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운동하는가
살아오면서 몇 가지 운동을 시도해봤다. 볼링, 테니스, 스쿼시, 수영, 헬스, 발레, 줌바, 방송댄스, 요가, 필라테스, 자전거, 달리기.
볼링, 테니스, 수영은 부모님이 등록해줬고, 나머지 운동은 성인이 된 이후 자발적으로 배웠다. 중학생 때 친구랑 같이 배운 볼링은 꽤 재미있기도 했고, 그때 익혀둔 자세는 나중에 직장생활하면서 동료들과 종종 볼링장에 갈 때 도움이 되었다. 테니스도 중학생 때 배웠는데 테니스 광이었던 아빠 후배에게 배웠다. 초반에는 자세가 좋다는 칭찬을 들었지만 막상 공은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늘 허공에 라켓을 휘둘렀다. 급기야 코치는 “네 라켓에는 그물이 없니?” 물었다. 준비운동으로 코트를 몇 바퀴씩 뛰어야 하는 것도 싫어서 일찌감치 테니스를 포기했다. 수영은 대학생 때 동생이랑 배웠는데 자유형을 넘기질 못했다. 타고난 부력이 없나 봐, 또 포기했다. 방송 댄스는 직장생활 초기에 친한 언니와 회사 근처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퇴근 후에 배웠다. 처음으로 내 손으로 돈도 벌겠다, 이것저것 의욕이 넘치던 시절이라 새벽엔 영어학원에 다니고 퇴근 후엔 방송 댄스를 배우던 즐거운 시절이었다. 하지만 즐거움이 실력을 담보하는 건 아니라 거울에 비친 허우적거리는 내 모습이 너무 웃겨서 그만두었다. 스쿼시도 직장 근처에서 배웠는데 중학생 때나 성인이 되어서나 라켓을 허공에 휘두르는 건 마찬가지였다. 여기까지가 비교적 젊은 시절 시도한 운동들이다.
이후부터는(대략 삼십 대 중반 이후) 슬슬 생존운동의 시기로 접어든다. 처음 시도한 건 헬스 PT 였다. 운동과 담쌓고 지내니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등록했는데, 첫 수업을 받다가 구토감이 느껴져 수업을 잠시 중단했던 기억이 난다. 정말 탄탄한 워너비 몸매의 여성 트레이너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토할 것 같다는 내 말에 “네, 처음엔 그럴 수 있어요.” 하고는 잠시 혈색이 돌아올 만큼만 쉬는 시간을 준 후 나머지 수업을 끝까지 진행했다. 무서븐 녀성. 그래도 트레이너와 호흡이 잘 맞았고 가끔은 한강공원에서 달리기 인터벌 트레이닝 같은 수업을 하며 야외 운동의 묘미를 느껴보기도 했다. 하지만 운동에 흥미가 없는 나에게 헬스 PT는 “돈 내고 벌 받는 느낌”이 너무 강했다. 그리고 꽤 꾸준히 고강도 운동을 했음에도 몸의 변화가 없었다. 몸에 변화가 더딘 사람들이 있는데 트레이너는 내가 그런 타입 같다고 했다. 여성들은 근육 부족인 경우가 많은데 나는 근육이 부족한 체질은 아니란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줌바는 체중감량에 효과적이라기에 반년 정도 다녔는데 체중 감량엔 실패했지만 운동을 하고 나면 땀이 폭포수처럼 나고 개운해서 스트레스 해소에는 효과적이었다. 발레는 포기했지만 유일하게 미련이 남는 운동이다. 온몸의 잔근육이 드러나는 발레리나의 몸을 내가 얼마나 흠모했던가. 똑바로 서는 자세만으로도 운동이 되는 발레의 세계는 놀랍고 매력적이고 더 알고 싶었지만, 같이 수업받는 사람들 중 가장 둔탁하고 뻣뻣한 나의 동작을 거울로 계속 확인하는 일은 운동 자체보다 훨씬 괴로웠다. 그래서 발레도 포기.
이런저런 시도와 실패 끝에 지금 꾸준히 하고 있는 운동은 필라테스, 자전거 타기, 달리기이다. 필라테스는 주 2회씩 2년 반째 하고 있고, 자전거는 정기적이진 않지만 바람을 가르고 싶은 날 훌쩍 타러 나가고, 달리기는 최근에 발견한 좋은 어플의 도움으로 도전 중이다. 필라테스 선생님이 자주 하는 말로는 배꼽 쏙, 귀와 어깨 멀어지고, 하복부 힘주세요, 자 버팁니다, 한 세트 더 등이 있다. 10까지의 숫자를 아주 천천히 세신다. 필라테스도 근육운동이라 힘들긴 하지만 헬스 PT 받을 때와 달리 벌 받는다는 느낌은 덜하다.
2년 넘게 필라테스를 하는 동안 몸이 꽤 좋아졌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진 않다. 근력이 약간 향상되고, 조금 오래 버틸 수 있게 된 정도다. 내 생각에 나는 몸을 잘 못 쓰는 편인 것 같다. 변화와 발전이 더딘 내 몸을 알아갈수록 ‘몸을 잘 쓴다’는 건 근력이 좋은 것과 다른 차원 같다고 느낀다. 필라테스 선생님이 ‘회원님은 근력이 없는 편은 아니신데...’ 라며 종종 말끝을 흐리는 걸 보면 몸을 잘 쓰지 못한다는 내 진단은 맞는 것 같다. 슬프다. 하지만 어쩌겠나. 필라테스 동작을 취할 때 별로 힘들지 않고 자극이 덜 느껴진다면 그건 필시 내가 자세를 잘못 잡았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자세를 1cm 만 조정해줘도 근육이 찢어질듯한 자극이 느껴지고 이내 곧 경운기처럼 몸이 덜덜 떨린다. 선생님은 그 미묘한 차이를 어찌 포착하시는지 매번 신기하다. 자세가 1cm만 어긋나도 알아차리는 것이 코칭의 기술이겠지. 필라테스는 크게 움직이는 동작보다 가동범위를 작고 정교하게 움직이는 동작들이 훨씬 힘들다. 이게 뭐라고 이 지경으로 힘이 드나 싶은 생각을 자주 한다.
눈에 띄는 변화도 실력 향상도 없는 운동을 계속하는 이유는 당연히 노화 때문이다. 이제 좋은 것들은 빠져나갈 일만 남았다. 근육도 머리카락도. 가만히 있어도 쌓이는 것은 나이와 지방뿐. 새로운 근육을 만들진 못해도 갖고 있는 근육만이라도 최대한 오래 유지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고, 많은 연구결과가 운동의 효용을 입증하고 있으니 한번 믿어보는 거다. 예전에는 30분 이상 운동하지 않으면 효과가 없을 거라는 생각에 운동할 시간을 내는 것부터 부담을 가지곤 했지만, 이제는 5분이건 10분이건 내가 집중하여 해낸 동작들은 어떤 식으로든 쌓이고 흔적을 남길 것이라 생각하기에 운동 시간에 구애받지는 않는다.
생존운동에 접어든 이후에도 날씬하고 군살이 없다면 운동은 안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여성의 몸과 근육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날씬해지고 싶다.) 집합금지로 필라테스 스튜디오가 문을 닫은 기간이 은근히 반갑기도 했지만, 3년 가까이 꾸준히 운동을 하면서 자연스레 체득하게 된 가치들이 없지는 않다. 내가 조절하고 통제 가능한 만큼만, 딱 그만큼만 움직이는 것의 기쁨과 괴로움을 알아간다. 어릴 때는 별 감흥 없던 ‘살아서 몸으로 바퀴를 굴려나가는 일은 복되다.‘ 는 김훈의 말도 이제는 와 닿는다.
운동을 해서인지 나이 듦의 자연스러운 현상인지 정확히 규명할 순 없지만, 운동하기 전보다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미련과 집착은 많이 단념하게 된 것 같다. 내가 통제하고 조절할 수 있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에너지를 쓰려고 애쓴다. 내 몸 1cm 더 움직이고, 5초 더 버티기도 이리 힘든데 나 아닌 다른 사람의 몸과 마음을 어찌 움직이겠나. 다른 사람이 움직여야(몸이든 마음이든) 가능한 일에 소망을 두는 건 불행의 시작이다. 생각해보면 인간관계 갈등의 많은 부분이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의 변화를 바라는 것에서 비롯된다. 애인이 연락을 더 자주 해줬으면 좋겠다부터 시작해 자식이 좋은 대학을 갔으면 좋겠다, 손주를 보고 싶다 까지. 인생의 전반에 걸쳐 나 아닌 타인에게 소망을 둘 이유는 무궁무진하고 누구나 그런 바람 한두 개쯤 없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런 바람은 공허하고 피곤하다.
나의 희망이지만 나의 움직임으로 이룰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마음은 95퍼센트 거두고 대신 내가 움직여 성취할 수 있는 작은 것에 집중한다.(5퍼센트는 기적에 대한 기대로 남겨둔다.) 공원 한 바퀴 더 걸어 만보를 달성하는 것에, 조금 더 버텨 플랭크 시간을 늘리는 것에, 스쿼트 100개를 쉬지 않고 해낸 것에, 달리기 페이스가 조금 단축된 것에. 이런 미세먼지 같은 작은 성취들을 꾸준히 쌓아왔기에 내 몸과 삶이 달라졌다.... 고 말하면 참 좋겠지만 그렇지는 않다. 어쩌면 운동에 대해 생각하고 글을 쓰다 보니 애써 찾아낸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애써 찾아낸 이 의미도 운동을 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일이다. 그러니 오늘도 움직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