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rry Jun Jul 10. 2015

오뜨 꾸뛰르는 돈 낭비가 아니다

얼마 전부터 패션을 존중하게 된 바보의 경험담

방금 <허핑턴 포스트 코리아>에서 기사 하나를 봤다. 

'2015-16 F/W 기기괴괴한 오뜨 꾸뛰르 의상 10선'


기사 첫 단은 이렇게 시작한다. 


"패션의 세계는 정말 심오하고도 깊다. 어떨 때 런웨이를 바라보면, 그저 헛웃음이 나오는 경우가 부지기수니 말이다. 이번 2015-16년 F/W 오뜨 꾸뛰르 쇼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사 말대로 패션의 세계는 정말 심오하고도 깊다. 비꼬는 게 아니다. 예전에는 나도 오뜨 꾸뛰르에 대한 반발심이 있었다. 아니, 패션쇼에 대한 반발심이라는 표현이 더 맞겠다. 바로 입을 수 있는 옷을 보여주지 않고, 디자이너가 브랜드를 빌려 상상력의 자위를 펼치는 장면에 헛구역질이 나오곤 했다.


그러다가 올해 봄 패션 디자이너에 대한 외고를 의뢰받았다. 내가 선택한 주제는 '앙팡 테리블'이었다. 아마 아예 기괴함의 극치로 패션을 바라볼 때나 뭔가 이야기가 나온다는 판단이었던 것 같다. 난 패션에 대해 모르니까.


비비안 웨스트우드, 장 폴 고띠에, 알렉산더 맥퀸 총 세 명을 다뤘는데 정확한 정보를 위해 그들의 유명 컬렉션을 확인하고 의도를 체크하면서 작품 세계에 대해 요약을 하다 보니 점점 기괴한 옷차림이 다르게 보였다.


티핑 포인트는 알렉산더 맥퀸의 컬렉션을 다시 쭉 복기하면서 원고를 마무리할 때였다. 헛웃음이 나오던 그의 작품이 갑자기 경이롭게 다가왔다. 알이 가득한 둥지를 머리에 부착한 모델은 무표정하게 서 있었지만 실낱처럼 배어나오는 자신감을 감추진 못했다. 사슴 뿔을 장착한 채 레이스를 흐늘거리는 모델은 또 어떻고.



그때 생각했다. 이 기기묘묘한 옷을 입고 런웨이를 계속할 수 있도록 디자이너는 얼마나 큰 노력을 감수하는 것일까. 독창성과 상상력을 내뿜으면서도 실제 사람이 입을 수 있고 캣워크가 가능한 '무언가'를 구축하려면 맞춤형 건축 공학이라도 필요하지 않을까. 콘셉트를 명확히 가지고 만들어진 작품 중 패션만큼 인간에게 물리적으로 가까운 것이 있던가 등등 질문이 끊임없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지금도 역시 패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입장에서 어떤 질문에도 명확한 입장은 없지만 이거 하나는 또렷해졌다. 패션은 허공에 돈을 날리는 쓸모없는 짓거리가 아니라 고차원의 감각과 지식을 필요로 하는 하나의 전문 분야라는 사실 말이다.


그 이후로 오뜨 꾸뛰르를 볼 때면 늘 입을 헤 벌리고 있다. 어떻게?!?! 라는 본능적인 감정이 솟구치는 걸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이상, 패션을 존중하게 된 바보의 경험담 끝.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야 디자인 저널리스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