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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복숭아 Jun 07. 2023

〈흙꼭두장군〉, 누가 눈물을 부정하는가


오늘도 또 울었다. 


난 눈물이 많은 편이다. 이 연재를 하는 동안에도 몇 번이나 울었다. 〈로봇수사대 케이캅스〉 편을 쓰려고 영화 〈A. I.〉를 다시 보다가 울었다. 4월 17일 월요일, 회사에서 세월호를 추모하는 노래 ‘천 개의 바람이 되어’가 나오는 것을 듣다가 울었다. 남의 강아지를 빤히 쳐다보다, 지금은 강아지 천국으로 떠나버린 우리 강아지 깜돌이의 발바닥 꼬순내가 떠올라서 울었다. 한번은 남편이 혼자서 어떤 유튜브 영상(일본 애니메이션 〈도쿄 매그니튜드 8.0〉의 리뷰 영상)을 보길래 몰래 훔쳐보다가 펑펑 울어서 남편을 놀라게 한 적도 있다.


이처럼 눈물이 많은 나이기에, 눈물에 대한 나만의 지론도 있다. 바로 인간은 정기적으로 울어줘야 한다는 것. 그래서 나는 울고 싶을 때가 오면 고이고이 아껴둔 슬픈 영상들과 책을 꺼내어 본다. 그리고 그걸 보고 엉엉 운다. 뭔가 직접적으로 슬픈 일을 겪은 것도 아닌데, 신기할 정도로 울음이 쏟아져 나온다.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이런 지론을 세운 것이다. 아무래도 살면서 자연스레 가슴속에 감정이 쌓이고 쌓이는데, 그걸 이렇게라도 쏟아내야 하는 것 같다.  


눈물은 정화다. 감정의 순수한 결정이다. 확실히 울고 나면 개운해진다. 괜히 눈물로 남을 살리는 이야기가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눈물을 별로 좋게 보지 않는다. 생리현상으로 자연스레 쏟아지는 눈물은 가려야 하는 것이고, 숨겨야 하는 것이고, 프로답지 않은 것이고, 미성숙한 것이다. 기실 눈물뿐이랴. 한국사회는 감정 표현을 크게 하는 것 자체를 탐탁지 않아 한다. “뭘 잘했다고 울어” “뭐가 좋다고 웃어”처럼 말 같지도 않은 말은 대체 누가 만들었는지. 


나만 해도 그렇다. 눈물은 많지만 언제나 몰래 숨어서 운다. 집에서나 실컷 울지. 모두가 울고 있는 상황이라면 최대한 안 운 척을 하려 노력한다. 얼른 눈물을 슥슥 훔쳐낸다. 울었다는 티를 내도 눈물만큼은, 내가 울었다는 증거가 되는 눈물만큼은 보여주지 않으려 한다. 우는 모습을 보이는 건…… 내 약점을 드러내는 일이라 생각한다. 특히 가족들 앞에서는. 그래서 가끔 엄마는 나를 감정 없는 싸이코패스 취급을 한다. 


가족들 앞에서 맘 놓고 울었던 적이, 화가 나거나 억울해서가 아니라 정말 순수하게 슬퍼서 울었던 적이 언제였더라…… 역시 〈흙꼭두장군〉을 봤을 때가 아닐까. 당연하게도(!) 내가 보고서 울었던 만화영화는 많고 많다. 〈지구용사 선가드〉 마지막 화를 보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펑펑 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왜 생생하냐면 그때 이야기를 일기(그 당시에는 모든 일기를 담임선생님께 검사를 맡았답니다)에 썼기 때문에. 하지만 처음으로 보고 울었던 만화영화는 〈흙꼭두장군〉이었다. 


〈흙꼭두장군〉은 MBC 문화방송에서 창사 30주년을 기념하여 자체 제작한 만화영화다. 주인공 빈수는 아버지가 우연히 발견한 오래된 왕릉에서 흙꼭두장군과 만난다. 왕릉의 수문장으로서 석실 사이의 문을 여는 꽃열쇠를 지키고 있던 흙꼭두장군은, 발굴 과정에서 이 열쇠를 잃어버렸다며 빈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리고 이 둘은 열쇠를 찾으면서 2000년을 뛰어넘는 우정을 키우게 된다는 내용이다. 김병규 작가의 《흙꼭두장군의 비밀》*이 원작이며, 1991년 12월에 처음 방영했는데 무려 27.3%라는 시청률을 기록하여 관계자들이 깜짝 놀랐다고. 크나큰 인기에 힘입어 그 이후에도 명절마다 꾸준히 방영해주었다. 난 아아주 어렸을 때 봤던 기억이 있으니 아마 첫방영된 1991년이나 1992년 즈음에 보지 않았을까 싶다. 많이 가봤자 1993년? 자체 최고시청률은 38.3%까지 기록했는데, 언제부터인가 ‘같은 작품을 매번 재탕한다’라는 항의가 들어와서 재방영을 중단했단다. 심지어 그 이후에는 관계자의 실수로 테이프가 소실된 상태라 더 이상 원본을 볼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원본이 사라졌다고 해서 이 작품을 봤던 사람들의 기억과 마음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당장 유튜브에 ‘흙꼭두장군’이라고 검색해보면 이런저런 영상들이 나오고, 그 아래엔 어렸을 때 이 작품을 보고 대성통곡하며 울었는데 지금 봐도 너무 가슴이 미어진다는 댓글들이 줄줄이 달려 있다. 나 역시 그랬다. 이 원고를 쓰려고 찾아봤다가 보면서 또 울었다. 주인공인 빈수와 흙꼭두장군이 서로를 아끼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울었다. 아니, 이미 빈수가 흙꼭두장군을 항상 책보에 넣고 애지중지하는 모습이 나오자마자 울기 시작했다. 특히 빈수가 위험에 빠지자 흙으로 만들어진 흙꼭두장군이, 비를 맞아 몸이 망가지면서도 빈수를 구하려 동분서주하는 부분은 언제 봐도 눈물 버튼이다. 댓글들을 살펴보면 다들 비슷한 부분에서 우는 것 같다. 지금 봐도 너무 귀여운 흙꼭두장군, 하지만 어떻게든 자신의 의무를 다하려 노력하는 흙꼭두장군, 자신의 소중한 친구를 돕기 위해 죽음도 불사하는 흙꼭두장군, 그리고 마지막에 숨을 거두는 흙꼭두장군…… 어떻게 울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물론 지금 보기에는 만듦새가 다소 엉성한 부분도 있고, 옛날 작품이니만큼 시대상에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그게 〈흙꼭두장군〉의 가치를 떨어뜨리진 않는다. 나와 우리가 〈흙꼭두장군〉을 보며 흘린 눈물의 가치를 떨어뜨리진 않는다. 무언가 감정을 강하게 자극하는 작품을 보고 흘리는 눈물은 숭고하다. 흙꼭두장군의 죽음에 슬퍼하며 빈수는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흙꼭두장군의 가슴 위에 떨어진 눈물이 스며든 자리에 꽃이 한 송이 피어난다. 난 이 장면이야말로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진한 감정이 깃든 눈물에서 새로이 탄생하는 생명.  


아, 난 〈흙꼭두장군〉을 볼 때나 맘 놓고 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정도로 어렸을 시절에나 맘 놓고 울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입학했던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뀐 뒤부터 나는 맘 놓고 우는 법을 잊어버렸다. 나뿐만 아니라, 〈흙꼭두장군〉을 보고 울었던 모든 이들이 그랬을 것이다. 


그렇지만 누가 감히 눈물을 부정할 수 있단 말인가. 눈물은 말 그대로 눈에서 나오는 물이다. 이 물은 다양한 이유로 나올 수 있다. 바람이 불어서, 슬픈 영화를 봐서, 부당한 대우를 당해서, 가족이 억울하게 죽어서, 하품을 해서, 속눈썹이 눈에 들어가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서, 원하던 것을 손에 넣어서, 그 외 수많은 이유 때문에 우리는 눈물을 흘린다. 그 이유를 누가 마음대로 재단하고 평가할 수 있단 말인가. 우는 것이 약점이 되는 사회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눈물을 숨기는 사회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타인이 흘리는 눈물을 보고 ‘그럴 수도 있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너무 거창한가? 그럼 이렇게 말해볼까. 눈물이 많은 나, 좀 더 마음 편하게 울고 싶다고.  


          



* 2011년에 《까만 수레를 탄 흙꼭두장군》으로 개정판이 새로 나왔다.


** 이상하게 우리나라는 이런 실수가 잦은 것 같다. 이번에 새로 개봉한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만 해도 원본 필름이 유실되어 여러 가지 과정을 거쳐 4K로 리마스터링한 것이다.




4월 초에 시작했던 출간 전 연재가 어느덧 10번을 넘어 6월 초에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아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모르시는 분들이 더 많을 것 같아서 말씀드리지만, 두 달 동안 연재되었던 원고들은 미리 준비해둔 것들이 아니라 제가 일주일 동안 고민하며 썼던 결과물이었습니다. 


회사에 다니면서도 주 1회 마감을 하느라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든 나날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짧다면 짧은 시간이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재밌게 읽어주신 분들이 있어서 펑크 한 번 내지 않고 연재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출간 전 연재는 여기서 마무리가 됩니다. 기존에 써두었던 원고들과 새롭게 덧붙일 원고들을 정리하면 늦어도 6월 내에는 탈고하여, 올 가을에는 단행본으로 선보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 전에 조금 더 여유가 되면 개인적으로 쓰던 영화 리뷰나 서평들도 정리해서 올리고 싶은 마음이지만, 과연 그렇게 될지... 그래도 노력해보겠습니다.


그럼 조만간 좋은 소식을 들고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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