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린,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솔직히 고백하자면 때로 그런 것들은 나를 고단하게 하고 안락해 보이는 타협책을 향해 손을 뻗고 싶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날에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몫의 수고로움을 스스로 감당하며 살아내는 것이 값진 일이라는 걸 안다. 그것들은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글을 쓸 자유, 사랑하는 사람과 다른 형태의 공동체를 꿈꿀 자유, 타인의 기대나 시선에 부합하는 내가 아니라 오롯한 나 자신으로 존재할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내가 기꺼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p.204
원고 작업 중인 작가님이 다른 책을 보니 그냥 원고를 나래비로 세웠더라고요, 우리 너무 정성 들여 만드는 거 아녜요?! 하고 웃으시는데 죄송함과 뿌듯함이 동시에 떠올랐다. 시간을 분단위로 쪼개가며 살고 있는 작가님에게 짐을 하나 더 얹은 듯해서 죄송했고(사실 편집자가 아닌 자연인으로서는 그분의 일을 다 떼어서 온전히 쉬게 하고 싶다), 우리가 허투루 만들고 있지 않다는 걸 원고 단계부터 알아채고 느끼고 있다는 게 동료로서 뿌듯했다. 역시 그런 면까지 볼 줄 아는 분이었다, 역시, 이런 느낌.
그럼에도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렇게 책을 만드는 게 나를 고단하게 한다는 걸 안다. 안락해 보이는 타협책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도 말이다. 손을 뻗고 싶은 날도 많다. 하지만 그 안락해 보이는 타협책이 잠시 동안의 안락함을 줄지는 모르겠지만, 결국에는 내내 불편하게 하리라는 걸 알기에 뻗었던 손을 거둔다. 안락함이 틀렸다는 게 아니다. 내가 그런 편집자라는 것뿐.
귀하고 아름다운 것을 길러내는 일엔
언제나 긴 시간이 필요한 법이니까.
p.215
귀하고 아름다운 것을 길러내는 일엔 고단함과 긴 시간이 필요하다. 책 만드는 일도 그렇다. 이런 방식이 느리고, 고되어서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해도 그렇게 만든 책은 전해진다. 촘촘히 담은 마음과 시간이. 물론1) 고단함은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물론2) 그렇다고 상업적 가치에서 등 돌리는 건 상업출판 편집자로서의 기본을 놓치는 것.
소중한 고된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 오늘은 특히 중요한 날. 기억할 날.
11월 22일.
브랜드 디자인을 의뢰하러 간다.
책만드는마음 인용한 책
백수린,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