거기서 밥을 먹고 있으면
혼자 먹어도 혼자 먹는 기분이 안 들어서 좋았다.
그리고 시간이 좀 더 지난 16년도 겨울 아버지의 대장암 수술 뒤 항암 기간 동안
아버지를 돌봐드리기 위해 부산으로 내려왔다.
그 기간 동안 체력적으로 버티기 위해 그리고 수술 이후 빠진 체중도
원래대로 돌려놓기 위해서 아버지는 밥을 최대한 잘 드셔야 했는데
그때 설렁탕이나 돼지국밥을 몇 번 아버지와 함께 먹은 적이 있다. 그걸 주로 드시고 싶다고 하셔서.
하루는 해운대 백병원에서 항암을 끝내고 같이 설렁탕을 먹은 날이 있었는데
그 날 처음으로 아버지보다 내가 더 빨리 밥을 먹었다.
왠지 숟가락을 내려놓으면 같이 내려올 것들이 너무 가득한 기분이라
국물만 남은 빈그릇의 바닥만 달그락달그락 긁었다.
더 이상 퍼먹을 것 없는 그릇을 한참 퍼먹으며 아버지를 살펴봤다.
빡빡 민 머리, 의료사고 때 응급조치로 넣은 산소호흡기 때문에 죄다 망가지고 뒤틀린 치아,
너무 말라버린 몸, 힘없는 숟가락질, 수술 때문에 달게 된 아랫배의 배변주머니까지.
그냥 시간이 조금 많이 지났을 뿐인데 아버지는 왜 이렇게 많은걸 뺏기셨나 생각하고 있는데
힘없는 숟가락이 내 빈그릇에 한가득 하얀 밥을 퍼 넣어주고 있었다.
아버지가 왜 그렇게 어릴 때 내 그릇을 한참 보고 계셨나 알듯했다.
여전히 서로의 그릇을 보며 밥을 먹었을 뿐이지만 나는 그때 몰랐던걸 하나 더 알았고 그게 참 슬펐다.
그래도 그때보다 아버지의 사랑이 더 보호장비 없이 투명하게 다가와 마음이 그저 슬프지만은 않았다.
아버지가 많은걸 잃은 건 슬펐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랑은 가득 남아있으니 덜 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렇게 생각했지만 집에 와서는 아버지가 준 쌀알보다도 많이 울었다
요즘 아버지는 의료사고 후유증으로 우울증을 앓고 있다. 오늘은 전화로 어릴 적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나의 아버지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수백 개도 넘게 쓸 수 있지만 그중에 하나가 생각나 오늘 기록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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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나이를 먹으며 보니 아들이라는 존재는 아버지의 폭로된 비밀입니다.
아버지는 따듯한 비밀을 많이 가지고 계셨고 덕분에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여기저기서 생각이 나서
괜히 웃고 그리워하고 가끔 눈물이 나고 그럽니다.
그래도 그 비밀들 덕분에 저도 분명히 나중에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이를 먹고 조금은 투명해지신 모습도 보기 좋습니다.
사람 속이 훤히 보인다는 게 가끔은 참 눈물 나게 아름답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