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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복숭아 May 31. 2023

돈데기리기리 돈데기리기리 돈데돈데돈데 돈데크만

"어른이라고 무작정 놀기만 하면 잡혀간다는 무시무시한 교훈"


〈시간탐험대〉*도 내가 마지막 화를 본 만화영화 중 하나다.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TV를 끼고 살았으면…’이라는 탄식이 절로 나오지만 뭐 어쩌랴. 사실인 것을. 〈시간탐험대〉는 말 그대로 시간 이동 능력을 가진 타임머신 ‘돈데크만’의 힘을 빌어 다양한 시간대를 탐험하는 내용이다. 지금 봐도 돈데크만의 설정은 아주 특이하다. 일단 주전자 모양인 것부터 신박하다. 돈데크만은 단순히 이 만화영화의 마스코트 차원을 넘어 실질적인 주인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시간탐험대〉의 인지도에 가장 크게 기여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려 자아를 지닌 AI가 탑재되어 있지만, 그 자아라는 게 아주 비열해서(!) 손잡이를 잡은 사람이라면 그게 누구든 상관없이 ‘주인님’이라고 부르며 설설 기는 모습을 엄청나게 자주 보여준다. 어린 나조차 ‘와, 쟤는 좀 얄밉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그래서인지 이능력(異能力)을 갖고 있는 물건인데도 한 번도, 단 한 번도 돈데크만이 갖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한국에서는 1993년에 첫 방영을 했고, 이후 1997년에 한 차례 재방영했을 정도로 나름 인기 있는 작품이다. 그 시절 나와 같은 만화영화를 본 게 틀림없는 이들이 주전자를 들고 “돈데기리기리 돈데기리기리 돈데돈데돈데 돈데크만~!” 하고 주문을 외우거나, 팔짱을 낀 채 하염없이 “아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 하고 너털웃음만 짓는 ‘램프의 바바’ 흉내를 내는 것을 종종 보았으니. 심지어 2013년 박용우 배우는 무려 SNL에서 이 ‘램프의 바바’를  패러디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본토인 일본에선 그 정도는 아니었나 보다. 한국에서만 인기를 끈 〈꾸러기 수비대〉나 〈웨딩피치〉 같은 경우였던 것이다. 일단 찾아보니 〈시간탐험대〉 자체가 1989년부터 1990년에 걸쳐 방영된, 상당히 옛날 작품이었다. 거기다 다른 작품들에 밀려서 계속 방영 시간대가 바뀌었다고 하니… 인기를 끌고 싶어도 끌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거기다 동시대에 방영되었던 만화영화들이 〈드래곤볼Z〉 〈란마½〉 〈수라왕 슈라토〉 〈시티헌터〉 〈도라에몽〉… 그만 알아보자. 


그래도 나는 나름 재미있었다. 주전자 형태의 타임머신이라는 발상이 신기했고, 여러 시간대를 오가며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도 흥미진진했다. 무엇보다 〈시간탐험대〉의 주요 크루가 다양한 연령대와 문화권의 인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재밌었다. 주인공인 ‘스카이’와 ‘리키’는 초등학교 5학년에서 중학교 2학년을 넘나드는** 10대 청소년이지만 돈데크만을 만든 ‘레오나르도 박사’는 노인이고, 중간에 합류한 ‘알라딘’은 10살짜리 어린이다. 내게 민폐 커플이 무엇인지를 처음으로 알려준 ‘샬랄라 공주’와 ‘오마르 왕자’는 정확한 나이가 나오진 않지만 적어도 스카이와 리키보다는 연상인 것처럼 보이니 많아봤자 20대 초반, 최소 10대 중후반이다. 돈데크만과 램프의 바바를 거느리는 퉁퉁한 중년남 ‘압둘라’도 있다. 돈데크만이나 램프의 바바 그리고 용용이는 인간이 아니니 논외. 이 일곱 명의 인간과 세 개의 개체(?)로 이루어진 무리들이 다양한 시간대에서 각종 문제를 일으키고 해결하니 원제는 〈타임트러블 톤데케만!〉으로 정해진 것 같지만, 시간을 넘나들며 온갖 모험을 벌이니 〈시간탐험대〉라는 국내 제목도 딱 맞는다. 


마지막 화에서 돈데크만이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이 자식들이 여러 시간대를 만들어내는데, 이 타임라인이 꼬여서 인물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나는 당연히 이들이 어찌저찌 다시 만나게 되며 엔딩을 맞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냥 이렇게 흩어진 채로 끝이 난다. 〈2020 우주의 원더키디〉나 〈요술공주 밍키〉 〈날아라 거북선〉급으로 충격적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내게 놀라움을 안겨준 엔딩이었다. 그렇지만 다들 나름대로의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스카이와 리키는 11명의 자신들과 함께 밴드나 축구팀을 결성하고, 샬랄라 공주와 오마르 왕자는 인류의 시초가 되어 아들딸 쑴풍쑴풍 낳으며 행복하게 살아갔고, 용용이와 압둘라와 알라딘은 빙하기에 고립된 공룡들을 살리면서 공룡 문명을 키우는 데 일조한 영웅이 되었다.*** 이 또한 매우 신선하게 느껴졌다(물론 투자를 받고 일을 안 해서 경찰에 체포된 11명의 레오나르도 박사님들은 제외… 어른이라고 무작정 놀기만 하면 잡혀간다는 무시무시한 교훈을 심어준 만화영화이기도 하다). 그 뒤로 몇 년이 흘러 어엿한 어린이가 된 나는 여러 만화영화를 보면서 과거에 봤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하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웃기고 귀엽지만…. 대부분의 만화영화들은 누군가가 죽거나 서로 헤어져도 마지막 화에서는 재회하며 끝나는데, 〈시간탐험대〉는 그냥 뿔뿔이 흩어진 채 이야기를 마무리 지은 게 신기했다. 


여하튼 〈시간탐험대〉를 만든 이들이 누구일까 궁금하여 한번 찾아봤는데, 꽤 재밌는 사실을 알았다. 캐릭터 디자이너이자 총작화감독인 아시다 도요(芦田豊雄)는 바로 직전에 이야기했던 〈번개전사 그랑죠〉의 캐릭터 디자이너다. 그뿐 아니라 〈세느강의 별〉 〈닥터 슬럼프〉 〈요술공주 밍키〉 등 수많은 작품의 작화를 담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감독인 유야마 쿠니히코(湯山国彦)는 〈요술공주 밍키〉 〈웨딩피치〉 〈사우르스 팡팡〉 등 그야말로 내 어린 시절을 책임진 몇몇 작품들을 감독했고. 아무래도 둘이 〈요술공주 밍키〉를 작업하며 알게 된 것 같지요? 심지어 이 유야마 감독은 〈포켓몬스터〉의 모든 TV판과 극장판 만화영화를 담당한 인재다. 이처럼 추억의 만화영화에 대한 정보를 뒤지다 보면 내 추억을 소수의 사람들에게 신세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들이 열심히 일한 덕에 우리는 추억을 열심히 쌓을 수 있었고, 나는 이런 책도 쓸 수 있게 되었으니 여러모로 감사할 따름이다. 


그나저나 내가 11명이나 생긴다면 나도 아시다 도요나 유야마 쿠니히코처럼 열심히 일할 수 있을까? 과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릴 때 〈시간탐험대〉의 엔딩을 본 이후로 쭈-욱 고심해온 주제다. 예전엔 나이가 비슷한 스카이가 좋았으므로 똑같이 밴드를 만들고 싶다! 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레오나르도 박사처럼 될 것 같지?  





* 원제는 〈타임트러블 톤데케만!たいむとらぶるトンデケマン!〉이다. ‘돈데크만’ 아니고  ‘톤데케만’이었다!  


** 본작에서는 중학생인 것처럼 나오는데 또 어딘가에서는 초등학교 5학년이라고 소개되었다 하니, 애니메이션 설정상의 문제 같다. 


*** 이 부분과 그 당시 내가 보았던 영화 <쥬라기 공원>, 비디오로 본 <공룡대탐험>, 그리고 <사우르스 팡팡>과 <쥬라기 월드컵> 등의 만화영화가 맞물리며 나는 공룡 문명에 대한 꿈을 무럭무럭 키우게 되는데… 그 결과 나는 미래과학 글짓기에서 금상(!)을 받았다. 이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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