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자가 누구야?
얼마 전, 뉴스에서 이런 걸 봤다.
이재명 대통령이 보고서를 읽다가 궁금한 부분이 있으면 실장이나 수석이 아니라 행정관에게 바로 물어보는 게 빠르니, 보고서에 행정관 이름과 연락처를 같이 쓰라고 했다는 거다. 이름하여 ‘보고서 실명제’.
"큰일보다 작은 일을 잘해야 행정이 잘 돌아간다" 대통령의 평소 생각이 반영된 것이라고 한다.
나는 이거, 적극 찬성파다. 실무자에게 부담이 늘겠지만, 그만큼 책임감도 생기고, 일에 대한 자부심도 올라갈 테니까.
https://v.daum.net/v/20250807050221572
사회 첫 직장은 A사였다. 신입사원, 대졸 공채. 조직은 팀 단위였고, 팀 안에는 비공식적으로 파트가 있었다. 보고 라인은 ‘실무자 → 파트장 → 팀장’.
문제는 보고할 때 파트장이 팀장에게만 들어가고, 팀장이 상위 조직 보고할 때도 혼자 들어간다는 거. 그러니 실무자가 쓴 보고서가 반려돼도 이유를 직접 듣기가 힘들었다. 업무 지시도 마찬가지였다. 팀장 말이 파트장을 거쳐 내려오면, 실무자 입장에선 ‘이게 진짜 팀장님이 원하는 건가?’ 싶은 때가 많았다.
답답했던 나는, 신입 주제에 팀장에게 직보를 시도했다.
돌아온 건 중간관리자들의 경고.
“신입이 어딜 감히 팀장님한테 직접 가?”
“대충 써서 올려. 어차피 다시 지시하실 거야.”
결국 나도 조직문화에 젖어들었다. 편하게, 시키는 대로, 그냥 ‘로마법’에 맞춰 살았다. 그 회사는 이후 몇 차례 매각을 거쳤고, 많이 힘든 상황을 겪었다.
이직한 B사는 기본 구조는 A사와 비슷했지만, 결정적 차이가 있었다. 실무자가 상위 보고에 배석한다는 거다. 아니면 최소한 팀장이 실무자만큼 안을 꿰고 있어야 했다.
그래서 회의 자리에는 거의 항상 실무자가 있었다. 당연히 이런 말이 자주 나왔다.
“실무자 의견이 제일 중요하다.”
“실무자가 책임진다.”
책임감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세세한 부분까지 파고드는 ‘디테일 전쟁’이 시작됐다. 시간은 짧았다. 몰입이 기본이고, 야근은 옵션이 아니라 세트 메뉴였다.
리더의 목적과 목표를 이해해야 하니, 바쁜 그들을 붙잡고 설명을 들을 수도 없었다. 대신 식사 자리에 슬쩍 따라가서 자연스럽게 묻고 들었다. 회의실보다 밥상머리에서 일이 훨씬 빨리 편하게 풀렸다.
덕분에 입사 초반 워라밸은 사라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몰입 → 역량 향상 → 업무 속도 개선 → 더 많은 일 담당… 이런 선순환(?)이 굴러갔다.
A사에서는 보고서가 ‘팀장님 말씀이겠거니’ 하며 대충 흘러갔다.
B사에서는 실무자가 직접 보고하고, 이름 걸고, 책임졌다.
둘 다 장단점은 있지만, 나는 ‘이름과 전화번호를 거는 구조’가 결국 행정과 조직을 살린다고 본다. 그만큼 힘들지만, 그만큼 성장한다.
보고서 실명제? 부담 백배지만, 실무자가 ‘나 이 일 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제도라면, 나는 찬성이다.
결국, 이름값이 실무자의 실력값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