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아카이빙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가람 Apr 19. 2019

나는 너무 오랫동안 도시에 착색되었습니다.

아카이빙

나는 너무 오랫동안 도시에 착색되었습니다.

그저 살기만 하다 보니 나를 모른 채 

나를 담는 건물을 닮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학교에 있으면 학교 

회사에 있으면 회사 

집에 있으면 집 

어느 날부터 나는 그냥 건물의 일부가 되어 살았습니다.


이제 내 감정은 흉내 정도로 피부 위에 살짝 덮여있어 

바람만 조금 불어도 금방 골조가 드러납니다.

어제의 환희와 기쁨 오늘의 슬픔과 절망도 

바람 조금 불고 나면 아주 회색으로 무감각하게 돌아섭니다.


요즘 제 시간은 기형적으로 의미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낡아 간다는 걸 하루하루로는 절대 모릅니다.

10년 단위로나 알까요? 강산이나 저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남들에게 저는 오래된 건물이나 그림처럼 

가끔 평가받고 가치가 매겨질 뿐

그다지 동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에게 사람은 얼마나 정적인 존재인지

인간에게 타인은 얼마나 정적인 존재인지.


나를 공실로 만들고 

남을 잔뜩 담은 대가로 

월세 정도 되는 급여를 받고 삽니다.

거기 몇 명이나 있습니까?

살다 보니 내 방에 내가 없습니다.


여전히 세는 놓고 있습니다.

돈 많이 주는 순서대로 

언제나 입주 가능합니다.

이게 내게 묻은 도시의 색입니다


나는 옳게 축조되었습니다.



-


이사한 기념으로..


강동구로 이사 왔습니다.

지금 제가 사는 곳은 불과 2년 전만 해도 교회였다고 합니다.

그것도 강동구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였다고 들었습니다.

간절함이 오래 스며든 장소에 사는 것 같아 기분이 묘합니다.

저도 그런 장소라서요. 저도 간절함이 아주 오래 배인 장소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아버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