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아
올해의 목표는 많이 듣고 쓰고 보는 거였다. 작년에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해보지 못한 것들을 최대한 많이 해보는 거다.
'북모리'를 열어보니 올해 현재까지 35권의 책을 완독했고, 13권의 책을 읽고 있다. 완독한 책 수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 기준으로, 작년에 비해 2배 정도의 책을 읽었다. 매달 독서 모임 덕에 1달에 1권은 꾸준히 읽고 있고 밀리의 서재로 오고 가는 시간에 소설을 읽고 집에서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30분은 앉아서 독서한다. 이렇게 독서하는데도 누군가 지금 읽고 있는 책은 무엇인지, 최근 가장 좋았던 책은 무엇인지? 어떤 내용이었는지를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 기억력이 안 좋음에 자책했다. 그 책이 좋았다고 말하지나 말것을.. 선배와 유발 하라리의 호모데우스 이야기를 하다가 "전 읽었어요. 좋던데요?" 하니, "어떤 점이 좋았어?"라고 묻는데 답변할 수 없었다. 분명 완독했는데 설명하기 어려웠다. 책을 읽지 않은 이와 무슨 차이가 있을까? 얼마 전에는 독서 모임에서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이야기가 나왔다. 추천을 받고 사놓고 중간 정도까지 읽었는데, 책 느낌이 좋았다. 예전 이기호 소설을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이었다. 그런 느낌은 있는데, 책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 것이다. 내용을 이야기해 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에 심하게 당황했다. 그리고 내 퇴화한 기억력을 탓했다. 좋았다는 기억은 남는데, 책에 대해 설명을 하지 못한다. 책을 다독하고 속독하는 데만 열중한 것은 아닐까? 영화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되면 최대한 많이 보려고 한다. 그런데 최근 본 영화들을 이야기하자고 하면, 기억나는 게 많지는 않다. 그리고 쓸데없는 가십만 기억해 내곤 한다. 그러다 보니, 깊이가 없는 말만 주절거린다. 내 기억만 탓하기에는 어떤 기억은 참 구체적이고 뚜렷하다. 몇 번이고 본 영화, '사랑을 카피하다' 라던지, 그건 행위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니라 깊게 파고들었던 것들이 대부분이다. 분명히 읽었는데, 분명히 보았는데, 분명히 가봤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 건 몰입하지 않고, 경험하는 행위에만 중점을 두어서였던 것 같다.
얼마 전 만난 후배는 선우정아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의 가사 하나하나를 읊으며 이 부분에 감동하였다고 말했다. 나도 선우정아를 좋아한다. 검정치마도 좋아하고, 콜드플레이, 오아시스, 넬, 데이식스, 짙은의 노래를 좋아한다. 취향은 있다. 그런데 어떤 노래를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선뜻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는다. 많은 음악을 듣지만, 그에 비해 주의 깊게 가사를 음미하면서 들어본 게 몇 곡이나 될까?
많이 경험하는 것이 좋은 것일까? 잘 모르겠다. 현재의 나에겐, 많이 경험하는 것이 좋지만은 않은 것 같다. 단지 뭐 해봤다. 뭐 읽어봤다. 뭐 들어봤다고 한들 머릿 속에서 얽히고설켜서 기억나는 것이 많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좋았던 음악, 좋았던 영화, 좋았던 책을 더 깊이 파보는 걸 해보려 한다. 더 깊이 몰입해서 온전히 나의 기억에 담아야겠다.
문득 드는 생각, 누군가가 나에게 이야기 한 것을 기억하지 못한 것도, 그 사람의 이야기에 온전히 집중을 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단지 호응하는 행위에만 중점을 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니 자괴감이 몰려온다.
단기간에 많이 경험하기보다는 하나씩 소화하는 것, 몰입해서 집중해서 듣고 쓰고 보기로 얼마 안남은 올해의 목표를 수정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