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 만드는 희희 Aug 27. 2020

후남이는 편집자가 될 상이었습니다

1화. 출판 편집자의 탄생 (2)



<아들과 딸> 1화. 고등학생 후남이의 방에는 좌식 책상이 있습니다. 거기서 공부도 하고, 라디오를 들으며 책을 읽거나, 친구 미현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 작은 책상은 후남이에게 중요한 세계예요. 어머니가 시키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거든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출한 후남이는 봉제공장 합숙소에서 지낼 때도, 함바집 쪽방에 머물 때도, 출판사에서 일하던 때도 늘 책상을 곁에 두었습니다.




이 책상은 후남이의 피땀눈물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책상 앞에서 차곡히 쌓아가는 시간들은 마치 후남이가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 같아요. 깊은 밤 스탠드 하나를 켜두고 책을 읽거나, 원고지에 글을 쓰고 있는 후남이를 보고 있으면 시간이 처-언천히 흘러 저 시간에 오래 머물렀으면 하고 바라게 된답니다. 그리고 화면 너머로 손 내밀어 묻고 싶어져요.


"후남이 자네, 편집자 해볼 생각 있는가."


[ 영상 1. 오늘도 잘 살았다 ]



역시 공부는 국영수 중심으로

<1화. 출판 편집자의 탄생(1)>에서 편집자가 되는 데에 전공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전공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독서와 글쓰기 '경험'이에요. 마치 국영수 중심으로 공부하라는, 모범적이고 고루한 답변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사실이 그렇답니다.


좋은 글을 자주 접하고, 직접 글을 쓰다 보면 '그 무언가'가 자연스럽게 쌓입니다. 그건 좋은 글을 알아보는 안목이 되기도, 틀린 문장과 바른 문장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되기도 하지요. 수많은 컨텐츠 중 책으로 펴낼 가치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알아보고 선택하고, 그걸 매만져 책으로 만들어내야 하는 편집자가 갖춰야 할 '기본기'가 되기도 합니다. 교정 원칙이나 책 만드는 기본 지식은 전문교육 기관이나 회사 선배들에게 배울 수 있어요. 하지만, 기본기를 벼락치기로 쌓기는 쉽지 않거든요. 후남이가 전공이나 대학졸업과 상관없이 편집자로서 활약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기본기 덕분이었습니다.


물론 '책을 많이 읽었고 글을 잘 쓴다=실력 좋은 편집자'는 아닙니다만, 편집자에게 필요한 기본 자질을 쌓는 데에 독서와 글쓰기만 한 것이 없답니다. 국영수 중심으로 공부하는 것처럼요. ;) (이와 관련해 편집자를 준비하는 분들께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는 맨 뒤에 추신을 남겼습니다.)



출판 편집자의 탄생

귀남이의 베프 규태(박세준 분)는 운동을 좋아합니다. 성인이 되어서는 술도 좋아합니다. 그래서 체대를 가고 싶어 해요. 마찬가지로 후남이는 책과 글쓰기가 좋아 국문과를 지망합니다.[ 영상 2. 매력 규태 ]



후남이 같은 학생들이 국문과를 선택하는 건, 운동이 좋아서 체대에 가고 싶은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 같아요.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국문과 출신이어서 편집자가 된 것이 아니라, 국문과를 선택할 만한 자질과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편집자가 된 경우가 많은 거라고요. 어쩌면 출판 편집자의 탄생은 국문과 혹은 특정 전공보다 훨씬 이전에 있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주변 사람들은 '후남이=국문과'라고들 말하지만, 정작 본인은 어떤 과에 지망하는지 한 번도 말하지 않았는데요. 직접 밝히는 대목이 있습니다. 후남이 시대에는 방통대에 3년을 다니면, 4년제 대학 3학년으로 편입학할 수 있는 시험 자격을 주었나 봐요. 편입에 성공한 후남이에게 석호(한석규 분)가 학과를 묻습니다. 석호는 귀남이의 대학동기이자 썸남이에요. 자, 처음으로 후남이가 밝히는 자신의 전공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 답은 영상을 확인해주세요! [ 영상 3. 후남 반전주의 ]



추신. 편집자를 준비하고 있는 분들께 드리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어느 행사에서 만난 편집자 지망생이라는 분이 무얼 준비해야 할지 막막하다며 하소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주변 선배들에게 물어보니 꾸준히 책을 읽고 글을 쓰라고들 하는데 대체 무슨 책을 얼마나 읽고, 또 무얼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앞서 저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는데요. 굳이 독서와 글쓰기 '경험'이라고 표현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 '경험'은 말 그대로 책과 글이 늘 일상에 있었던 것을 말합니다. 엄청나게 다독가여야 한다거나, 작가만큼 글을 잘 써야 한다는 의미는 아녜요.


먼저 '독서'. 저만해도 다독가도 아니고, 고전이나 양서라고 부르는 책들을 많이 읽은 것도 아니에요. 하지만 어릴 때부터 각종 책들(특히 만화와 추리소설)을 늘 읽어왔고, 서점에서 책 고르는 걸 좋아했습니다. 안 읽은 책이 집에 수두룩한 데도, 서점을 서성이며 책 고르는 시간을 좋아했어요. 그 버릇은 고스란히 남아 사놓고 안 읽은 책이 지금도 제 옆에 수두룩하지만요. (공감하는 분들 많지요?ㅎㅎ)


편집자에게 독서는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있다고 생각해요. 하나는 독자로서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독서 경험을 쌓는 과정이지요. 이때는 무슨무슨 리스트, 추천 목록 같은 것에 얽매이지 마세요. 스스로 책을 선택하고, 그 책을 읽는 경험이 더 중요합니다. 경험이기에 좋은 책을 만나기도, 실패하기도 하겠지요. 그러면서 컨텐츠를 보는 안목이 먼지처럼 쌓이게 됩니다. 좋은 책을 만나 읽어나가면서 문장에 대한 감각도 쌓을 수 있고요.


또 다른 방식은 편집자로서 보는 것인데요. 이때는 '본다'라고 하기보다 '분석한다'라는 것이 더 알맞을 듯해요. 내용뿐 아니라 컨셉, 편집 구성과 요소, 디자인, 제작, 홍보문구 등 책의 겉과 속을 분석하는 훈련이 필요하거든요. 이 훈련 방법은 3-4회 수업으로도 진행하고 있을 만큼, 실무를 해보지 않은 분들이 혼자 시작하기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편집자로서 보기 또한 기본기가 없으면 어렵기에, 책을 읽는 경험을 쌓아두는 것은 여러 면에서 의미 있습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예요. 자기 생각을 문장으로 표현하는 경험을 쌓으면 됩니다. 편집자 직무에 필요한 글쓰기는 크게 세 가지예요. 1) 기획안 쓰기  2) 홍보 메시지 쓰기  3) 보도자료 및 신간자료 쓰기. 결과물도, 형식도 모두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컨텐츠를 이해하고 분석한 후 자기 생각으로 간결하게 표현한다는 거예요.

오늘 무슨 일을 했는지가 아니라, 무슨 생각을 했는지 써보세요. 책이든 영화든 컨텐츠를 경험했다면 어땠는지 내 생각을 써보세요. SNS나 브런치(!), 종이 노트 등 뭐든 좋습니다. 이런 매일의 경험들이 쌓이면 자질이 되고, 실력이 되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제 주변의 편집자 중에는 어릴 때 글짓기 대회에서 상 좀 받아본 이들이 꽤 많습니다. 당시엔 몰랐겠지만, 이미 그때부터 한 편집자의 탄생기가 시작되었을지도 모르지요.

<아들과 딸>의 석호(한석규)도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아봤다고 후남이에게 어필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석호에게도 묻고 싶어지네요.


"석호 자네도 편집자 해볼 생각 있는가."


  [ 영상 4. 뜻밖의 문학소년 ]



영상 모음


영상 1. 오늘도 잘 살았다(대사와 마지막 표정이 찐)

출처 : 옛드 : 옛날 드라마 [드라맛집]- <아들과 딸>


영상 2. 매력 규태

출처 : 옛드 : 옛날 드라마 [드라맛집]- <아들과 딸>


영상 3. 후남 반전주의

출처 : 옛드 : 옛날 드라마 [드라맛집]- <아들과 딸>


영상 4. 뜻밖의 문학소년

출처 : 옛드 : 옛날 드라마 [드라맛집]- <아들과 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