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빙
나는 너무 오랫동안 도시에 착색되었습니다.
그저 살기만 하다 보니 나를 모른 채
나를 담는 건물을 닮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학교에 있으면 학교
회사에 있으면 회사
집에 있으면 집
어느 날부터 나는 그냥 건물의 일부가 되어 살았습니다.
이제 내 감정은 흉내 정도로 피부 위에 살짝 덮여있어
바람만 조금 불어도 금방 골조가 드러납니다.
어제의 환희와 기쁨 오늘의 슬픔과 절망도
바람 조금 불고 나면 아주 회색으로 무감각하게 돌아섭니다.
요즘 제 시간은 기형적으로 의미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낡아 간다는 걸 하루하루로는 절대 모릅니다.
10년 단위로나 알까요? 강산이나 저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남들에게 저는 오래된 건물이나 그림처럼
가끔 평가받고 가치가 매겨질 뿐
그다지 동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에게 사람은 얼마나 정적인 존재인지
인간에게 타인은 얼마나 정적인 존재인지.
나를 공실로 만들고
남을 잔뜩 담은 대가로
월세 정도 되는 급여를 받고 삽니다.
거기 몇 명이나 있습니까?
살다 보니 내 방에 내가 없습니다.
여전히 세는 놓고 있습니다.
돈 많이 주는 순서대로
언제나 입주 가능합니다.
이게 내게 묻은 도시의 색입니다
나는 옳게 축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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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한 기념으로..
강동구로 이사 왔습니다.
지금 제가 사는 곳은 불과 2년 전만 해도 교회였다고 합니다.
그것도 강동구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였다고 들었습니다.
간절함이 오래 스며든 장소에 사는 것 같아 기분이 묘합니다.
저도 그런 장소라서요. 저도 간절함이 아주 오래 배인 장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