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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ch Feb 26. 2019

2018 비엔날레 베스트 오브 베스트

아트인컬처 2018년 10월호 'Special Feature'

전국 방방곡곡이 비엔날레의 열기로 뜨겁다. 온갖 주요 매체와 소셜미디어에서 불만 가득한 리뷰가 쏟아지고 있다. 어느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할지 고민하는 독자를 위해 Art의 편집부가 직접 나섰다. 서울 대전 공주 광주 전남 창원 부산 7개 도시에서 열리는 비엔날레 순회를 마치고 수백 점의 출품작 중 옥석을 가렸다. 9월호 특집의 ‘비엔날레 디렉토리’가 각 행사의 관전 포인트를 짚어주는 자리였다면, 이번 특집은 비엔날레의 하이라이트인 개별 작품을 추천하는 ‘명예의 전당’과 같다. 편집부의 논의를 거쳐 주제의식의 참신성, 매체와 구현 방식의 독창성, 미학적 완성도 그리고 해당 비엔날레의 주제와의 연계성 등을 선정기준으로 삼고, 총 28명(팀)의 작품을 추렸다. 작가의 배경, 출품작의 내용과 주제 등 객관적 정보와 함께 어떤 이유에서 해당 작품을 눈여겨봐야 하는지 그 이유를 밝힌다. 대부분 한국 미술계에 생소한 작가들이며, 이들의 초기작부터 최근 2년 사이 발표한 신작, 비엔날레를 위해 특별 제작한 장소특정적 작품 등을 광범위하게 포함했다. 2018 비엔날레 ‘베스트 오브 베스트’를 만나보자. / 편집부





Minwhee Lee b. 1989 한국 / 파리 & Yun Choi b. 1989 한국 / 서울 / 부산비엔날레

한국사회를 향한 찌릿한 블랙코미디 매 주말, 정치적 발언대로 기능하는 광화문 광장에는 좌우로 나뉜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쏟아져 나온다. 실체도 없는 이념은 동시대 한 나라, 한 사회에 사는 이들도 물리적, 심리적으로 갈라놓았다. 영상작가 최윤과 사운드 아티스트 이민휘의 협업 프로젝트 <오염된 혀>는 냉전 이후 바이러스처럼 한국사회 곳곳에 스며든 이데올로기의 흔적을 6편의 ‘뮤직비디오’에 녹여냈다. 최윤은 한국사회에 만연한 통속적 이미지와 이것이 내포하는 상투성을 문제 삼고, 대중문화 속에서 이러한 기능을 하는 이미지를 수집해 변종하는 방식으로 작업하고 있다. 이번 작업에서도 역시 아파트 단지, 내레이터 모델처럼 비닐 옷을 입은 여성, 동네 뒷산, 해 뜨는 바다 등 익숙한 이미지들이 엉뚱하게 조합을 이뤄 키치적이고 언캐니한 화면을 연출한다. 이민휘가 작업한, 트로트나 만화영화 주제곡 혹은 민중가요처럼 들리는 흥겨운 노래와 이따금씩 끼어드는 괴성은 관람객의 발을 작은 모니터 앞에 오래 묶어둔다. ‘척결하라, 처단하라, 이 땅으로 넘어오지 마시오, 나라야~’ 등의 가사는 한반도가 처한 현실, 그리고 한국사회에 깊이 파고든 반공, 국수주의, 애국주의 등의 ‘이념’을 즉각 상기시키며 조소와 실소를 자아낸다. 경계와 분열이 어떤 심리상태를 구축하는지 밝히는 데 주안점을 둔 올해 부산비엔날레의 꼭짓점과 같은 작품이다. / 한지희, 이하 H



Shilpa Gupta b. 1976 인도 / 뭄바이 / 광주비엔날레

경계라는 유산 실파 굽타는 검열의 문제, 종교적 차이, 계급과 성적 정체성을 이슈로 작업해 왔다. 그는 광주비엔날레에서 ‘이름’을 주된 소재로 국가적, 심리적 경계를 살피는 작품을 선보였다. 정연심, 이완쿤 기획의 <지진: 충돌하는 경계들> 섹션 출품작인 <변경된 유산(100가지 이야기)>는 좁은 복도 양쪽 벽에 설치된 사진으로 관람객의 발길을 모은다. 그 복도를 따라 들어가면 나오는 작은 방 전면도 비슷한 느낌의 여러 사진으로 구성됐는데, 독특한 점은 사진들의 중앙이 가로축을 중심으로 분할, 재배치되어 각각의 피사체를 명확히 파악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 작업은 정치적 박해나 사회적 편견에 저항하기 위해 이름을 바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작가는 이름에 담긴 과거를 지우고 여러 사회 문제를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의 정체성과 미래를 바꾸려는 이들의 사연을 수집하고, 그 변화의 결과를 프레임이 절반 잘린 형태로 제시했다. 이름이라는 일종의 유산에 얽힌 정치적 의미를 재고하고, 개명 과정에 수반되는 법적, 감정적 문제를 탐구한다. 또한 그는 현재 진행 중인 신작 <손으로 그린 우리나라 100개 지도>도 선보였다. 다양한 연령, 인종, 정치 성향을 가진 참여자 100명이 협업해 가상의 지도를 제작하는 프로젝트다. 한국인 100명이 각자 다르게 그린 100개의 한국 지도는, 결국 경계란 상상 속에서 가장 강력하게 작동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 이현, 이하 Y




Daum Kim b. 1983 한국 / 서울 / 광주비엔날레

공간을 깨우는 목소리 레드-썬, 레드-블루, 레드-파더, 블루-선, 블루-스트레인저, 블루-가십….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개방공간인 문화광장을 지나는 관람객은 최면술사의 안내 같은 음성 변조된 목소리를 듣게 된다. 바닥이 울릴 정도로 큰 사운드는 그곳에 머무는 누군가에게 어떤 위험이 닥칠 것만 같은 불안감을 전달한다. 그것은 평화적 선동일까? 폭력적 명령일까? 하지만 대부분은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그곳을 평화롭게 지난다. 벽면에 설치된 스크린에는 거대한 광장을 감싸는 사운드와 싱크가 맞춰진 텍스트, 불꽃을 들고 숲 속 어딘가를 헤매는 누군가의 모습이 오버랩되며 흘러간다. 김다움의 <세 개의 태양>은 김성우 큐레이터가 기획한 <한시적 추동> 섹션의 출품작으로, 전시의 콘셉트를 알리는 출발점이다. 이 전시는 “국가나 영토와 같이 이미 만들어진 경계가 아닌, 이미 지워진 경계의 위나 아래에서 비물리적, 비가시적인 형태로 개인과 개인에 의해 구축되는 경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전시도록) 일상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인터페이스에 주목해온 작가답게, 이번에는 광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소재로 삼았다. 그는 여기에 ‘맹지’라는 개념을 접목한다. 맹지는 사전적으로 ‘도로와 맞닿은 부분이 전혀 없는 토지’를 의미하며, 이동 통로가 없는 접근 불가능한 땅을 일컫는다. 작가에게 이곳은 “개인과 집단, 지역과 전체 등 다양한 심리적 괴리가 충돌하는 경계의 장소”이다. / 김재석, 이하 K



Bruno Serralongue b. 1968 프랑스 / 파리 / 부산비엔날레

서정적 포토저널리즘 브뤼노 세라롱그가 1990년대 중반부터 발표한 일련의 작업은 다큐멘터리 사진이 지닌 사회비판적 발언의 힘을 입증한다. 파리에 거주하며 활동하는 그는 포토저널리즘과 예술사진의 경계를 오가는 이미지를 선보였다. 그의 카메라는 세계 곳곳의 문제적 현장과 사람을 포착하기 바쁘다. 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노틀담 디 론디의 농부들, 프랑스의 자동차 하청업체와 용광로 폐쇄에 항의하는 근로자 점거 농성, 독립 이후의 코소보 풍경, 티베트 망명 대표부의 14차 총회, 뉴델리에서 열린 중국 베이징올림픽 성화 봉송 반대 집회, 멕시코의 자파티스타 민족해방군 등. 삶을 위한 투쟁과 평화로운 일상이 공존하는 역설의 현장이지만, 그의 사진에는 줄곧 서정의 분위기가 감돈다. 부산비엔날레에는 사진 연작 <칼레>(2006~)와 <독립 축제>(2011)을 출품했다. <독립 축제>는 남수단이 수단 공화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뒤 있었던 축제를 기록한 17장의 프린트로 구성된다. 대표작인 <칼레>는 프랑스의 악명 높은 난민 정착지 칼레를 장기간에 걸쳐 촬영한 작업. 1999년 9월부터 적십자에 의해 운영된 이곳은 유럽 난민 문제의 중심지로, 아프간, 코소보, 이라크, 이란 등지에서 온 이주민을 수용하고 있다. 작가는 여러 장의 사진을 행과 열을 맞춰 퍼즐처럼 전시함으로써, 관객을 참혹한 현장의 목격자로 초대하고 사회적 정치적 이슈를 천천히 곱씹도록 유도한다. / K




Zach Blas b. 1981 미국 / 런던 / 광주비엔날레

반-인터넷의 퀴어 펑크 자크 블라스는 영상과 설치를 주 매체로 기술적 조사와 이론적 연구, 퀴어, 페미니즘의 미래, 공상과학, 개념주의, 퍼포먼스와 관련된 담론을 지속해서 작업에 호출한다. 최근에는 감시와 보안, 통제를 위한 기계장치와 이를 조장하는 권력구조로 소재를 심화했다. 디스토피아적 포스트 인터넷 사회를 상상한 <주빌리 2033>은 이러한 관심사의 집약체.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최우수단편상 후보에도 올랐던 이 영상을 포함한 블라스의 대형 설치작업이 광주에 상륙했다. 디지털 시대가 야기한 격차와 불평등, 소외현상을 탐구하고 그 타개책을 찾는 <종말들>(크리스틴 Y. 김 & 리타 곤잘레스 기획) 섹션에 출품됐다. 컴컴한 공간에 들어서면 형광 연두색으로 현란하게 빛나는 바닥의 패턴이 시선을 집중시킨다. 중심이 되는 영상은 영국의 민족주의에 반문하는 데릭 저먼의 퀴어 펑크 영화 <주빌리>(1978)를 오마주한 것. 1955년 가상의 작가 아인 란드(수잔 삭스)와 동료들이 인공지능의 안내를 받아 인터넷 종말 이후 자멸해버린 2033년의 실리콘 밸리를 탐험하고, 콘트라섹슈얼 반-인터넷 예언자 누트로픽스(Cassils)를 만나 갈등을 겪는 여정을 그린다. 공상과학과 퀴어,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오늘날 감시와 통제, 자본주의의 도구로 전락한 인터넷에 맞서는 방식을 모색하며, 이를 기이하면서도 세련된 화면, 박진감 넘치는 플롯으로 풀어냈다. / H



Kader Attia b. 1970 프랑스 / 베를린, 알제 / 광주비엔날레

역사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일 카데르 아티아는 상처와 회복, 식민주의의 잔재, 탈식민화, 역사의 모순성을 주제로 조각 사진 동영상 설치작품 등을 발표해왔다. 올해 광주비엔날레에서 광주에 깃든 깊은 상처와 회복의 가능성을 이야기해야 한다면, 그의 설치작품 <영원한 지금>이 적절한 사례일 것이다. 그는 마이크 넬슨,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아드리안 비샤르 로하스와 함께 ‘GB 커미션’에 참여해 <영원한 지금>이라는 장소특정적 설치작을 선보였다. 작가는 국군광주병원의 천장이 무너질 것 같은 병실에 철심을 박은 고목을 세웠다. 30여 년 동안 폐허로 남은 병원의 모습은 대학살의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작가는 고문과 수감의 장소가 버려지는 상황에 문제를 제기하고 이곳에 개입함으로써 개인 혹은 집단의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그리티야 가이웡이 기획한 <경계라는 환영을 마주하며> 섹션에도 <이동하는 경계들>이라는 작품을 출품했다. 이 작업은 무속인들이 넘나드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묘사한다. 어두컴컴한 전시공간의 조명은 잘린 다리가 놓인 낡은 의자를 비춘다. 곳곳에 위치한 스크린에서는 국가의 폭력, 트라우마와 그 치유에 대해 말하는 인터뷰이들의 영상이 흘러나온다. 섣부른 희망의 메시지 대신 “그 트라우마가 치유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와 같이 과거에도 현재에도 절망의 지점을 여전히 보여주는 말들이 오간다. 상처의 회복을 힘주어 말하는 작가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직면과 인정이다. / 김민형, 이하 M




Tom Nicholson b. 1973 호주 / 멜버른 / 광주비엔날레

디오라마로 재현한 피난의 기억 예술가이자 연구자인 톰 니콜슨은 드로잉 조각 퍼포먼스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이용해 집단의 기억과 정치사, 프로파간다, 이주에 대한 담론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특히 출신지인 호주의 현 정치상황과 식민역사를 적극적으로 작품에 가져오며, 이러한 역사가 국가 간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를 탐구한다. 두 점의 출품작은 인도네시아에 있는 난민의 목소리를 통해 독립 이후 인도네시아의 국정 운영 상황과 호주 난민 정책을 비판하고, 나아가 인도주의와 민족주의에 대한 회의를 표출한다. 작가는 욕야카르타의 독립 연구자 그레이스 삼보와 협업해, 보고르에 정착한 하자라족 난민을 만나 그곳에서의 삶과 경험을 인터뷰하고 그중 18개 장면을 디오라마 <나는 인도네시아에서 태어났다>로 재현했다. 각기 다른 비율로 제작된 난민들의 새하얀 모형이 너른 탁자 위에 퍼져있는데, 대부분 공포와 절망, 슬픔, 비탄이 섞인 모습이다. 디오라마는 1970년대 에디 수나르소가 제작한 인도네시아의 국가기념비(Monas)에서 시각언어를 차용했다. 함께 전시된 영상 <헌신의 상을 향하여, 그리고 홍수>는 수나르소와의 인터뷰로, 당시 정치상황이 디오라마 제작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핀다. 직설적 어법으로 난민의 삶을 드러내며 이것이 두 국가의 문제만이 아니라 동시대 인류가 모두 함께 생각하고 대처해야 할 문제임을 상기시킨다. / H





Kijong Zin b. 1981 한국 / 서울 / 창원조각비엔날레

극사실주의 조각의 힘 총감독 윤범모는 창원비엔날레의 주제 <불각의 균형>에 관해 “‘불각(不刻), Non-Sculpting’은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상태에의 추구이며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는 상태를 추구하는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이러한 주제를 바탕으로 한 조형성과 더불어 동시대의 사회적 현실을 담은 조각의 영역을 확장하는 ‘입체 예술’의 다양한 양상을 점검한다”(전시도록)고 기획의도를 밝힌다. 진기종의 <자유의 전사>는 ‘불각의 균형’이라는 주제에 가장 적합한 작품 중 하나로 꼽을 만하다. 2015년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개인전 <무신론 보고서>에 출품된 이 작품은 작가의 노동 집약적인 수작업의 성취를 훌륭하게 보여 준다. 가톨릭 신자이자 최첨단 장비로 무장한 미국 최정예 특수부대인 미 해군 네이비실팀 6 대원, 냉전시대의 마스코트인 AK 47 소총과 ‘알라의 요술봉’이라는 RPG-7, 이슬람 염주를 들고 있는 지하드 전사인 알카에다 부대원이 거울에 비춘 듯 마주한 상태로 기도한다. 피부나 머리카락 등의 세밀한 묘사는 물론 무기와 장비, 군복 등을 실물을 사용함으로써 사실감을 극대화했다. 실물 크기로 재현한 두 군인을 검은색 좌대에 올려, 작품의 기념비적 효과가 더욱 강조된다. 관객은 무릎을 꿇고 두 눈을 감은 채 각자의 신에게 기도하는 그들의 얼굴을 우상처럼 올려다보며, 종교가 인간에게 선사한 고통과 희망의 이야기를 두서없이 떠올린다. 그렇게 작가는 관객을 향해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하는 전쟁터에서, 과연 신은 누구의 기도를 들어줄 것인가’라는 잔인한 질문을 던진다. / K



Hyun-Chul Kim b. 1958 한국 / 서울 / 전남수묵비엔날레

남도 종가의 향기 올해부터 전국 비엔날레 대열에 합류한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는 목포와 진도에 위치한 총 6개의 전시관에서 수묵의 어제와 오늘을 두루 살폈다.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갤러리에서 열린 <전통과 가통이 계승되는 전남종가>전은 ‘종가의 향기’를 주제로 전남의 대표 종갓집 12곳을 조명하는 특별전. 총 12명의 작가가 참여해 전주이씨 밀양박씨 선산류씨 제주양씨 등 남도 종가를 직접 방문하고 리서치를 통해 제작한 수묵화 120여 점을 선보였다. 그중 진경산수를 오랫동안 연구하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온 금릉 김현철은 해남윤씨 어초은파 종가 녹우당을 주제로 종손의 초상과 고택의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해남윤씨는 고산 윤선도와 공재 윤두서, 윤덕희, 윤용 등 한국 문화사에 큰 업적을 남긴 인물을 다수 배출한 집안이다. 김 화백이 2016년 공재가 남긴 자화상 초본을 근거로 정본을 상상하며 제작한 것이 인연이 됐다. 비단에 전통 채색 기법으로 그린 <녹우당 종손 윤형식 선생 초상>에는 녹우당을 지키며 선조의 업적을 계승하는 현 종손 윤형식의 고아한 자태가 사실 그대로 재현됐으나, 그 눈빛에는 공재의 엄격한 기운이 서려 있는 듯하다. “긴 세월을 함께 한 고택은 그 안에서 함께 삶을 꾸려갔을 사람들이 있었기에 더욱 아름다울 수 있다. (…) 현 종손의 모습에서 300년 전의 11대 선조인 윤두서의 모습을 언뜻 볼 수 있어서 초상 제작 중 큰 전율을 느끼기도 했다.”(작가노트) 전남의 문화자산인 종가를 오늘의 시선으로 해석한 그림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면서 전통을 재발견하고, 전남 수묵의 유구한 역사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 Y




Francis Alÿs b. 1959 벨기에 / 멕시코시티 / 광주비엔날레

정치적인 동시에 시적인 행위들 올해 광주비엔날레의 전시장에는 ‘상상된 경계들’이라는 주제를 드러낸 ‘경계의 선’이 곳곳에서 교차하고 있다. 정연심과 이완 쿤이 기획한 <지진: 충돌하는 경계들> 섹션에 출품된 프란시스 알리스의 작품은 ‘경계’라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은유한다. 그의 작품에는 경계가 지닌 삼엄함과 그것을 허무는 과정이 동시에 펼쳐지며, 그 시작과 끝을 아우른다. 캔버스에 지도를 그린 단순한 회화 <무제>를 살펴보자. 선명한 경계선과 함께 ‘반영(REJECT)’ ‘대상(OBJECT)’ ‘주체(SUBJECT) 등의 단어를 국가의 이름처럼 명시했다. 누가 ‘SUBJECT’의 입장에 있는지, 누가 ‘OBJECT’로 놓이는지, 누가 ‘REJECT’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세 국가는 명확히 분리되어 있다. 작가는 경계선보다 그 기준을 말하는 단어에 관객이 집중하도록 유도한다. 알리스는 비디오 작품 <워터컬러>(2010)에서는 흑해에 면한 트라브존과 홍해에 면하고 있는 아카바의 물을 양동이로 부어 섞으며 경계를 허무는 상징적인 행위를 펼친다. “때로는 시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 되고, 또 때로는 정치적인 것이 시적인 것이 되기도 한다”라는 그의 유명한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아니의 침묵>(2015)에서는 피리소리와 새소리로 폐허가 된 도시 ‘아니’의 침묵이 깨지는 순간을 포착한다. 경계에 관한 작가의 시적 질문은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개인전 <지브롤터 항해일지>와도 공명한다. / M



Kiluanji Kia Henda b. 1979 앙골라 / 루안다, 리스본 / 부산비엔날레

기념비, ‘분리’를 시각화하다 킬루안지 키아 헨다의 사진 및 설치작품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두 가지 문제와 연결된다. 하나는 기념비의 역할이 재고되는 상황이고, 다른 하나는 이민자들이 목숨을 걸고 조국을 도망쳐 나오고 있는 현실이다. 특정 권력 계층이 세운 ‘기념비’는 그것이 문화의 형태를 띤다는 점에서 좀 더 교묘한 방식으로 정치적이다. 기념적인 존재와 그렇지 못한 존재의 분리는 기념비라는 상징적 집합체를 통해 시각화된다. <새로운 인간>은 그의 고향인 루안다에서 탈식민지화를 목적으로 파괴된 거리의 조각상을 촬영한 사진작품 연작. 동상은 사라지고 남겨진 좌대에 올라선 과거 식민지의 국민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상징적 권력을 회복하려는 듯 당당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작가의 다른 출품작 <비너스의 섬>은 단색조의 검은 바닥 위에 콘크리트 블록으로 만든 건축물의 토대와 여러 좌대를 배치한 신작 설치작품이다. 이 구조물 위에는 유럽의 고전 조각상을 본 따 만든 저렴한 미니어처들이 현란한 색깔의 콘돔을 뒤집어쓴 채 놓여 있는데, 조각의 울퉁불퉁한 표면에 따라 콘돔이 늘어나면서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것 같은 모습을 연출한다. 그 옆으로는 이민자들을 실어 나르는 배를 촬영한 사진을 함께 전시했는데, 사진 속의 배는 검은색 사각형으로 모두 가려져 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유럽이 자신의 문화사를 어떻게 보호하는지, 그와 동시에 유럽의 과거 식민 정책으로 고통받아 온 피식민인들의 현실을 얼마나 외면하고 있는지 고발한다. / Y




Wonhwa Yoon b. 1981 한국 / 서울 & Jeewon Yoon b. 1985 한국 / 서울 /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미술인에게 ‘좋은 삶’이란? 미술가, 기획자, 비평가, 연구자. 물론 어떻게 정의를 내리는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흔히 말하는 ‘좋은 삶’을 영위하기란 어려운 직업이다. 미술계에 발을 내디딘 사람들 중 안정감을 느끼지 못하고 발밑이 부드럽다고 생각한 적 없는 사람이 누가 있으랴. 오랫동안 시각문화 전반을 살펴온 연구자 윤원화와 작가이자 기획자, 번역가로도 광범위하게 활동하는 윤지원이 지난 10여 년간 한국 미술계 내에서 관찰하고 경험해온 ‘부드러운 지점들’을 각각 텍스트, 아카이브 및 토크 프로그램과 영상이라는 언어로 재구성해 보여준다. 윤원화는 연구를 진행하며 만난 미술계 종사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미술가 사회의 성립과 유지를 가능하게 하는 6가지 조건(정서적 유대, 공통의 목적, 우연한 마주침에 개방, 지속적 소속, 역할의 규정, 작업의 수단)을 추출하고 다색의 다이어그램 <미술가 사회>로 표현해 조건들 사이에 생기는 다양한 층위를 가시화했다. 한편 윤지원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대륙에 기독교 신앙을 정착시킨 이탈리아 출신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의 흔적을 추적하는 영상 여행기 <무제(세계)>를 통해 ‘부드러운 지점들’의 기원을 재상상한다. 작가는 스마트폰으로 드라마를 보거나 사진을 촬영하고, 박물관과 유적지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따라가며 동시대 이미지 환경을 차분히 탐색한다. / H



Dusan Barok & Monoskop 2004년 설립 / 암스테르담 /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카탈로그 다시 보기-만들기 두샨 바록은 모노스콥의 창립 편집자이다. 모노스콥(www.monoskop.org)은 아방가르드 예술과 미디어, 인문학 연구를 위한 온라인 플랫폼. 이들의 출품작 <전시 도서관>은 미술을 생산하고 소비하고 기록하는 전통적 매체인 카탈로그의 가능성을 동시대의 맥락에 맞게 탐색하는 프로젝트이다. 모노스콥은 이번 작품을 위해 예술가와 디자이너, 큐레이터와 시인, 연구자, 출판 편집자 등을 다수 초청했다. 4명의 큐레이터와 여러 협업자가 함께 ‘좋은 삶’을 위한 어젠다를 조직한다는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의 콘셉트와 잘 맞아떨어지는 기획이다. 모노스콥은 그들에게 “아직 실현되지 않은, 상상적이며, 잠재적이거나 혹은 불가능한 전시의 카탈로그”를 보내 달라고 부탁한다. 카탈로그의 형식에는 제한을 두지 않았지만, 타이틀과 사물의 이름, 저자와 날짜라는 최소한의 조건을 두었다. 그 결과가 또 다른 카탈로그로만 귀결됐다면, 무척 지루했을 것이다. <전시 도서관>은 오히려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함께 전시할 수 있고, 어떻게 그것을 재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폭넓게 끌어안는다. 참여자들의 카탈로그에는 미술을 어떻게 소장하고 감상하며 함께 나눌 것인가라는 본질적 고민이 포개졌다. 사각의 철제 프레임과 나무 판으로 구축한 구조물은 참여자들의 결과물을 진열하는 전시장이자, 도서관이며, 관람객의 모임과 토론을 위한 플랫폼이다. / K




mixrice 2006년 결성 / 서울 /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공동체의 별, 하찮지만 빛나는 믹스라이스는 오랫동안 이주 노동자들과의 협업을 통해 현대사회의 이주, 노동, 인권 문제를 작업으로 발언해 왔다. 올해 서울미디어시티 비엔날레에는 연대의 공동체를 주제로 한 영상 신작 〈오백 명의 남자들과 게임 그리고 경품: 면봉 한 봉지, 냅킨 한 봉지, 볼펜 한 자루, 설탕 1kg짜리 한 봉지, 액자, 소금 1kg 한 봉지, 감자 한 봉지>를 선보였다. 작품은 1999년 마석 가구단지에서 500여 명의 방글라데시 이주 노동자가 단돈 10만 원으로 준비한 첫 번째 축제 <1분>을 소재로 한다. 이들은 1분 동안 타잔 목소리 발성하기, 풍선 많이 불고 터트리기, 종이로 배 만들기 등 단순한 게임을 진행하고 우승자에게 경품을 수여했다. 하지만 그 경품은 작품명에 나열된 면봉, 냅킨, 볼펜처럼 우리에게 매우 일상적이고 존재감이 미미한 상품들이다. 믹스라이스는 모든 것이 과잉, 과열된 세계에서 하찮게 인식되는 것들이 어떻게 공동체에게 별처럼 반짝이는 사물이 되는지, 우리에게 ‘좋은 삶’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좋은 삶’이란 특정 계층의 소유물이 아니라 인류가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가치였고, 그만큼 공동체에 대한 문제도 중요한 논의의 대상이라는 점을 상기하면서 말이다. 별다른 채색도 없이 드로잉만으로 재현된 축제 현장은 여타의 스펙터클한 영상작품과 대비를 이루며 주제의식을 더욱 분명히 드러낸다. / Y





Suzanne Anker b. 1946 미국 / 뉴욕 / 대전비엔날레

‘바이오’가 ‘아트’를 만났을 때 “바이오 아트의 선구자” 수잔 앵커는 지난 30여 년간 예술과 생명과학을 융합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왔다. 식물 종자나 박테리아, 현미경, 의료용 기구 등 생명공학 분야의 연구대상이나 이를 위한 장비를 작업의 재료로 이용하며, 대규모 사진이나 조각 및 설치를 주 매체로 다룬다. 주로 유전학, 기후변화, 종의 멸종 또는 독성물질을 소재로 삼는데, 이를 통해 오늘날 자연이 주어진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모하는지를 살피고, 생명의 아름다움을 깨닫기를 촉구한다. 배양접시에 각종 유기물을 담고 사진으로 촬영한 연작 <배양접시 속 바니타스>(2013~18), 이 연작을 3D 프린팅으로 재구현한 <원격 감지>(2013~18) 그리고 큐브 안에 LED조명을 설치하고 식물을 기르는 <아스트로컬처>(2015). 비엔날레 출품작 3점은 모두 ‘생명공학을 재료로 예술작품을 만들었을 때 과연 얼마나 심미적 가치를 담보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걷어낸다. 그만큼 충분히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벽면을 가득 채운 사진연작의 규모와 색감이 단번에 시선을 끌 정도로 크고 화려하다. 놀라운 점은 화면을 구성하는 요소가 모두 곤충, 꽃, 버섯 등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것. 전시실 한쪽에 진홍빛으로 발광하는 메탈큐브 역시 오래 시선을 붙들며 큐브 안 식물의 생김새를 관찰하도록 유도한다. / H



Fred Martin b. 1969 프랑스 / 릴 /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숲속에서 나무의 정령을 만나다 프레드 마틴은 캐나다와 알래스카, 인도를 포함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장소특정적 설치작업을 행해왔다. 주로 나무나 이끼, 진흙, 소금 등 자연에서 구한 또는 분해 시 자연으로 스며들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해 3차원의 대규모 조각을 만든다. 자연과 시간이 자신의 창작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항시 고민해온 그에게, 자연과 작품의 공명을 추구하는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는 매우 좋은 전시장일 것이다. 이번이 두 번째(2003, 2018) 참가로, 이번에는 대나무 편을 엮어 거대한 인간 두상을 만들었다. <나무 정령>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산을 뚫고 솟아오르는 모양의 두상이 공주 연미산쌍신공원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관람객과 다른 출품작을 굽어보는 드라마틱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작가는 돔처럼 모난 곳 없이 둥글게 엮은 모양이 “주변의 자연환경과 내적 본성이자 가장 사적인 공간인 인간의 마음과 가장 잘 어울리는 형태”라 표현한다. 자연의 기운을 내뿜는 듯 크게 벌어진 입을 통해 구조물 안으로 들어가면 마치 이 거인의 머릿속으로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든다. 둥글게 사방을 감싸 안은 형태가 안정감을 제공하며 명상을 쉬이 유도한다는 점에서, ‘자연-사적공간-셸터’라는 비엔날레 주제를 압축적으로 제시하는 작품이다. / H




Yto Barrada b. 1971 프랑스 / 뉴욕 / 광주비엔날레

자연재해의 비극과 유토피아를 향한 열망 이토 바라다의 <아가디르>는 클라라 킴이 기획한 <상상된 국가들/모던 유토피아> 섹션에 등장한다. 그 규모와 작품을 구성하는 다채로운 방식은 관람객을 압도한다. 모로코에서 성장한 작가는 1960년 2월 25일 모로코 서부의 모더니즘 도시 아가디르에서 발생한 지진을 통해 ‘유토피아’의 본질을 성찰한다. 이 지진으로 하루 만에 도시의 1/3이 초토화되었다. 당시는 “냉전의 균열이 퍼지고, 폭력은 모더니티의 확고한 방향성 중 하나라는 깨달음이 퍼지던 시기”였다.(작가노트) 이토 바라다는 처참하게 무너진 한 도시를 어떻게 재건하고 재탄생시킬 것인가의 문제가 곧 정체성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 작품을 통해 자연재해의 비극과 유토피아의 희망이 교차하는 도시의 모순적 초상이 구현된다. 사건의 현장을 떠올리는 생존자의 인터뷰 영상에서 그들은 대화보다 그날의 굉음을 재현한다. 전통 모로코 방식으로 나무를 엮어 만든 스크린 앞의 의자들은 조각적 개입을 통해 좌식의 유형을 구현한 것. 커다란 곡선의 방을 나오면 작가의 콜라주 작업이 관람객을 맞는다. 수천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보도하는 1960년 3월 4일의 신문 기사와 이미지를 재조합했다. 한편 페이스 서울에서 열린 한국 첫 개인전에서도 도시의 재건과 유토피아라는 주제가 이어진다. 빈 곳, 용도가 없는 근대식 건물을 다룬 사진, 텍스타일, 설치작품 등을 선보였다. / M





seendosi 2015년 설립 / 서울 /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비엔날레 속 오아시스 이병재(b. 1982)와 이윤호(b. 1983)가 의기투합해 2015년 을지로에 만든 ‘신도시’는 이들의 팀명이자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바를 중심으로 공연, 상영회, 파티 등 다양한 이벤트가 열린다. 신도시에서 이뤄지는 활동 이외에도 전시와 기획, 디자인 등도 진행하고 있다. 특히 2016년부터 자체 콘텐츠를 생산하는 SDS 프로덕션을 설립해 음악가, 디자이너, 미술가, 만화가 등과 협업하며 음반, 출판물, 영상물을 기획, 제작 중이다. 서울시립미술관 3층의 크리스탈갤러리에 신도시를 위한 공간이 마련됐다. 입구의 손금 기계에 운명을 맡기고 결과를 받은 뒤, 전시장으로 들어서면 형광색의 빛과 이미지가 산란한다. 눕거나 앞뒤로 앉으며 휴식을 취하는 체험형 휴식 기구 3대가 관람객을 맞는다. 이곳은 “비엔날레를 보느라 지친 관객을 위한 쉼터이자, 게으름이나 휴식을 빙자한 일탈의 시간을 갖도록 하는 성인을 위한 요람”이다.(전시 가이드북) 벽화, 음악, 원형 조명 기구의 텍스트 등은 모두 협업의 결과물. 신도시는 비엔날레에서 가장 신도시다운 분위기로 3년의 활동을 집약한 귀여운 작업을 선보였다. “그 가난을 직접 보고 듣는 것보다야 / 비참해서 가슴이 미어지긴 하지만 한 번 감내하고 나면 그만이니까 / 칠하고 모으고 붙이고 섞고 / 그래야 우리가 감상에 젖지 / 어쩜 그렇게 단순한 재료들이 이렇게 아름다워질 수 있는지…” 의자에 앉아 안마를 받으며 이런 문장을 읽으면, ‘좋은 삶’을 찾아 ‘신도시’의 계단을 오르던 청춘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 K



Henrike Naumann b. 1984 독일 / 베를린 / 부산비엔날레

실내디자인으로 되돌아본 통일 이후 헨리케 나우만은 독일의 통일 전후를 몸소 경험하며 성장한 세대에 속한다. 그들은 엑스터시 같은 약물과 테크노에 빠지거나, 신나치주의자나 급진적인 이슬람주의 신봉자가 되는 극도로 양분화된 세계로 돌아섰다. 그토록 갈망하던 통일이 이뤄졌지만, 그 여파로 물리적 분단보다 더 암울한 사회 내부의 분열이 가속화됐다. 작가가 자란 동독 지역의 츠비카우 마을은 2000년대 이민자를 혐오하며 연쇄살인을 저지른 신나치주의 테러단체 NSU의 은신처였다. 극우파 이데올로기가 젊은 세대의 지배적 문화로 번져가는 모습을 지켜본 나우만은 ‘분단’의 원인을 “포스트 현실주의 콜라주 스타일”로 적절히 시각화한다. 작가가 주목한 대상은 통일 이후 변화한 독일의 실내디자인.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독일에 남긴 유산을 동시대 역사 고고학적 태도로 호출하며, 전시장을 박물관, 콘셉트 스토어, 무역 박람회장처럼 연출한다. 설치와 영상, 사운드가 혼재하는 출품작 <2000>과 <독일 통일을 애도하는 제단>은 부산비엔날레 전시장을 일종의 ‘독일관’으로 변신시켰다. 촌스러워 보이는 낡은 가구와 카펫, 싸구려 인형, 키치적인 형태의 오브제 등은 통일 이후 동독인의 삶에 불어닥친 변화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사회주의 시대에 사용하던 낡은 가구가 모두 이케아 혹은 포스트 모던한 멤피스 디자인을 모방한 가구 브랜드로 대체된 것. 알쏭달쏭한 퀴즈를 풀듯 각 오브제의 역사적 맥락을 하나둘 맞추다 보면, 묘한 멜랑콜리의 정서가 남는다. / M




Shezad Dawood b. 1974 영국 / 런던 / 광주비엔날레

모더니즘의 혼성체 클라라 킴은 <상상된 국가/ 모던 유토피아> 섹션에 20세기 모더니즘 양식을 재성찰하는 작가 26명의 작업을 초대한다. 셰자드 다우드는 이 전시에 인도와 서구 모더니즘 건축의 접점에 주목한 <미래의 도시들>과 <아나키텍쳐>를 출품했다. 노란 벽과 검은 벽이 작은 미로처럼 교차하고, 벽면에는 빈티지 텍스타일 위에 작업한 추상회화와 형형색색의 네온을 설치했다. 그에게 빈티지 텍스타일은 16~19세기의 식민지 역사와 직물 무역의 이야기가 반영된 지정학적 매체이고, 단순한 네온 조각은 ‘영적인 표현의 수단’이 된다. 작가는 “회화, 네온 조각, 영상물 사이를 오가며 그것이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이미지이든 서로 다른 의미의 이미지이든 병렬되고 겹겹이 쌓이는 것”이라며 작품을 설명한다. 광주비엔날레 출품작은 1947년 인도의 독립 이후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찬디가르’를 소재로 한다. 그는 인도의 특징을 반영하지 못했다며 비판받은 찬디가르를 인도 전통의 탄트릭 문양을 사용해 재해석한다. 서구에 일방적으로 영향을 받은 결과물이 아니라, 인도에서 유럽으로 흘러 들어간 모더니즘의 혼성체로서 말이다. 바라캇 서울의 세계 순회전 <리바이어던: 흑점과 고래>에서도 해양 복지, 기후변화, 난민, 정신건강 등의 사회적 이슈를 신화적 상상력으로 재조합한 작가 특유의 방법론을 확인할 수 있다. / M



Melik Ohanian b. 1969 프랑스 / 파리, 뉴욕 / 부산비엔날레

환영받지 못하는 이민자 멜릭 오하니언의 가족은 20세기 초 발생한 아르메니아인 집단 학살 사건을 피해 파리로 피난을 했다. 작가는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트라우마와 고통의 감각을 작품에 직간접적으로 표현해왔다. 부산비엔날레에는 조각과 영상을 한 점씩 선보였다. <콘크리트 눈물방울 3451>(2006~12)은 눈물 모양으로 주조된 3,451개의 조각을 철사에 꿰어 천장의 구조물에 매단 작품. 제목의 숫자는 오하니언 가족의 고향이었던 아르메니아에서 현재 작가가 거주하는 파리까지의 실제 거리 3,451km를 뜻한다. 조명을 받은 조각이 전시장에 남기는 눈물 모양 그림자는 강제로 고향을 떠난 이주민의 슬픔을 환기시킨다. 영상 <국경지대-나는 먼 거리를 걸었네>는 미국의 소설가 루돌프 월리처의 소설 《플랫츠(Flats)》(1971)의 캐릭터를 소환한다. 어두컴컴한 뉴욕 브루클린의 옥상에서 촬영한 연극을 다른 각도에서 촬영해 4 채널로 전시장에 상영한다. 전시장에 들어선 관람객은 불청객이 된 기분이 든다. 희미하게 비추는 조명 사이로 보이는 인물들의 행색과 세트는 무척 초라하다. 그들은 퉁명스럽게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이민자의 삶을 이야기한다. “한밤중에 들려주는 스토리들은 항상 구원, 탈출, 그리고 안락한 방향으로 가공된다. 나는 그럴 수 없다. 나는 구원하는 제스처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라는 내레이션이 영상의 시작을 알린다. / M




Adrian Villar Rojas b. 1980 아르헨티나 / 로사리오 / 광주비엔날레

끝나지 않을 메타 픽션의 게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복합 1관의 정중앙에 아드리안 비샤르 로하스의 두 영상작품 <전쟁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과 <별들의 전쟁>이 스크린을 맞대고 동시 상영 중이다. 이 작품에는 작품이 탄생하는 장소의 맥락을 강조해온 그의 창작 태도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영상의 배경은 휴전선 부근의 DMZ 지역에 있는 작은 마을 양지리와 비엔날레가 열리는 광주. 2014년 작가는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양지리에 한 달 동안 거주한다. 마을 주민과 신뢰를 쌓은 그는 그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픽션이 가미된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 전쟁의 공포나 위험을 일상에 내재한 채 살아가는 양지리 주민의 삶을 카메라로 리드미컬하게 줌 아웃하며 담아낸 장면은 한국 관객에게도 낯선 시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특히 마을 주민이 바비큐 축제를 벌이는 모습을 서로 먹고 먹히는 곤충의 생태계와 교차 편집한 시퀀스는 감탄을 자아낸다. 양지리 주민의 집 곳곳에 등장하는 작가 특유의 초현실주의적 오브제를 화면에서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별들의 전쟁>은 이 작품에 참여한 이들에게 영화를 보여주고 공유하는 방식을 고민하며 만든 ‘GB 커미션’ 신작이다. 작가는 1935년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광주극장을 촬영지로 택했다. 고전 공포영화의 장면과 양지리 마을에서 작업한 영상을 교차 상영하며 “메타언어적 게임”을 시도한다. / K



Amar Kanwar b. 1964 인도 / 뉴델리 / 부산비엔날레

시적 다큐멘터리로 응시한 폭력의 얼굴 델리대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아마르 칸와르는 다큐멘터리 영화의 한계를 힘껏 밀어붙인 명상적인 작업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수많은 영화제에서 작품을 선보였고, 카셀 도쿠멘타에 4회 연속으로 참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다채널 영상-설치작품 제작에 주력 중이다. 그는 줄곧 ‘폭력’을 주제로 다뤘다. 힌두교와 회교도 사이의 종교 분쟁, 계급 및 성(性)과 관련된 인권문제 등 인도의 복잡한 역사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폭력 등을 아우른다. 그의 작품이 돋보이는 지점은 폭력을 미적으로 재현하거나 대상화하지 않고, 자국의 사건과 적당한 거리를 두며 폭력적 현실을 극복하려는 희망적 메시지를 담는 데 있다. 대부분 작품에서 영상과 오버랩되는 작가의 차분한 목소리는 다큐멘터리 작업에 시적 매력을 배가시킨다. 초기작인 에세이 필름 <시즌 아웃사이드>는 ‘와가-아타리’ 지역의 경계초소에서 일몰 때마다 거행되는 경비병 교대식을 소재로 삼는다. 이 지역은 1947년 분리 독립의 결과로 탄생한 인도와 파키스탄을 가로지르는 삼엄한 군사분계선이 있는 곳. 작가에 따르면 “갈등과 출동이라는 견지에서, 이곳에서는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선 하나를 두고 다른 색깔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물건을 주고받는 모습이나, 한껏 치장하고 과장된 몸짓으로 교대식을 하는 모습은 비엔날레의 주제인 ‘분리’ 혹은 분리로 인한 폭력성을 명징하게 시각화한다. / K




Li Guangping b. 1963 중국 / 칭하이 / 전남수묵비엔날레

전통 수묵에 변혁을 꾀하다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김상철 총감독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시대의 정신을 수용하면서 부단히 새로운 생명력을 수혈하며 오늘에 이르게 된 수묵은 그야말로 혁명적인 변화를 거듭하며 배태되고 점차 성숙한 것”이라고 주제의식을 밝힌다. 이는 수묵을 근간으로 예술을 발전시켜 온 동양뿐 아니라 수묵과 유사한 형식, 태도, 기법을 공유하는 서구 작가에게도 넓게 통용되는 말이다. 포항 노적봉예술공원미술관에서 열린 <수묵의 여러 표정들>전은 외국의 여러 사례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동시대 수묵이 해석되고 표현되는 양상을 살핀다. 그중 중국 작가 리광핑의 <한산>은 전통 수묵에 변혁을 꾀한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을 수 있다. 중앙미술학원에서 인물화를 연수하고 현재 칭하이사범학원 미술학원 원장을 역임하는 작가는 주로 수묵과 채색으로 동식물, 산수, 인물을 재현해 왔다. 작품명 ‘한산(寒山)’은 중국 당나라 승려를 지칭하는 것으로, 수묵의 발전이 극에 달한 시기가 당나라 때였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전통 수묵의 맥을 이어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 그러나 정방형 프레임과 요염한 자세로 관람객을 응시하는 여성의 그림은 중국의 수묵화보다는 일본 풍속화인 ‘우키요에’나 동시대 일러스트레이션을 연상하게 한다. 먹과 종이라는 전통 재료를 유지하면서도 시대, 국가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은 오늘 수묵화의 지형에 변화를 모색한다. / Y



Phil Collins b. 1970 영국 / 베를린, 쾰른 / 부산비엔날레

검붉은 스펙터클 매캐한 고무 냄새가 진동하는 어두운 방. 붉은 조명이 어둡게 깔린 가운데 정면에 큰 스크린, 타이어와 기름통, 파라솔이 쌓인 검은 모래 바닥과 물웅덩이가 눈에 들어온다. 마치 석유에 오염돼 버려진 해변에 와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찰나, 물의 파동을 비추던 스크린에서 금발에 푸른 눈의 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아니메가 시작되고, 고조된 전자음악과 나긋한 일본어 대사가 대비를 이룬다. 커튼을 걷고 전시실에 들어가자마자 깊은 인상을 각인시키는 이 작업은 필 콜린스의 <딜리트 비치>. 그는 터너상 후보로도 지목된 바 있으며, 사진, 영상, 설치작업을 주로 제작한다. 이 작품은 화석연료의 사용이 금지된 미래에 이를 무기로 자본주의에 맞서는 레지스탕스의 이야기를 그린다. 설치된 오브제와 짧은 영상 내용은 자원 난개발과 독점, 자본주의적 여가문화, 환경오염 등의 사회문제를 연상시킨다. TV 토크쇼, 아니메, 다큐멘터리 등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매체로 병든 사회를 비판하는 작가 특유의 조형어법이 효과적으로 기능한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그는 일본의 유명 아니메 제작사 스튜디오 4℃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싱어송라이터이자 영화음악 작곡가로 확고한 입지를 굳힌 미카 레비와 협업했다. 흠잡을 데 없는 화면과 사운드만으로도 눈과 귀가 즐겁지만, 검붉은 해변으로 둔갑한 전시장의 스펙터클한 풍경도 놓칠 수 없는 볼거리다. / H




Yael Bartana b. 1970 이스라엘 / 암스테르담, 베를린, 텔아비브 / 부산비엔날레

‘미래의 역사’를 재현하다 야엘 바르타나는 과거의 인종 국가 영토적 ‘분리’가 오늘날 남긴 유산을 픽션을 가미한 내러티브와 상징적 이미지로 되묻는다. (구) 한국은행에서 상영되는 <인페르노>는 브라질 상파울루의 한적한 마을을 배경으로 한 작품. 꽃과 과일로 치장한 사람들이 신전을 향해 행진하고, 유대교의 신성한 유물을 이송하는 헬리콥터가 환대받으며 퍼레이드 상공을 가로지른다. 이들이 도착한 곳은 2014년 신(新) 펜테코스트 교파가 구축한 ‘솔로몬 신전’으로, 브라질 주교가 상파울루에 ‘새 예루살렘’을 건설하려는 목적으로 이스라엘에 있는 동명의 고대 신전을 복제한 건축물이다. 하지만 신도들이 종교의식을 행하려는 순간, 갑자기 의문의 화재가 발생하고 신전이 붕괴되면서 평화롭던 분위기는 한순간 전복된다. 작가는 극적인 상황을 슬로모션으로 느리게 재현하면서 신체와 감정의 미묘한 변화를 스크린에 포착한다. 기원전 6세기 유대인 디아스포라에서 착안한 작품은 ‘미래에 있을 법한 역사’를 재현하는 방식으로 유대인의 정체성을 고찰한다. 한편 부산현대미술관 지하 전시실에 놓인 <타쉴리크(떨쳐 내기)>의 어두운 허공을 떠도는 오브제들은, 물가에서 주머니를 털어내는 행위를 통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유대교 의례 ‘타쉴리크’를 의미한다. / Y



Artificial Nature 2007년 설립 / 토론토 / 대전비엔날레

가상의 생태계를 향한 가상의 모험 한국 출신 미디어 아티스트 지하루와 영국 출신 소프트웨어 개발자 겸 작곡가 그라함 웨이크필드의 연구형 프로젝트 아티피셜 네이처. 이들은 자연의 본질에 더 깊이 다가가려는 방편으로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 장비, 상호반응 센서 등 최첨단 기술을 미술에 접목한다. 이렇게 구현한 인공생태계는 실제 생명체가 작동하는 방식과 생태계의 구조를 본뜬 것. 대개 관객이 이를 체험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몰입형 인터랙티브 설치작품을 만든다. SeMA창고(2017), DDP(2016), 서울상상력발전소(2014) 등 국내 다수의 기획전에 참여한 바 있는 이 팀은 올해 대전비엔날레에 <중첩 속으로>를 출품했다. 레이저 커팅한 섬 모양의 지형도 모델을 모래로 덮고, 이 위에 얼룩덜룩한 무늬로 표현된 식물 군집체와 그 씨앗을 프로젝션했다.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군집체와 씨앗이 뿌려지는 위치가 변경돼 5개의 섬 사이를 유동한다. 한쪽 벽면에 마련된 VR 장비를 통해 가상현실로 옮겨 온 섬나라 사이를 누빌 수 있다. 빛과 어둠으로 수놓은 전시실은 명상적이고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새로운 생태계 안으로 관객을 끌어들이는 한편, 생태계와 인간의 상호교류를 체험하게 함으로써 현 생태계 속 인간의 역할을 고민해보게 한다. / H



원고 작성: 김재석, 김민형, 이현, 한지희

교정 교열: 김재석

편집: 한지희

디자인: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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