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톰 올리버,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에 대한 서평
저자의 문제의식은 어느 정도는 '개인주의의 위험성'에 대한 안티테제의 성격을 갖는다. 나는 이 글에서 저자와 조금 다른 시각에서 '연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저자의 의견에 반박하며 개인주의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고, 사회와 유기적으로 연결된 개인에게 어떤 또다른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처음으로 자아라는 환상을 깨게 해준 것은 약 12년 전 철학자 미셸 푸코였다.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은 인간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규율'을 논한다. 주요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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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에 의하면, 인도주의적 개혁의 결과 사법적 감금이 19세기 초부터 처벌의 주요 형태가 된다. "공개 고문, 인도주의적 개혁, 사법적 감금"이라는 처벌 권력의 세 가지 역사적 존재 형태의 순차적 변화가 이제 완결 단계에 이른 것이다. 사법적 감금은 범죄자에 대한 일련의 평가, 규정, 처방, 판단들이 제도적으로 치밀하게 이루어지고 정교화 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범죄자를 통제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그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축적하는 것이고 이러한 지식 기제가 범죄자를 교화하는 데 사용된다. 인도주의적 개혁과 사법적 감금은 사회 전체가 범죄에 대한 예방적, 교정적, 공리주의적 처벌의 권한을 갖게끔 유도한다.
그 결과 모든 사회에서 사람의 몸은, 통제하고 금지하며 조절하고 권면하는 권력 앞에 노출된다. 감옥은 다만 그 선명한 축소판일 뿐이다. 감옥뿐만 아니라 군대, 학교, 병원, 공장, 회사 등의 모든 장소에서 몸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일련의 기법을 총동원하는 현상을 보라. 권력 행사에 있어 이성의 시대인 18세기가 새로운 까닭은 '길들여진 몸'을 만들기 위해, 즉 몸의 유순함과 유용성을 증가시키기 위해 전사회적 차원에서 아주 새로운 기법들이 전면적으로 도입되었다는 데 있다. 이 시기에 전체적인 몸뿐만 아니라 그 미세한 운동이나 자세까지도 권력의 대상이 되었고, 그 목적은 몸이 갖는 효율성을 최대한 제고시키는 데 있었다.
길들여진 몸을 만드는 여러 기법들과 전술을 통틀어서 푸코는 '규율'이라고 명명한다. 규율적 권력이 동원하는 세 가지 주요 기법인 "관찰, 규범적 판단, 검사"의 실례들을 예증하는데 『감시와 처벌』의 상당 부분이 할애된다. 이 기법들이 모세혈관처럼 전 사회 영역을 관통하면서 사회 구성원들의 모든 것을 감시하고 규율하는 사회, 나아가 인간의 정체성과 자화상 자체를 창출하는 장소가 바로 '규율 사회'인 현대 사회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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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백과] 감시와 처벌 [Surveiller et punir] - 이성이 곧 권력이다 (서양의 고전을 읽는다, 2006. 5. 22.)
역학을 연구하는 김승섭 교수의 <우리 몸이 세계라면>이라는 책도 다음과 같이 지식 생산의 비밀을 언급한다.
"사실은 그 자체로 존재하지 못한다. 누군가가 말하고 쓸 때 비로소 지식이 되어, 세상에 그 존재를 드러낸다. 우리가 오늘날 상식이라 부르는 지식들 역시 과거 특정한 사회적 과정을 거쳐 생산된 결과물이다. 그 생산 과정에는 그 사회의 편견과 권력관계가 스며들어 있다. 그리고 지식을 생산하는 일은 돈과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자본과 권력을 가진 집단은 자신의 입장을 변호할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종종 자신의 필요에 따라 왜곡되고 편향된 지식을 적극적으로 생산하기도 한다."
- 우리 몸이 세계라면 p.13.
"어떤 지식은 생산되고, 어떤 지식은 생산되지 않는다. 오늘날 지식은 명백히 선별적으로 생산되고 선별적으로 유통된다."
- 우리 몸이 세계라면 p. 62.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에서는 자연과학, 신경과학적 근거를 통해 우리가 독립된 개인이 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데, 앞에서 소개한 글들을 보면 자연과학, 신경과학적 관점 이외에 '사회학적' 관점에서도 우리는 독립된 개인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수십년간 사회로부터 교육을 받아왔으며, 우리를 구성하는 사상은 외부에서 주입된 지식 혹은 정보로부터 매우 큰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커넥톰, 즉 신경세포 간의 전체 연결망은 우리의 현재 의식과 정체성을 담당한다. 감각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를 관장하며, 세상을 인식하고 해석하며 반응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96면.
"우리의 마음은 우리에게 유일무이한 보석이지만, 모든 방향에서 정보가 들어오는 세상의 교차로이기도 하다. 이 바쁜 교차로로 들어오는 정보의 거대한 출처는 다른 사람들이다."
-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99면.
책에서 소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연결에는 긍정적 요소가 많다. 하지만 연결이 올바르지 못한 방향으로 이루어질 경우 부정적인 사회 현상을 야기할 가능성 또한 높다.
사회학적으로 '연결'을 다르게 표현한다면 '가치의 공유'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사회의 연결의 가장 큰 부작용은 가치의 획일화, 탈개성화가 아닐까.
인터넷 강국으로 유명한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최신 유행과 소식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여론이 한순간에 끓어오르는 일도 다반사다. 지식의 홍수 속에서 흐름이 형성되고 이런 흐름을 거부하는 개인은 거의 없다.
"우리의 정체성은 외부세계와의 연결에 달려 있으며, 사회적 맥락이 바뀌면 우리의 정체성도 변화한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147~148면.
우리의 가정교육은 얼마나 천차만별일까? 공교육과 사교육의 모습은 어떤가. 육아에 대한 정보, 어린이집과 학교, 학군에 대한 정보, 학원에 대한 정보 등등. 많은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 생긴지도 모르는 기준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그대로 자녀에게 학습한다. "내 아이는 남들처럼 키우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다른 아이들이 앞서나가는 것 같은 모습을 보면 따라가지 않기가 힘들다.
요컨대, 획일화된 교육과 가치의 전달은 획일화된 사회구성원을 양산할 가능성이 높다. 무비판적으로 사회와 공동체에 연결될 경우 남들이 원하는 것, 남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갈 가능성이 높은데, 문제는 누구나 원하고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매우 한정적인 자원이라는 점이다.
모두가 전문직, 대기업, 공무원이 되는 길이 최고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되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이 실패했다고 생각하기가 쉽다. 모두가 명품을 가진 것이 멋있다고 생각한다면 명품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멋이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이렇듯 바람직하지 못한 기준으로 연결된 사회는 필연적으로 그 기준을 가지고 사람들을 줄세우게 되는데, 대다수 사회 구성원들의 상대적 열등감 또는 박탈감은 그 무엇으로도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수동적으로 사회에 연결되어 무비판적으로 지식을 습득하고 무비판적으로 가치를 형성&공유하는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연결'보다는 '예속'이라는 표현이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이런 사회에의 예속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까. 이에 대해서는 아래의 글이 무언가 힌트를 줄지도 모르겠다.
https://brunch.co.kr/@webermas/4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aver?bid=21468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