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인컬처 2018년 9월호 'Special Feature' ❶
올가을, 2년마다 돌아오는 ‘한국 비엔날레 시즌’이 드디어 시작된다! 대전비엔날레(7. 11~10. 21)를 시작으로,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8. 28~11. 30) 창원조각비엔날레(9. 4~10. 14)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9. 6~11. 18) 광주비엔날레(9. 7~11. 11) 부산비엔날레(9. 8~11. 11), 여기에 올해부터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9. 1~10. 31)가 신설되어 총 7개의 비엔날레가 전국 각지에서 앞뒤를 다투며 연이어 열린다. Art는 비엔날레라는 거대한 이벤트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를 낱낱이 살펴보고자 ‘2018 비엔날레 디렉토리’를 마련했다. 단순히 정보를 나열하고 정리하는 틀에 박힌 디렉토리에서 벗어나, 최근 비엔날레들에서 관측되는 변화와 그 특징에 주목한다. 이를 위해 비엔날레마다 총 5개의 관전 포인트를 선정하고 압축된 설명을 곁들였다. 물론 제일 기본이 되는 핵심 정보도 빠트리지 않았다. 각 비엔날레에 상기된 기간 장소 디렉터/큐레이터 주제 참여작가 웹사이트 리스트는 전국을 투어 할 아트피플의 친절한 ‘가이드북’ 역할을 자임한다. 21세기 가장 각광받는 문화 이벤트로 자리매김하여 독자적 캐릭터 구축에 박차를 가하는 비엔날레들. 매회 수십억 원의 예산과 국내외 수많은 인력이 투입되는 비엔날레는 한국과 국제 미술계가 교류하는 플랫폼 역할을 맡아왔다. 다시 말해, 한국미술은 비엔날레와 함께 성장했다. 2018년 비엔날레는 한국 아트 씬과 국제 미술계에 어떤 새로운 메시지를 던질까? 그 결정적 순간을 한 발 앞서 점검한다.
서울 광주 부산: 다수 큐레이터로 구성된 ‘집단지성’ 전략을 채택해
오늘날 전 세계의 문제적 이슈들에 응축된 메시지를 던진다
국내 3대 비엔날레로 불리는 서울 광주 부산은 공통적으로 기존의 1인 감독 기획 체제를 답습하지 않고 다수의 예술감독 및 큐레이터로 이루어진 ‘집단지성’ 전략을 취했다. 먼저 올해로 제10회를 맞이한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는 김남수(무용평론가) 김장언(독립큐레이터) 임경용(더북소사이어티 대표) 홍기빈(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의 공동기획으로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과 서울로미디어캔버스에서 전시를 펼친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4인의 콜렉티브 체제를 선택하면서 주제에 관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확장된 공론의 장을 형성하고자 한다. 제12회를 맞은 광주비엔날레 역시 ‘다수 큐레이터제’를 도입해 일찍이 국내외의 주목을 받았다. 김선정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가 총괄하고, 클라라 킴(테이트모던 국제 미술 수석 큐레이터) 크리스틴 Y. 김(LA카운티미술관 큐레이터) 리타 곤잘레스(LA카운티미술관 큐레이터) 그리티야 가위웡(장콕 짐톤슨아트센터 예술감독) 정연심(홍익대 부교수) 이완 쿤(홍콩대 부교수) 데이비드 테(싱가포르대 부교수) 김만석(독립큐레이터) 김성우(아마도예술공간 책임 큐레이터) 백종옥(독립큐레이터) 문범강(미국 조지타운대학 교수) 등 총 11명의 큐레이터가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및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7개의 전시를 선보일 예정이다. 제11회 부산비엔날레는 사상 최초 공개모집으로 선정된 전시감독 크리스티나 리쿠페로(독립큐레이터)와 큐레이터 외르그 하이저(베를린 예술대학 교수)가 전시 오픈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시감독과 큐레이터 직함은 편의상 구분일 뿐, 전시에 관련된 모든 업무는 공동의 합의를 거쳐 진행한다.
전시의 정체성을 상징하고 기획의도를 함축하는 ‘주제’는 3개의 비엔날레에서 어떻게 설정됐을까? 이들은 국제적 비엔날레의 경향에 발맞춰 인류의 역사를 반추하고 전 세계에 걸쳐 맞물려 있는 사회 정치적 이슈를 고찰한다. 나아가 비엔날레를 10여 년 이상 존속해온 만큼, 예술의 역할과 비엔날레라는 시스템 자체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는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가 고안한 개념 ‘아직 아니다(Noch Nicht)’에서 착안해 ‘좋은 삶’을 주제로 발표했다. 아직 도래하지 않은 ‘좋은’ 세계가 현실에 구현될 수 있도록 전환하는 매개자로서 예술의 역할에 주목한다. 예술적 상상력으로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명확하게 보여주려는 의도를 담았다. 광주비엔날레는 ‘상상된 경계들’을 주제로 발표했다. 현대사회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전쟁 분단 냉전 등 근대의 잔상을 되돌아보고, 인권 난민 이주에 관해 묵직한 성찰과 비판의 메시지를 전한다. 또한 1995년 창설 이후 민주와 평화의 가치를 지향해온 광주비엔날레의 역사를 되새기는 아카이브형 작업도 마련해 비엔날레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재고한다. ‘비록 떨어져 있어도’를 주제로 채택한 부산비엔날레는 세계 전역에 산재하고 있는 물리적, 심리적 ‘분리’를 다룬다. 탈냉전의 시대로 진입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엔 호전적인 분위기가 팽배하고 있다. 비록 개개인이 속한 지역은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포스트 인터넷 시대 우리가 직면한 새로운 갈등과 위기는 또 다른 와해를 일으키는 것이다. 전시는 전 지구적으로 발생하는 이러한 다층적 차원의 분리가 인간의 심리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 균열과 대립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올해 서울 광주 부산비엔날레는 참여작가의 직업 출생지 이력 등의 스펙트럼에 변화를 주거나 전시 규모를 축소하면서 응집도를 높이고자 했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의 참여자는 총 11개국 70명(팀)으로, 미술작가에 국한하지 않고 정치 경제 환경 기술 분야의 활동가 기획자 연구자로 다채롭게 구성됐다. 특정 소수 계층의 전유물로서의 예술을 거부하고, 미술관을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이 교차하는 본격적인 토론의 장으로 조성하면서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재고한다. 광주비엔날레는 40개국 153명(팀)의 참여작가 중 아시아 작가와 남미, 중동 등 제3세계권 작가, 디아스포라 이력을 지닌 작가의 참여를 확대한 것이 특징이다. 유럽 중심의 담론에서 탈피해 변방과 경계 지대의 이슈를 생산하면서 현대미술의 중심축을 이동하고자 했다. 부산비엔날레는 34개국 65명(팀)으로 참여작가 수를 대폭 줄이는 대신 국가 수를 늘려 규모적 스펙터클을 지양하고 주제 의식을 심화시킨 전시에 총력을 가한다. 참여작가들은 전쟁 분단 디아스포라 등을 키워드로 신냉전시대의 물리적, 심리적 분리를 다양한 시각에서 펼쳐낼 예정이다.
금강 대전 전남 창원: 우리는 왜 비엔날레를 필요로 하는가?
도시의 부흥을 위해, 장르의 활성화를 위해
금강 대전 전남 창원 비엔날레는 태생부터 특정 예술장르나 매체에 집중하겠다는 포부를 밝혀왔기에, 해마다 달라지는 비엔날레의 주제 역시 결국에는 이 기획 취지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귀결된다. 더구나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를 제외하고는 모두 조직된 지 10년이 채 안 된 신생 행사이기 때문에 아직은 운영 제도에 큰 변화를 주거나 주제 의식을 다양화하기보다는, 비엔날레의 ‘정체성’과 개최의 ‘당위성’을 설득하는 데 주력한다.
4개의 비엔날레가 스스로의 정체성과 당위성을 만들어나가는 양상에서 애초에 왜 비엔날레라는 제도가 필요한지,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지를 도출하게 된다. 먼저 이 제도는 지역사회의 발전을 도모하는 핵심 요소로 기능한다. 서울 부산 광주 외 4개 행사의 개최지는 모두 지역의 중소도시. 미술계에서는 모두 불모지나 다름없는 이 지역이 비엔날레를 여는 이유는 물론 나름대로 각 지역이 미술과 연관성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비엔날레는 관광객을 유치하고 지역을 홍보하는 데 최적화된 행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엔날레의 주제나 기획 방식, 전시 개최 장소에서 지역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대전비엔날레는 행사의 정체성에 지역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투영한 대표적인 사례. 국내 과학기술 연구의 중심지인 대덕연구단지가 위치한 만큼 대전은 통상 과학의 도시로 알려져 있기에 자연스레 미술과 과학의 융복합을 추구한다. 그래서 우주 로봇 생명공학 등 과학과 관련된 주제에 집중하고, 특히 이번처럼 기획 단계에서부터 도시에 마련된 인적 네트워크, 물리적 인프라를 활용해 과학자와 연구소를 섭외, 비엔날레의 정체성을 극대화했다. 이렇듯 흥미로운 발상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극하며, 도시로 관광객을 유입시키는 효과적인 전략으로 작용한다.
또 격년으로, 다수의 작가를 초청하는 이 대규모 미술행사는 특정 예술장르를 활성화하는 방안이 된다. 장르에 특화한 비엔날레가 생기면 장르의 성격이나 양상, 경향성을 대중에게 알릴 수 있는 홍보수단이 되며, 무엇보다 해당 장르에 대한 수요가 정기적으로 많이 생겨남을 의미하기 때문.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생기고, 공급자가 많아질 때 하나의 씬(scene)을 이루고, 공고화하고, 나아가 다변화하게 되는 이후의 전개 양상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이때 장르가 생소하면 생소할수록 비엔날레 개최의 필요성과 개최했을 때 거둘 수 있는 홍보 효과는 더욱 커진다.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는 행사명에서부터 표명하듯 ‘자연미술’만 20여 년간 고집해온 덕분에,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까지도 이 예술장르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성과를 낳았다. 점점 참여작가와 출품작 수도 늘어나는 추세. 올해는 본전시와 특별전을 아울러 자연미술품과 영상 126점, 이외 소형 조각과 드로잉 등 300여 점이 출품했다. 불어난 몸집만큼 예술계 내 ‘자연미술’이 차지하는 입지도 증가했음을 예상할 수 있다.
비엔날레 유치로 지역 발전과 장르 활성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경우도 있다. 창원조각비엔날레와 전남국제수묵미술비엔날레가 그 대표적 사례. 창원과 전남 출신의 작가를 내세워, 이들이 실천했던 예술 장르로 행사를 특화하면서 비엔날레 개최의 당위성을 손쉽게 해결했다. 올해를 시발점으로 삼은 전남의 행사는 공개적으로 ‘수묵화의 세계화’를 표방했다. 전남은 공재 윤두서와 소치 허련의 고향이며 남도 수묵화의 명맥을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으므로, 지방 소도시 목포와 심지어 섬인 진도에서 수묵비엔날레를 여는 것이 의아스럽지는 않다. 그러나 이 행사가 아니라면 쉽게 발걸음을 옮길 만한 목적지는 아니다. 그렇기에 주최 측은 접근성 향상을 위해 전시장 간, 또 동시에 열리는 광주비엔날레를 잇는 셔틀버스를 마련한 것. 이처럼 비엔날레를 계기로 사람들이 도시를 찾기를 바라는 것은 사실상 비엔날레는 사람을 끌어모은다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5회를 맞이하는 창원의 경우에도 이러한 파급효과 덕을 본 듯, 올해 비엔날레 주제로 ‘불각의 균형’을 택했다. 창원 출신 조각가 김종영과 문신에게 바치는 오마주다. 또 본전시 참여작가 중 일정 비율을 이 도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에게 할애했다는 점은 주최 측이 비엔날레를 이용해 조각을, 그리고 창원을 홍보하고자 함을 또렷이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문화예술뿐 아니라 교육 의료 등 사회 인프라가 수도권 대도시에 집중해있는 한국의 현 상황에서, 비엔날레는 지방의 불균형적 발전을 타개할 수 있는 자구책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또 예술의 맥락에서만 따져 봐도, 비엔날레는 비주류 장르나 매체가 굳건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설사 이미 주류라 해도 주기적으로 마련되는 플랫폼에서 해당 장르에 대한 더 많은 담론이 생성될 수 있도록 돕는 효과적인 시스템이다. 비엔날레가 5회를 넘겨 10회, 15회를 맞이하는 시점에는 분명 이것이 열리는 장소 또는 지역, 그리고 이것이 다루는 예술 장르 또는 매체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올 터. 그렇게 되면 서울 광주 부산이 그러하듯이 체제 변화를 꾀하거나, 비엔날레의 ‘효능’보다 행사가 미술계에 미칠 파급력을 더 신중히 고려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원고 작성: 이현(리드, 서울, 광주, 부산), 한지희(금강, 대전, 전남, 창원)
편집, 감수: 김재석
디자인: 진민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