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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듭달 Jun 05. 2024

아빠 투병기 2

전투 모드 장착


검사를 위해 오전 8시 20분까지 가야한다.

강남 양재IC에 갇히지 않으려면 출근시간은 당연히 피해야한다.

아무리 기다려도 양재코스트코가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던 악몽이 떠오른다.




밤 12시. 유기농 재료로 김밥을 싸는 엄마는 

아빠에게 6시에 일어나라고한다. 

나와 엄마는 5시에 일어날 계획이다.


팔목에 채워드린 갤럭시 워치6는 

아빠가 지난 밤 겨우 1시간 30분 잤고, 

깊은 수면은 겨우 1분 정도라고 고자질한다.



아침 잠 많은 나는 전날 일하고 온 원피스를 다시 입는다.

6시가 되기도 전에 머리 감고 출발준비 마친 우리는 씩씩하다.

거의 전투에 나가는 분위기다. 

아빠의 백혈구가 암세포와 싸우는 중이니 결전모드가 맞긴하다.




엄마는 유능하게 진료예약증을 가지고 앞장서고

걷기 힘들고 수술한 왼팔이 불편한 아빠는 

순순히 엄마와 팔짱을 끼고 걷는다. 뒷 모습이 귀여워 사진 하나 남긴다.

두 분은 지금이 평생 중 가장 친한 상태라고 한다.

버럭 아빠는 다정함보다는 성실한 존재였다.



"시키면 시키는대로 해."라는 해병대식 양육법을 딸에게도 적용한 아빠다.

나도 아빠랑 손 잡고 다닌 시간이 요즘 최고점을 찍는다.



풍선처럼 부풀던 발과 다리가 이제 쭈글쭈글해졌다.  

아빠 얼굴, 팔, 다리도 살 가죽이 출렁거린다.

터지거나 썩어버릴것 같던 붓기가 빠진점은 반가우나

몇 숟가락 못먹는 것이 안타까워 식욕촉진제나 링거를 물어봤다.

의사 두명이 협진하고 있는데, 

남자는 매몰차게 '병 때문에 식욕없으니 나으면 될일인데 아무것도 하지말라'며 엄마에게 면박을 준다.

나쁜 놈. 누가 아파서 입맛 없는거 모르나?  기운이 나야 치료 받을 힘이 생기니 궁리해본거지.

여자 의사는 최종 결정권자는 아니나, 도움될만한 약을 처방해준다하고 이런저런 병에 관한 설명을 해준다.

참 고마운 일이다. 


건강했던 76세 남자가 한두달새에 85kg에서 73kg. 12kg이 빠졌다.

다이어트는 안 먹으면 되는거다. 

운전하며 접히는 내 뱃살이 사치스럽다. 

진료는 길어졌고 서울삼성병원 본관 별관 주차장을 오가다보니 배가 좀 들어간다.





점심 식사 후 암병동에 부모님을 내려드리고 접선하려다 미아가 되었다.

아주 쉽게 찾아오길 바라는 노인네들은 

똑똑한줄 알았던 딸이 길을 잘 못찾는걸 보더니 

찾으러 올테니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란다.



입원 치료해야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엄마 얼굴이 어둡다. 

병실이 나오면 연락할테니 집에 가 있으란다.


김밥 싸느라 지어놓은 밥이 없다.

아빠는 가는길에 적당한 식당에 들러가잖다.



북악터널 지나 이름 난 갈비집에서 냉면 먹고 가기로한다.

비빔 냉면을 한 그릇 거의 다 드시는 바람에

엄마와 딸의 칭찬 세례를 받는다.



안경 가게 손님 전화 한통. 

오후엔 출근하려 했는데 3시 20분 오후 진료를 거의 5시 30분 되어 마쳤으니 내일 오시라한다.

집에 들어와 쓰러져 잠든다. 다음 날 가게 매출은 괜찮게 나왔다.



냉장고에 강원도 유명한 집에서 가져온 청국장. 

'달아난 입맛을 찾아드린다'는 우렁강된장이 있다. 

출근 전 들러 갖다 드리고 오면 되겠다. 

많이 못 드시지만 이것저것 조금씩 자주 드시면 좋지 않겠나?



어제 가게 한참 바쁠 때 두분은 저녁 식사중이었고,

입원하라는 문자인줄 착각하고 서둘러 택시를 부르려다 말았단다.

일하는 딸에게 연락할 생각은 안한거다.



가져간 식재료를 놓고 나오려는데 밥 먹고 가란다.

딸이 먹는 걸 보겠다면 그렇게 해드려야지~ 우리 엄마 밥은 맛있다.

혹시 입원 전화 오면 어쨋든 연락을 달라 말하고 있는데 

또 손님 전화다. 오랜 단골 손님이 자주 자리 비운다고 타박을 한다.

소리가 새어나와 두 분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가게로 다시 가려는데 부아가 치민다.

비싼거 팔아주는 사람은 이렇게 재촉하지도 않는다.

주로 AS받으려는 손님이다. 

하지만 매출과 상관없이 장사는 물건을 팔기 전 후가 역시 중요하므로

손님 불평은 옳다. 

다시 그 손님 전화다. 가게 앞 교회에서 기다리고 있을테니 오면 알려달란다.

스스로 단골이라 자부하고, 평소라면 그저 앉았다 가도 무척 반가운 손님이다.

구구절절 아빠가 아프시다고 설명해야하나. 솔직함이 제일 좋을 결과를 낫긴한다.

갑자기 서러워 눈물이 난다. 

빨간 눈으로 만나고 싶지 않아 추스리고 전화하니 신도 두 분과 오신다.

소개도 많이 해주셨고, 2004년 부터 알고 지냈으니 우리가게 개국공신이다.



혼내듯 또 물어보길래 '반찬 배달하러 다녀왔다'고 당당히 말한다.

아흔이 넘은 권사님은 혼내기를 멈추고 

"그럼 이제 전화하고 오면 되겠네."라는 현명한 결론을 내려주신다.




아빠는 우리에게 아침에 방문 열지 말아달라한다.

살아 걸어 나오지 않으면 연명치료 없이 그대로 죽겠다는 것이다.

나도 호흡기 의존해 살고 싶지 않다. 

식구들에게 부담 주며 머물고 싶지도 않다. 

앗쌀하게 떠나고 싶은 마음은 공감한다. 

하지만 그게 맘처럼 되는 일인가. 


사람은 꽃 처럼 만개하고 순식간에 시들수 있다.

내 경우 의무 다했으니 미안함은 덜한편이고, 미련은 정리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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