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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듭달 May 19. 2024

아빠 아직은 버텨줘

시한부 선고 받다

노인은 한번 아프면 급격히 약해진다더니 이건 너무 심하잖아. 2년 전 대장암이 시작이다.


자기 관리 철저했던 아빠는

노력해도 안되는구나 하며 우울증을 겪는다.

오래 의절했던 동생을 찾고, 엄마와 싸움을 하지 않으며, 죽음 앞둔 사람처럼 신변 정리를 한다.


움켜쥔 돈을 나눠준다 했을 때,

미국 파견 근무중인 동생은

환율이 올라 빠듯하던차에 마냥 좋아했다.


예전만 못한 자영업자인 나는 그 돈을 받으면 해결될 일들이 차르르 떠올랐다.

하지만 왠지 받는 행위가 죽음을 인정하는것같아

'못 들은 귀 삽니다'는 심정으로 거절한다.


아빠는 오타가 몇개 있는 긴 문자를 보내서 받아도 되는 이유를 설명한다.

결국 잘 오지않던 딸의 가게에 비닐봉지를 달랑달랑 들고 찾아온다. 지폐들이 허리띠 두르고 담겨있다.



'김희애'가 후남이 역으로 나온 드라마 아들과딸은 우리집 이야기가 상당히 겹친다.

공부를 나름 잘했던 언니와 나는 실업계를 강요받는다.

하필 아빠 회사가 망했고 아들과 딸 하나를 진학시킬 여유가 있다했다.



중학교까지 모범의 아이콘 언니 덕에 나는 덩달아 "상희 동생이 누구야" 하며 예쁨 받았다.

딸들은 학교에서 오라하면 상 받는 일이었고,

아들은 정학이나 징계 상담하러 간다고 한탄하면서도 아들 바나나만 사오 는 엄마였다.

식탁에 놓인 바나나를 반색하며 잡자

장환이 준다며 먹지 말라더니 저녁엔 갑자기 먹으란다.

떡이냐 싶다가 껍질에 까만 얼룩이 있어 안먹으니 네가 먹어라. 는 말에 빈정상한일이 두고두고 생각난다.

그깟 바나나.


반항하며 인문계에 간 사춘기 언니는

생각만큼 오르지 않는 성적에 힘들어했고,

아빠는 도와주지않았다.

학원이나 과외 (지금 생각하면 여력이 없었지)는 물론 이사가는 바람에 멀어진 등교길에 데려다주는법도 없었다.

새벽 공부 하려다 쓰러진 언니는 지금 까지 아프고

엄마, 아빠의 싸움 소재와 큰 대못이 된다.



같은 반 친구네서 치킨 튀겨오다

딸이 5등했다 자랑하자 우리 딸은 2등이요.라는 카드로 눌렀다는 승리를 전해서 친구에게 미움받겠구나 싶은적도 있다. 결국 성적은 인문계로 연결되지 않았다.



네가 왜 실업계를? 친한 친구와 담임 선생님 만류에 대답 못하고 원서 넣은 동구여상은 못 살고 공부 잘하는 딸들이 오는 학교였다.

중학교 성적 상위 1~20%이내인 동기들과

좋은 직장 취업을 두고 데드매치가 시작된다.

상식책 한권 통째로 외우는 경시대회를 매년치르고 취업 관련 자격증은 당연히 따야한다.


하필 1학년 반장 일 때

스승의날 선물을 상품권으로 바꿔오라는 담임을 만나버렸다. 졸업 후 알고보니 선생님 월급을 통째로 시어머니께 바치고 퇴근하자마자 저녁 지어야하는 헛똑똑이였다.

남편 대신 고마운 은사에게 과일상자를 전달하러갔을때 그녀와 재회했다.

졸업하면 결코 다시보기 싫었는데 하필.

넥타이 매는 법 알려주고 주변 사람 어려운 일 다 챙기는 인기 최고 미술선생님이 그녀의 남편이었다.

"내가 많이 아파. 암이야. 충실이 너는 나처럼 살지마."

본인 인생사를 구구절절히 쏟아내며 건낸 찻잔은

내가 반장 노릇하며 너무 힘들어하자 엄마가 뇌물로 갖다바친 그것이었다. 취업 추천서를 쥐고있는 그녀는 신 만큼 큰 존재였다.



국립극장대극장 공연표를 저렴히 구해주고 관람을 성적에 반영시킨 음악 수업.

격주로 인사동이나 무료 미술관 전시회 브로셔 제출을 성적에 반영한 미술 수업.

중간고사 후 대강당에 모아놓고

대금 연주를 들려주는 등 학교는 꽤 괜찮았다.


반장, 지도부 경력과 성적순으로 좋은 회사 추천받는다. 면접에 떨어지는 만큼 다른 친구 입사 기회는 없어지는데 다행히 첫타에 연봉과 복지 좋은 한국개발리스 합격이다. 아빠는 친구들에게 유산균 요구르트를 돌렸다.


IMF가 왔고 금융권 취업한 친구 상당수가 어려움을 겪는다. 취업하면 당연히 대학 준비시키는 선배들은

시대가 변할테니 자격증이나 면허증 따는 과를 가라고 했다. 안경사 박충실의 시작이다.



남동생은 부동산학과를 중퇴하고 취업 잘되는 안경광학과에 재입학했다.

마침 구미에 오픈한 안경원이 너무 바빠 남동생을 불렀으나 실적 좋은 선생님과 트러블을 일으켜 다른데 취업을 권했다. 아빠는 그때도 이직이 잦은 동생을 누나네서 거두지않음 어떡하냐며 나를 나무랐다.



다행히 아빠 몰래 공무원 시험 준비한 동생은 경찰이 되었고 안경사로 맞선 볼때보다 훨씬 좋은 조건이 줄을섰다. 결혼 잘했고 인터폴 되고 누나들보다 훨씬 근사한 인생을 살고있다. 사람 일 모른다.



아빠와 엄마의 50년 가까운 결혼 생활 중

바람과 이혼 이야기가 스쳐갔고 냉랭함이 채워진다.

종종 큰 소리로 싸우면서도

성실하고 재간있는 아빠와 사치모르는 엄마는 자식들에게 손벌리지않는 노후 준비를 준비해 놓는다.

장애 가진 언니는 부모님 다툼 소재이면서

건강과 돈을 챙기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골프와 해외여행. 맛집 투어를 일상으로 하는 두분 생활이 몇년 동안 이어지며 자식들은 부모 걱정없이 지낸다. 충분히 누릴 자격 있다.

어른 되어보니 아빠처럼 한 직장에 휴일 없이 일하며 자식 셋 키우고 집 마련하기 쉽지않다.

한밤 중 연탄보일러 갈고 석유 곤로를 골목에서 제일 늦게 샀으면서도 맛있는 밥상으로 식구들 입맛을 높여 놓은 엄마다.



가끔 아이 넷 키우며 아파트 대출금이 버거울 때,

아들은 집 살 돈 보태주면서 딸이 모은 첫 직장 월급은 가져간 아빠가 원망스럽지만 곧장 잘해 준 기억이 떠오른다.

시집살이하며 애는 줄창 임신해대는 딸이

친정가면 코 골며 자는 모습이 속상해 최상품 녹용 구해오는 츤데레 아빠다.


평소에 그렇게 무섭다가

국민학교 운동회 꼭두각시 공연에 빌린 카메라를 매고 웃으며 나타나 딸을 찾는 아빠가 어색해

친구 뒤로 숨은 기억은 왜 잊혀지지않는지 모르겠다.



나는 우리 아빠가 마냥 건강할줄 알았다.

대장암 완치 판정에 좋아하다 췌장암 진단받고

한번 무너진다. 

다행히 오진이라 쓸개만 떼어내고 회복 할 때쯤 백내장이 심해진다. 한쪽 눈이 0.2로 떨어져 수술이 잡혔을 때 안경일 하면서 나름 눈에 대해선 안다고 생각해서 참견하려하니 혼자서 병원다닐 수 있다며 오지말란다.

내 후회가 남을까봐 점심 사드리고 어색해하는 엄마대신 마취제 점안해드린다. 삼시세끼는 그렇게 정성들여 차리면서 아직 스킨십은 회복이 안됐나보다.

대기 시간이 길어져 화장실 다녀오는데

다급하게 애 처럼 "충실아!!" 부르는 아빠가 수술실로 옮겨지고 있다. 훨체어 끄는 남자 간호사에게 딸이라고 소개도한다.

수술 결과에 별 도움 안되는걸 알면서도 잘 부탁한다고 진심으로 인사하고 아빠에게 손을 흔들어준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아빠는 내심 무서웠다고 고백한다.



철원 주상절리길과 물윗길이 장관이다.

어른들 단체여행도 줄을 잇는다.

당일코스로 가볼만하길래 아빠에게 갑시다 했더니

버럭 화를 낸다. 어떤 상황인지도 모른다면서 말이다.



당연히 모르지. 월 초에 어깨 다 나았다고 했으니까.

알고보니 어깨 관절 통증이 점점 심해져서 수술하기로 했단다. 진료받고 외투 걸치는데 한 팔이 안 들어가 낑낑대니 간호사가 왜 혼자 왔느냐면서 도와줬단다.

집에선 양말 신으려는데 한 손으로 힘들어 부아가 났고.



"애 야?!"

아빠는 아프다 말하면 엄마나 내가 번갈아 신겨줄걸

왜 말안하고, 좋은데 구경가자는 딸을 구박하냐고 어이없어하니 미안해한다.

오지않아도 된다며 어깨 수술실 앞에서 혼자 대기한 엄마는 몇 시간을 꼼짝없이 굶으며 기다렸다.

언제 수술실에서 나올지몰라 매점도 못갔단다.

어리광 부리고 부탁을 좀 하면 좋겠다.

왜 우리 부모는 해준건 많으면서 배려만 하려고하나?



수술이 잘 되었다는 어깨 통증이 심해 깁스를 바꾸니 좀 덜하다. 문제는 퉁퉁 부은 발이다. 한달이 다 되어가는데 걷기가 힘들 정도다. 진료 받을 때 의료용 압박 스타킹 신어도 되냐 물어보라 했다. 병원서 그거보다 약을 먹으라고 줬다.

팔을 못 쓰니 엄마가 목욕시켜주는 일이 자주 있다.두 분은 많이 친해졌다.



"팔 나으면 스윙 큰 골프말고 파크골프 하세요." 권하다 아차 싶다.

골프 못하게 된 아빠의 상실감이 생각보다 큰 것이다.

동창이나 사회 친구가 많지않아 그들이 단짝이었고

아빠는 부킹 담당 인기 장타 멤버였다.



여행 블로거와 작가일을 시작하니

내 책을 하나 내고싶어져서 보름간 조지아에 간다.

장기간 가게 비우는 것은 큰 스트레스다.

손님을 잃거나 이미지가 나빠질것 같고

쉬는 만큼 매출이 적으니 가게세, 카드값도 걱정이다.

귀국 즈음엔 심란한 꿈을 몇 번 꾸었다.



어버이날엔 전화도 제대로 못드리고 카톡만 보냈다.

조지아 여행지 인터넷이 잘 안 터지고 시차가 커서 아차하다보면 적절한 때를 놓친다.

용돈을 넉넉히 보내면 마음 편하겠지만 그것도 생략.



귀국 보고를 하니 엄마가 전화한다.

아빠는 6개월 시한부선고를 받았고,

항암 노력하면 2년이란다.

내가 여행 중 신경 쓸까봐 이야길 안했다.

밀린 일 하고 안경 찾아갈 손님 어지간히 다녀갔다.

계획은 쉰 만큼 늦게까지 가게 열어놓고

여행기 쓸까 싶었는데 엉엉 울다 손님 받다

암 검색하다 일찍 닫는다.


체리를 사야겠다.

진단 후 두달만에 돌아가신 승경이 엄마는

호스피스 병동에 가져간 내 체리를 못드셨다.

고생하며 착하게 성실하게 살던분신데

물도 못 넘기는 상황에서 남 원망없이 굶다 돌아가셨다.

"한끝이 이거라면 착하게 살지 않겠어!"하며 내가 이기적이 된 날이다



우리 아빠는 체리와 현대백화점 살살 녹는 한우와 맛있는 빵 중 뭐 하나라도 드셔야한다.

입맛 없고 소화 안된다 하지만

내가 조지아 성니노 무덤에 무릎꿇고 가족의 건강을 빌었고, 아빠는 의지 강한 해병대 출신이고, 나는

상실감을 견딜 준비가 전혀 안됐기때문이다.



이번에도 아빠는 정기예금에 있는 돈 줄테니 아파트 대출 갚으라한다. 엄마와 언니 생활비 대책을 설명해준다.

본인이 나으면 무얼하고싶다는 계획은 없다.

뭔가 삶의 재미가 있어야 의욕이 생기지.

오른쪽 눈 밑에 피멍이 들었다. 뇌경색으로 병원서 넘어졌단다. 목에도 큰 바늘 구멍과 피멍이 있다.

사타구니에서 머리까지 선을 넣고 수술을 했단다.

팔은 살 없이 가죽이 흔들리고, 볼살이 홀쭉하다.

두 발은 퉁퉁 부어 터질것같다.

먹지도 않는데 뱃살이 부풀어 바지가 조인다.



동생네 가족이 왔다. 여수 출장 마치고 송도 들러 여기까지 오려면 피로감이 대단할거다.

착한 큰 손녀가 할아버지보더니 끌어안고 운다.

늙은 아빠는 울고 딸도 울고.



우는건 암묵적으로 금기라 수술이 잘 되고 할일을 정한다. 오사카나 베트남을 가기로하고, 붓기 빠지면 걷기 운동 하기로. 나는 가능하면 오전 시간에 아빠와 걸어야겠다. 수술 후 병실 저녁은 주로 엄마가. 낮은 동생과 내가 번갈아하기로 한다.

려고 마루까지 이불깔고 누우니 조카 수현이가 해맑게 "명절같다."고 한다.

모두 모여 먹고 이야기하니 분위기는 딱 명절이다.



내일 조카들 시력검사 해주려면 자고 데려 가는편이 낫겠다.

카타르에서 새벽 2시 비행기타고 한국 집에 오니 저녁7시다. 시착 적응이 채 안되어 이야기하자는 수빈이 두고 언니 방에서 두어시간 쿨쿨 자다깼다.



잠이 안와서 쓰기 시작했는데 세 시간째다.

아빠가 잘못 될까봐 너무 무섭다.

예쁜 사춘기 수빈이가 자긴 못생겼다해서

나쁜 말은 입밖에 내지말고 생각도 못하게 했는데.



80살도 채 안채운 아빠가 갑자기 시한부 선고 받고나니  예측불가 상황에 어쩔 줄 모르겠다.

의사는 항상 최악을 경고 한다고 들었다.

아빠에게 좋은 기운을 넣어줘야겠다.




카타르 호텔에서 본 노부부다. 보기 좋았다.

울 아빠 엄마도 예쁜 여행지 테이블에 앉힐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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