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두기_참고자료 소개
- 참고자료로 활용할 <아들과 딸>에 대해 소개합니다.
- 해당 영상은 글의 마지막에 촤르르 정리해두었습니다.
1992년 10월부터 1993년 5월까지 무려 64부작으로 방영된, 최고 시청률 61.1%, 평균 시청률 49.1%, 한국 역대 드라마 시청률 2위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가지고 있어요.
평균 시청률 49.1%!!! TV가 있는 가구의 절반이 같은 시간에, 같은 장면을 보며, 같은 감정을 느꼈다는 게 묘한 면도 있습니다만, 한편으로는 그 간소함이 그립기도 합니다.
숫자도 그렇지만, 이 드라마는 출연진도 엄청납니다. 김희애, 최수종, 채시라, 오연수, 한석규, 곽진영, 정혜선, 백일섭, 고두심, 그 밖에도 박선영, 선우은숙, 박혜숙, 이계인 등등 지금은 연기 장인들의 풋풋 리즈 시절을 볼 수 있어요. [ 영상 1. <아들과 딸> 오프닝 ]
64부작인 이 드라마를 네이버는 이렇게 한 줄 요약했더라고요. "남아선호사상이 깊게 뿌리내린 집에서 태어난 이란성 쌍둥이 이야기." 바로 저 '이란성 쌍둥이'가 김희애, 최수종이 연기한 '후남'과 '귀남'입니다. 이름에서 이미 이들의 운명을 알 수 있는데요. '귀남(貴男)'은 '귀한 남자', '후남(後男)'은 후에도 남자아이를 보게 해달라는 의미거든요. 드라마는 두 사람이 태어나서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저도 최근에 다시 보기 전까지 <아들과 딸>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었어요. 방영 당시에는 만화가 더 재밌는 국민학생이었고, 외할머니 옆에서 건성건성 봤던 게 전부였거든요. 그럼에도 또렷이 기억하는 것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하나는, 정혜선 배우가 연기한 어머니가 아들인 귀남이만 너무너무너무 편애하고, 딸인 후남이를 너무너무너무 구박했던 거였어요. 그 구박의 정도는 학대에 가깝습니다. 후남이뿐 아니라, 다른 딸들에게도 참 모질게 대해요. 남아선호 막장극이라 할 만큼요.
후남이 구박 영상은 넘치는데요. 그중 끝판왕으로 골라봤습니다. 귀남이는 대학에 떨어지고, 후남이만 붙은 걸 알고는 달려가 퍼붓는 장면입니다. [ 영상 2. 엄마 미워요 ** 혈압상승주의 ** ]
후하후하. 이거슨 시작일 뿐, 앞으로 마음 단단히 먹으셔야 합니다.
이렇게 국민학생조차 빡치게 했던 <아들과 딸>이 또 하나 깊이 인상을 남긴 것은, 바로 출판사에서 일하는 후남이의 모습이었습니다.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후남이는 공장, 함바집으로 떠돌며 돈을 벌다가 지인 소개로 출판사에서 일하게 되는데요. 바로 여깁니다.
어떤가요? 한눈에 봐도, 허름하고 침침하죠. 심지어 이때 귀남이는 폐결핵을 앓고 있어서 내내 기침을 하며 교정을 봅니다. 빨간 색연필로요. (돌돌돌 까서 쓰는 빨간 색연필, 기억하시나요?) 영상 클립은 찾을 수 없었지만, 후남이가 기침을 하다가 교정지에 피를 떨어뜨리는 장면을 본 기억도 있어요. 빨간 색연필과 빨간 피. 네... 이것이 출판사에 대한 저의 첫 기억입니다. 어린 마음에도 출판사 직원은 가난하고 힘들구나 했었어요. 책을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출판사 직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후남이의 출판사는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출판사'라는 곳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역할을 하고 말았는데요. 제가 출판사에 들어갔다고 했을 때, 저를 바라보던 외할머니의 표정을 잊지 못합니다. 제 지인의 지인(=편집자)은 드라마처럼 좁고 허름한 데서 일하는 거 아니냐며 편집자가 되는 걸 엄마가 싫어하셨다고 하더라고요. [ 영상 3. 후남이네 출판사 ]
부모님 세대에게 '출판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후남이네 출판사라고 한다면, Z세대는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이하 로별)으로 출판사라는 곳을 처음 접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종종 중고등학생들이 직업탐방이나 인터뷰 같은 것을 요청해올 때가 있는데요. 그때마다 이 드라마와 관련한 질문이 빠지지 않더라고요. 특히 짠 듯이 매번 등장한 질문이 하나 있는데요. "차은호(이종석) 같은 편집장님이 정말 있나요?"입니다. 대답은 읽고 계신 여러분도 이미 알고 계시죠?
편집자로서 본 <로.별>은 SF 판타지 장르에 가까웠지만, 국내 드라마 중에서는 책 만드는 사람에게 가장 집중했던 드라마가 아닌가 싶습니다. 출판계에 대대로 전해지는 전설 같은 에피소드는 물론, 출판인들의 기쁨과 슬픔을 드라마틱하게 담아냈더라고요. 무엇보다 20세기 후남이네 출판사에서 벗어나 출판사와 출판인을 제법 근사한 전문직으로 다뤘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 또한 판타지가 듬뿍 뿌려져 있지만요. <로.별>도 앞으로 자주 소개해드릴게요. [ 영상 4. 도서출판 겨루 스케일 ]
'뭐야, 비슷하잖아!'
올봄, 우연히 유튜브에서 <아들과 딸>을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생각보다 출판 이야기를 깊이 다루더라고요. 게다가 이후남 편집자가 책을 만드는 과정, 거기서 느끼는 감정들은 현재의 제가 책을 만들며 경험하는 것과 겹치는 면이 많았습니다. 원고 앞에서 어쩔 줄 몰라했던 '미스 리'가 미흡한 원고의 출간 여부를 고민하는 직업의식을 가진 편집자가 되어가는 과정은 편집자 성장 드라마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30여 년 전 드라마에서 편집자 성장기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어요.
드라마 결말에 이르러 후남이는 오랜 꿈을 이룹니다. (그게 뭔지는 아직 비밀.) 미래의 후남이를 알고 있는 저는, 허름한 출판사에서 기침을 참아가며 추위에 곱은 손으로 교정지를 보는 과거의 후남이를 볼 때마다 힘껏 응원하게 됩니다. '조금씩 나아질 거예요. 그건 모두 당신이 만든 미래예요.'
드라마만으로도, 출판 드라마로도, 이렇게 이야깃거리가 많은 <아들과 딸>. 다음 편부터 후남 편집자와 저의 이야기를 본격! 시작해볼게요.
: )
영상 1. <아들과 딸> 오프닝
등장인물의 성격을 잘 드러낸 영상이에요. 초초특급 출연진들을 볼 수 있습니다.
영상 2. 엄마 미워요
어쩔 줄 몰라하며 고무신을 두 손에 꼭 쥔 귀남이와, 저-쪽에서 지켜보는 아버지가 포인트입니다.
영상 3. 후남이네 출판사
귀 기울여보세요. 은은하게 들리는 캐럴이 출판사를 더 초라한 공간으로 느껴지게 합니다.
영상 4. 도서출판 겨루 스케일
차은호 편집장 뒤에 등장하는 봉지홍 팀장의 말을 잘 들어보세요. 껄껄껄.
슬그머니 예고.
다음 편은 "출판 편집자는 국문과를 나와야 하나요?"에 답해볼게요. :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