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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가람 Apr 19. 2019

나는 너무 오랫동안 도시에 착색되었습니다.

아카이빙

나는 너무 오랫동안 도시에 착색되었습니다.

그저 살기만 하다 보니 나를 모른 채 

나를 담는 건물을 닮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학교에 있으면 학교 

회사에 있으면 회사 

집에 있으면 집 

어느 날부터 나는 그냥 건물의 일부가 되어 살았습니다.


이제 내 감정은 흉내 정도로 피부 위에 살짝 덮여있어 

바람만 조금 불어도 금방 골조가 드러납니다.

어제의 환희와 기쁨 오늘의 슬픔과 절망도 

바람 조금 불고 나면 아주 회색으로 무감각하게 돌아섭니다.


요즘 제 시간은 기형적으로 의미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낡아 간다는 걸 하루하루로는 절대 모릅니다.

10년 단위로나 알까요? 강산이나 저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남들에게 저는 오래된 건물이나 그림처럼 

가끔 평가받고 가치가 매겨질 뿐

그다지 동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에게 사람은 얼마나 정적인 존재인지

인간에게 타인은 얼마나 정적인 존재인지.


나를 공실로 만들고 

남을 잔뜩 담은 대가로 

월세 정도 되는 급여를 받고 삽니다.

거기 몇 명이나 있습니까?

살다 보니 내 방에 내가 없습니다.


여전히 세는 놓고 있습니다.

돈 많이 주는 순서대로 

언제나 입주 가능합니다.

이게 내게 묻은 도시의 색입니다


나는 옳게 축조되었습니다.



-


이사한 기념으로..


강동구로 이사 왔습니다.

지금 제가 사는 곳은 불과 2년 전만 해도 교회였다고 합니다.

그것도 강동구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였다고 들었습니다.

간절함이 오래 스며든 장소에 사는 것 같아 기분이 묘합니다.

저도 그런 장소라서요. 저도 간절함이 아주 오래 배인 장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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