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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듭달 Jun 15. 2024

아빠 투병기 & 여행

조지아 여행을 들춰보다

아무 일도 없다.

가게를 자그마치 17일이나 닫았는데 손님 반응은 덤덤하다.

몇 번의 악몽은 예지몽이 아니었다.

월 176만 원 가겟세와 아파트 대출금 120만 원, 

그 외에 숨 쉬는데 필요한 유지비를 간당간당 모아놓고 조지아로 떠난다.  

가게 비운 괘씸함으로 인기 식은 연예인처럼 수입이 급감하면 어쩌나 하는 것이 제일 큰 걱정이다.




'홧김에 서방질한다'

나의 조지아 여행은 그렇게 시작된다.

아기자기한 생일 이벤트는 친구와 하는 것이지 

엄마와 하기에 어색해진 건 내 탓이기도 하겠지. 

미성년자 탈피한 아이들은 엄마도 이제 혼자 놀 줄 알아야 한다고 행동으로 말한다.  

심심한 생일에 하필 일탈의 대명사 임택 작가 조지아 여행 공지가 떴고

꽂히면 저지르는 손가락이 신청 댓글을 달아버린다.

'저렴한 스위스'라고 광고하지만 비행기표를 비롯한 여행경비는 수백만 원이 들겠고,

무엇보다 동네 나 홀로 안경원 운영하면서 문을 오래 닫는다는 건 금기를 넘는 일이었다.



나쁜 쾌락 즐기듯 떠난 여행은 생각보다 힘들고 불만이 가득 찬다.

가까스로 돌아올 때쯤 동선과 사진을 들여다보니 이걸 해냈구나 싶다.

다른 사람의 해석을 통하지 않고 내가 직접 본 세상은 달랐다.    

조지아의 소, 돼지, 개, 말, 양은 목줄 없이 돌아다니다 제 집을 찾아간다. 

우리나라는 아마 서산 한우목장이 그럴까?

지능 있는 생명체를 닭장, 돼지우리에 가두는 일이 야만이라 생각된다.



서울 홍대처럼 수도 트빌리시 주말 밤엔 버스킹과 젊은이들의 댄스배틀이 열린다.

빙하 무너져내리는 산줄기를 넘으며 멀미 끝에 도착한 메스타야는

몽골의 침략에도 무사히 마을을 지켜낸 코쉬키 탑이 맞이한다.

해안도시 바투미에서 만난 검지 않은 흑해에서 번역기를 켜고 모닝커피를 사 마신다. 




다양한 이야기보따리 들고 귀국하여 풀어놓을 준비 하는데 엄마의 전화를 받는다.

아빠는 사실 나의 여행 중 뇌경색으로 코드 블루가 왔었고

이유 모를 다리 부종은 어깨 수술 후유증이 아니라 혈액암 부작용이란다.

6개월 시한부에 치료하면 2년 생존을 기대할 수 있다는 말에 화가 난다.

"무슨 소리야?!"

이틀 내리 울고 그 후에도 수시로 울음이 터져서 

퉁퉁 부은 눈으로 여행 후기 풀어놓을 수 없음을 설명하고 다닌다.


헤어숍에서 머리를 바싹 잘랐다. 

딸램이 사준 다이슨 드라이기에 반해 긴 머리 생각 중이었는데 번잡하다.

말리는 기능만 사용해도 딸나은 보람 느끼며 행복하다.

오전 8시 20분 진료 예약에 맞춰 새벽 5시에 일어나 6시에 출발하려는 우리 가족은 전투태세다.


항암이란 입안이 헐고 머리카락 빠진다는데 아직은 그렇지 않다.

대신 픽 쓰러져버리고 말하다 수시로 잠들어버리는 아빠는 

낙상 고위험군이 되어 병실 밖 출입금지 당한다.

출렁이고 쭈글 해진 피부가 잘생김을 뺏아갔다. 잘 먹으면 회복되겠지. 

골수이식에 희망을 걸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 목소리가 밝다. 식사도 잘했단다.

손자와 아들의 방문이 힘이 되었나. 약 기운이 도는 건가. 

나빠져도 좋아져도 불안하다.



조지아에서 스탑오버로 카타르까지 들렀다 오면서

적어도 일 년에 한 번 이상 장기 여행 가겠노라 마음먹었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해외는 고사하고 지방 멀리도 부담스럽다.

24시간 간병 중인 엄마와 교대해야하고 

미스트롯 듣다가 "충실이 네가 부른 거니?"라고 묻는 뜬금없는 아빠 때문이다.

아직도 세무, 부동산 이야기하는 총기가 남아있으면서 왜 그런 질문을..  

딸이 간병하면 소변량 체크가 제일 부담일 것이다.

아빠에겐 아들이 이래저래 쓸모가 있다.



병원에서 튜브 끼고 여생을 보내기 싫다며 

아침에 스스로 방문을 걸어 나오지 않으면 내버려두라는 아빠다.

그러다 욕실에서 쓰러지고 심장이 멈출 듯 놀란 엄마에게 

병원 가기 싫다며 쓰러진 사실을 말하지 말라했다.

가차 없이 입원시키고 치료 진행한 아들을 원망하며 애꿎은 엄마에게 고자질했다고 화낸다. 

건강히 회복될 수 있다면 당연히 치료를 마다하진 않을 거다.  


아직 지치지 않은 우리 가족에게 좋은 소식이 들리길 기대하며 조지아 여행 기록을 들춰본다.

수도원을 참 많이도 다녔고 다양한 먹거리를 접했다.

랜선여행처럼 사진정리하며 다음 여행을 그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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